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 특검은 여러 차례 왜 총선용 악법인지 설명드렸다.” 한동훈이 신년인사회 때 기자가 질문한 것에 한 대답이다. 이제 김건희는 한동훈이 그 이름을 입에 담지도 못하는 ‘최고 존엄’의 경지에 이른 모양이다. 물론 여기에 더해 최악의 경우 특검이 오로지 도이치 모터스 사건에만 제한된 것이 되기를 바라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특검법에는 수사 대상과 수사 범위에 제한이 없다고 분명히 규정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김여사의 주식 투기만이 아니라 양평 땅 투기 그리고 최근의 디올 가방 뇌물 사건까지 다 조사해서 죄를 물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동훈이 꾀를 내어 이런 식으로 말장난하고 있다.
물론 매우 실망스럽다. 한동훈이 정치판에 등장할 때 그의 지지자만이 아니라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측도 그가 윤 대통령과는 차별성이 있는 언행으로 명실상부한 차기 대선 후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등장하고 나서 보여준 모습은 실망 그 자체다. 주군인 윤 대통령은 물론 그의 아내인 김여사에 대한 존경심에 조금의 흐트러짐이 없는 그의 태도는 오히려 민주당, 특히 이재명 대표가 ‘안심’하도록 만들어 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사람의 이름보다는 그 뒤에 붙는 호칭이 매우 중요한 사회다. 그래서 기를 쓰고 좋은 호칭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윤석열이라는 이름도 반드시 뒤에 호칭을 붙여서 부르지 않으면 신성 모독을 저지른 것처럼 야단법석을 피우는 자들이 넘쳐난다. 게다가 남편 덕분에 덩달아 ‘최고 존엄’의 지경에 이른 김건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부인 김건희 여사라는 명칭으로 불려야 속이 편하다는 듯이 그동안 행세해 왔다. 윤석열 씨나 김건희 씨, 더 나아가 윤석열 김건희로 부르면 국가원수와 ‘최고 존엄’ 모독죄로 총살이나 당할 모양새다. 유난히 서열과 호칭에 민감한 한국 사회의 슬픈 단면이다.
사실 명칭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습속은 유대교와 기독교에서도 만연한 전통이다. 유대교의 신의 본래 이름은 ‘야훼’(יהוה)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로 표기된 יהוה를 철자대로 읽지 않고 ‘아도나이’(אֲדֹנָי)로 발음한다. 곧 문서에 뻔히 יהוה로 표기된 것이 보여도 אֲדֹנָי, 곧 나의 주인이라는 뜻인 ‘아도나이’로 읽는다. ‘최고 존엄’인 신의 이름을 인간의 더러운 입으로 함부로 부를 수 없다는 종교적 경건주의에서 나오는 행위다. 그래서 원래 모음 알파벳이 없는 히브리어에서 이런 전통을 확실히 하기 위해 יהוה의 위아래에 모음 방점을 ‘아도나이’ 식으로 찍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런 유대교의 전통을 이해하지 못한 서양의 신학자들이 히브리어로 야훼를 아도나이의 모음 방점에 따라 여호와로 읽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다행인지 요즘은 יהוה를 ‘야훼’로 אֲדֹנָי를 ‘아도나이’로 읽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물론 정통 유대교 신자들은 여전히 그들의 경건주의를 버리지 않고 과거대로 야훼로 쓰고 아도나이로 읽고 있지만 말이다.
단어와 개념을 두고 목숨을 두고 싸우는 종교계도 이렇게 개화되었는데 21세기 한국의 정치계는 여전히 구석기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라는 사실을 한동훈이 몸소 시전하고 있으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공식 명칭이 분명히 ‘김건희 특검법’으로 나와 있음에도 한동훈을 그 단어를 놓고 굳이 ‘도이치 특검’으로 읽어내는 종교심을 발휘하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서울대 법대를 나온 사람인 윤 대통령이나 한동훈이나 한결같이 김건희를 ‘최고 존엄’으로 모시는 언행을 지속하는 이 현상을 어찌 이해해야 할까? 그런데 ‘도이치 특검’이라는 단어는 비문에 가깝다. 여기에 쓴 도이치는 회사명인 Deutsch Motors, 곧 ‘도이치 모터스’를 줄여 쓴 말로 보이는데 독일어 문법적으로 틀린 표현이다. 독일어로 Motor는 전기 모터가 아니라 자동차 내연기관을 말한다. 영어로 engine을 의미한다. 그런데 독일어 명사 Motor 뒤에 s가 붙으면 영어와는 달리 소유격이 된다. 영어에서는 뒤에 s를 붙이면 복수가 되지만 독일어에서는 복수 명사를 만드는 방법이 매우 다양하다. 가장 흔한 것이 단수 명사 끝에 e를 붙이는 데 이것 말고도 단수 명사의 종류에 따라 (e)n, er, s를 붙이기도 하고 아예 모음에 움라우트를 붙이거나 단수와 복수가 동일한 형태인 경우도 있다. 그리고 Deutsch는 형용사인데 명사와 같이 오면 어미가 격변화를 해야 한다. 명사 앞에 온 형용사를 그냥 날로 Deutsch로 쓰는 법은 적어도 독일어에는 없다. 이런 독일어 원칙에 비추어 보면 Deutsch Motors는 죽도 밥도 아닌 표현이다. 그런 것을 차용해서 ‘도이치 특검’으로 부른다면 이거는 죽도 밥도 아닌 것도 아니라 아예 쓰레기만도 못한 매우 저렴한 수준의 표현이 된다.
