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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 May 08. 2024

초등 퇴직교사 분투기

8회 2024년 5월 7일(화)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의 합동(?) 조사>


오늘은 성관련 사안이다. 


지난 주 <학교폭력 사안조사 보고서>제출에 관해 교육지원청 담당자와 통화하던 중 12명의 학생을 3일에 걸쳐 면담을 하니 너무 힘들었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 정도 인원은 조사관 3명 정도가 투입되어 1,2일 정도 조사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자 담당자는 "조사관님들 개성이 있어 갈등이 있다는 의견이 있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하는 말에 "저는 000 조사관과는 매우 효율적으로 사안을 조사하고 보고서도 함께 작성하여 도움이 되었습니다"하고 답했다. 그러자 담당자는 "아! 그렇습니까? 참고하겠습니다"라면서 통화를 마쳤다. 000 조사관은 3월 첫 번째 조사 시 함께 배당되어 처음으로 학교폭력 사안조사를 함께 했던 퇴직 경찰이다. 담당 장학사도 동석하여 전담 조사관이 학교 현장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확인했다. 이후 두 번째 사안부터는 1명의 조사관이 담당하는 것으로 교육지원청에서 정했다.


30분 후 교육지원청 <학교폭력제로센터>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조사관님, 00 학교 성폭력 사안인데 성희롱입니다. 5명의 남녀 학생들이고 조금 복잡한 사안이라 두 분의 조사관을 배정합니다. 아까 말씀하신 000 조사관님과 합동(?) 조사를 하시면 됩니다". 반가운 마음에 "잘 되었습니다. 관련 자료 보내주시면 살펴보고 사안을 조사하여 보고서를 제출하겠습니다" 하면서 통화를 마쳤다.


조사 예정일이 연휴가 끝나는 화요일이라 전 주 금요일쯤 000 조사관과 통화를 한 후 교육지원청에서 보내준 사안 관련 자료를 확인했다. 이후 질문지를 서로 작성하고 공유했다. <성희롱> 사안으로 5명의 남녀 학생들이 관련되었다. 주로 3명의 남학생들이 성희롱 발언을 했고 여학생들은 대응하는 과정에서 욕과 성적 비하 발언을 했다. 오후 3시 15분부터 5시 30분에 걸쳐 5명의 학생들을 면담하니 정말 힘들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정이입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멀쩡한 학생들(모두 중2 학생들로 키는 160cm 정도, 이목구비도 잘 생김, 2명의 학생은 논리 정연하고 공부도 잘하는 편임, 4명의 학생들은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음)이 이렇게 수준 낮은 성희롱 발언을 들으면서 조사관 둘은 어이가 없어 서로 얼굴을 쳐다보기도 했다.


감정이입이 될 수 밖에 없다.


전부 내 자식 같은 마음이 들고 대한민국의 훌륭한 인재로 커야 할 학생들이 저급한 성희롱 발언으로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학교 현실이 안타깝다.


조사를 하면서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아, 한창 사춘기인데 주변의 무분별한 성관련 동영상, 사진, 성희롱 농담 등에 무차별적으로 빠져들고 있구나~ 아이들은 성희롱 발언을 주고받으면서 낄낄대며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구나'.

그중 불쾌했거나 성인지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이 서로 주고받았던 문자메시지를 캡처하여 신고를 한다. 남녀 학생들이 주고받았던 문자메시지를 보면 처음에 신변 잡기 이야기로 시작하다가 1명이 성관련 발언을 하고 다른 학생은 동조하기도 하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면 대화를 끝내는 패턴을 발견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우연히 부모에게 발견되기도 하고 불쾌한 기분이 들었던 학생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를 캡처하여 신고한다.


5건의 학교폭력 사안조사 결과 초등학교부터 친분이 있거나 현재 같은 반, 학원을 함께 다니는 공통점이 있는 학생들이 대인관계 기술(Relationship Skills)이 없고 성에 관한 호기심을 올바르게 해소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학교에서 성교육은 이루어진다. 또한 성폭력예방교육도 반드시 실시한다. 학생들은 성폭력을 직접 저지르거나 정도가 심한 경우 형사처벌 및 학교폭력 처분도 받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성희롱의 경우 말로만 하거나 수위가 상대적으로 약한 발언(주요 부위에 대해 작다, 크다, 자위 등)은 괜찮다는 생각을 하면서 남녀 학생들이 서로 상처를 주고 있다.


알았다.


1. 학생들은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하지 않는다. 이는 국내 업체의 메신저이고 문제가 될 경우 수사기관이 볼 수 있다는 것을 학생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외국 서버를 사용하는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를 사용한다.


2. 학생들은 직접적 성폭력(성추행, 강간 등)은 강력한 처벌을 받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성희롱 발언은 상대가 별 대응을 하지 않거나 서로 주고받기도 하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저지른다. 서로에 대한 외모 평가, 주요 부위에 대한 성적 희롱 발언(작다, 절벽, 동굴, 트리플 A, 자위 등)이 교실에 난무한다.


3.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성교육에 대한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교사 출신인 조사관은 현직 때 성교육을 했고 성교육의 내용도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 학생들은 매스컴을 통해 성폭력이 나쁘고 범죄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성희롱의 경우 서로 주고받거나 말로만 하는 경우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이는 장기간에 걸쳐 굳어진 생각으로 우리 사회가 성희롱 발언에 대해 관대했던 결과이다. 과거 어른들의 음담패설(일명 EDPS)이 아무런 제지 없이 난무했던 과거를 떠올려보자. 성교육의 관점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4. 사안이 복잡하고 다수의 학생들이 관련된 사안은 2명의 조사관이 합동(?)으로 조사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단 2명의 조사관은 친분이 있으며 사전에 질문 문항, 조사 방법 등을 서로 협의한다. 이렇게 준비하고 1명의 조사관이 쟁점이 되는 내용을 질문하고 다른 1명의 조사관은 보충 질문을 하고 질문지에 핵심 내용을 쓰거나 노트북에 기록한다. 이후 사안 조사보고서도 함께 작성한다.

 

덧붙임1: 학생들을 배웅하면서 이런 부탁을 했다. "부모님에게 제일 소중하고 잘 생기고 머리도 똑똑한 우리 대한민국의 훌륭한 인재가 될 네가 이런 수준 낮은 일을 벌여 이렇게 힘들어서야 되겠니? 너의 찬란한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할 시간에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겠니?" 하니 고개를 떨구고 "예,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라며 인사했다. 


덧붙임2: 수위가 높은 성희롱 발언은 도저히 여기에 쓸 수 없었다.


안타깝다. 

그래서,

조사관들은 눈물이 났다.


*인스타그램 - 나무위키 (namu.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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