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차 카레짜 호수에서 볼짜노 광장으로

by 남궁인숙

아침 일찍 밀라노를 떠나 버스로

세 시간 넘게 북쪽으로 향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도시의

회색빛에서 점차 녹음과 산맥의

곡선으로 바뀌었다.

긴 비행의 피로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알프스로 가까워질수록 눈이

먼저 깨어났다.



첫 번째 목적지는 카레짜 호수(Lago di Carezza)였다.

‘무지개 호수’라는 별명을 가진 이곳은

전설처럼 투명하고 신비로운 빛깔을

품고 있었다.

초록빛 숲과 설산이 호수 위에 비치며,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눈앞에 펼쳐놓은

듯했다.

바람조차 머뭇 거리는 듯한 잔잔함,

그 고요함 속에서 관광객들은 잠시 말을

잃고 감상한다.

사진으로 담기에는 부족하고,

기억으로 담기에는 벅찬 풍경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카메라 셔터를 국가대표

선수급으로 눌러대고 다시 길을 떠났다.



이후 들른 볼짜노(Bolzano)는 알프스와

지중해 문화가 만나는 작은 도시였다.

거리에는 독일어와 이탈리아어가 섞여

들려왔고, 알프스풍의 목조 건물과

이탈리아식 광장이 어우러져 묘한 조화를

이룬다.


볼짜노의 중심부, 사람들의 발길이 모여드는

발터 광장(Waltherplatz) 한가운데에는

고요히 서 있는 한 시인의 모습이 있다.

그는 중세 독일의 음유시인이자,

사랑과 정치, 인간의 삶을 노래했던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였다.

나는 순간 괴테를 떠올렸다.

대리석으로 빚어진 그의 형상은 망토를

걸친 채 현악기를 손에 쥐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음악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와 선율이 어우러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시인의 삶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


광장은 원래 포도밭이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며 권력자의 손을 거쳐

도시의 중심 공간으로 바뀌었고,

마침내 19세기말 이곳에 발터의

동상이 세워졌다.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지역 사람들에게는

정체성과 자부심의 표식이었다.

시인이 남긴 노래처럼, 동상은 이 땅의

언어와 문화가 살아 있음을 증언한다.



그러나 이 동상이 늘 평화롭게 그 자리를

지켜온 것은 아니다.

20세기의 정치적 격랑 속에서, 독일어

문화의 상징은 이탈리아 파시즘의

눈엣가시가 되었다.

강제로 광장에서 밀려났다가, 전쟁 이후

시민들의 뜻에 따라 다시 돌아온 발터의

모습은 역사의 상흔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1980년대에 복원된 그의 자리는, 단순한

예술품이 아니라 ‘누구의 역사와 문화를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품은

자리라고 한다.


나는 광장 앞에 서서 생각한다.

동상이 말없이 서 있는 그 자리에, 얼마나

많은 목소리와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지.

예술이 단순히 아름다움에 머물지 않고,

정체성과 정치, 언어와 기억을 꿰뚫는

힘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오늘 광장의 분수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그 앞에서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그러나 그 일상의 풍경 속에서도 발터의 시와

노래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는 우리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당신은 무엇을 노래하고,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노상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와 젤라토를

액세서리 삼아 시켜놓고, 그들과 함께

이탈리아안의 문화를 즐겨보았다.

잠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사람들의

발걸음을 바라본다.

여행지에서의 커피 한 잔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낯선 공간을 내 삶 속으로 천천히

받아들이는 의식이었다.

'이탈리아에 왔으니 젤라토와

에스프레소는 먹어줘야지.....'

나는 잘 몰랐던 일행들과도 여담을

즐겼다.


태국 퓨전 음식점에서 저녁 식사를

마무리하였다.

중세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거리를 걸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니, 오늘 관광은 차곡차곡

쌓여가는 사색의 시간이 되었다.

호텔 창문 너머로 알프스 산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오늘은 객실마다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시차 적응을 하며 관광을 나서기 전,

여행객의 몸은 용트림을 준비한다.

멀리서 불빛이 반짝이고,

그 빛은 마치 내일의 여정을 미리

비춰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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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호수의 꿈


작사:콩새작가

작곡:수노


1절

회색 도시를 떠나

푸른 숲길이 열리고

바람이 전해주는

낯선 언어의 노래


2절

거울 같은 호수 위에

하늘이 내려앉고

내 마음은 잠시 멈춰

빛을 따라 흘러가네



무지개 호수의 꿈을 안고

나는 길 위에 서 있네

커피 향 가득한 광장에서

세상은 다정히 다가오네

이 순간을 오래 품으며

내일을 기다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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