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새처럼 살다가 죽는다

by 남궁인숙


앞으로 '인간은 죽기 직전까지 일하다가 간다.'

그야말로 '새처럼 살다가 죽을 수도 있다'라고 했던, 최재천 교수의 이 한마디는 아름다운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러나 가만히 곱씹어보면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쉴 수 없다.'

'우린 멈출 수가 없다.'

'그럴 여유도, 사람이 없다.'


한때는 ‘쉬어야 오래간다’고 믿었다.

삶에는 휴식이 필요하고,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런 말들이 사치처럼 들리는 시대에 들어섰다.


보육 현장에서는 교사가 부족하고,

병원에서는 간호 인력이 모자라며,

학교에서는 아이가 줄어 사라진다.

인구가 없다.

출산율은 0명대!

젊은 인력은 떠나고, 노인은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일을 멈출 수 없다.

경험 있는 누군가는 계속 남아 있어야 한다.

떠날 수 없고,

멈출 수 없고,

쉬면 무너진다.

그렇게 우리는 새처럼 날개를 퍼덕이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일을 하게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재천 교수의 그 말은 단순히 ‘비극' 만은 아니었다.

교수님은 죽기 직전까지 몰입하고,

움직였던 한 과학자의 죽음을 "부럽다"라고 했다.


'왜일까?'

아마도 그 삶이 무의미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의미 있는 일에 몰입하고,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마지막까지도 쓰임을 다하고 떠나는 삶에 대한 예찬이었을 것 같다.

그건 지쳐 쓰러지는 인생이 아니라,

다 써서 아름답게 끝나는 인생을 말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우리가 일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강요된 생존 때문인지,

아니면 내 삶의 의미를 끝까지 쓰기 위한 몰입 때문인지.....,


그래서,


"당신은 오늘 무엇 때문에

날갯짓을 하고 있는가?'



https://suno.com/s/0bUejZn5aQ7OXuJY



새처럼


작사: 콩새작가

작곡:수노


1절


새는 둥지를 짓고, 알을 품고, 바람을 가르며 날아다닌다.

그들은 쉬지 않는다.

추위에도, 폭우에도, 긴 비행에도.


그러다 언젠가,

날개가 다 닳고,

더 이상 하늘을 품을 힘이 없을 때

조용히 한 나뭇가지에 몸을 기댄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숨이 멎는다.


우리는 그런 새와도 같다.

매일같이 어딘가를 향해 날고,

무언가를 품고,

누군가를 위해 살아간다.


잠시 멈춘다는 건 죄처럼 여겨지고

쉼표 하나에도 죄책감이 따라붙는다.

그래서 우리는 날아간다.

죽기 직전까지.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그렇게까지 날아야 했을까?

조금은 쉬어도 되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진짜 자유는

하늘이 아닌

자신에게 허락된 한 평의 쉼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도 알 것 같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는지.

“죽기 직전까지 일하다 간다니,

새처럼.”


그건 어쩌면,

비참함이 아니라

존엄일 수도 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다한

그 숭고한 날갯짓.


날마다 떠오르는 해처럼

나는 또 책상을 마주하네

쉬지 못한 어제의 피로 위에

오늘도 내 하루를 얹는다


멈추면 무너질까 봐

숨 한번 크게 쉴 틈도 없이

어느새 시간은 흐르고

나는 또 다음 일을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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