Motor의 복수는 en을 붙여 표현한다. 한국에서 유난히 사랑받는 BMW의 풀네임인 Bayerische Motoren Werke Aktiengesellschaft에 나오는 식으로 말이다. 만약 영어식으로 표현한 것이었다면 Deutsch가 아니라 German Motors로 했겠지. 물론 이런 국적 불명의 명칭을 한국 사회에서 사용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특히 아파트 이름을 보면 거의 막장 드라마의 경지에 이를 지경이다. 그 가운데 특히 희한한 것에 ‘신내역금강펜테리움센트럴파크’, ‘항동중흥에스클래스베르데카운티’, ‘e편한세상청계센트럴포레’, ‘휘경해모로프레스티지’와 같은 것이 있다. 그런데 간단히 지은 명칭도 비문인 경우가 많다.
Apelbaum으로 쓰고 ‘삼성동 아펠바움’으로 읽는 아파트 명칭은 분명히 독일어로 사과나무를 뜻하는 Apfelbaum에서 f를 뺀 것으로 보인다. 왜 이런 식으로 국적 불명의 단어를 만들어 쓰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보아도 이런 식으로 국적 불명의 명칭을 만드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한국만의 기형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런 기형적인 단어 만들기에 이제 천하의 한동훈도 동참하는 모양새다. 지금 거의 나락으로 추락한 국민의힘을 도탄의 경지에서 구해낼 흑기사로 등장한 모양인 한동훈이 결국 김건희를 김건희로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이 현실에서 과연 무슨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뉴스를 보니 ‘김건희’라는 세 글자는 여권 내에서 언급조차 안 되는 단어가 되었단다. ‘김건희’의 ‘김’ 자만 이야기해도 윤 대통령이 ‘격노’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김건희가 야훼의 경지에 오른 것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 아닌가? ‘최고 존엄’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 조차 송구스러울 지경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래서 한국의 기래기들도 ‘외람되오나’ 그 고귀한 이름을 불러보겠다는 말도 못 꺼내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 아닌가? 이 정도면 인류 역사의 기록에 남을만한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조차 ‘김정은’은 ‘김정은’으로 ‘김주애’는 ‘김주애’로 불리는 모양인데 남한에서는 ‘김건희’를 ‘김건희’로 불러도 표기해도 안 되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온 국민이 결국 홍길동이 되어야 ‘윤심’의 ‘격노’를 막을 수 있는 희한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기가 막힐 뿐이다.
유대교에서 야훼를 야훼로 부르지 못하고 아도나이로 돌려 부르는 데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유대교의 전통에서는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고 부탁하면 반드시 들어주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유대교의 신의 이름인 야훼를 지칭하면서 기도하면 야훼가 안 들어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전지전능한 신을 이런 식으로 인간이 마음대로 이용한다는 것은 신성 모독이나 다름없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야훼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대면서 이런저런 세속적인 소망을 들어달라고 하면 결국 야훼가 화를 내게 될 것 아닌가? 그래서 야훼를 야훼로 부르지 못하고 ‘나의 주님’이라는 뜻으로 ‘아도나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 이유로 한동훈도 ‘김건희 특검법’으로 쓴 것을 굳이 ‘도이치 특검’으로 읽어대는 것인가? 차라리 유대교에서 하듯이 극존칭으로 바꾸는 것이 어떨까? ‘나의 주인님 특검’ 식으로 말이다. 한동훈에게 걸었던 일말의 희망이 이리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줄은 정말 몰랐다. 초중등학교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여 3학년 때 소년 급제하고 검찰에서 ‘날리면’서 이 자리에 온 최고 엘리트 한동훈의 그릇과 역량이 고작 ‘도이치 특검’이란 말인가? 실망과 더불어 분노가 치민다. 그러나 국민의 ‘격노’는 안중에도 없겠지? ‘최고 존엄’이 아니니 말이다. 그럼에도 말하고 싶다. 정치가에게 ‘최고 존엄’은 천심을 지상에서 반영하는 민심이라고. 그리고 그 민심을 우습게 알고 함부로 자기들끼리 최고 존엄 노름에 빠지면 나중에 빌 곳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공자도 <논어>에서 말했다. 獲罪於天 無所禱也. 곧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도 없다고 말이다. 민심이 천심, 곧 하늘이라는 사실을 한동훈이 이제라도 깨닫고 누구에게 충성해야 하는지 알고 행동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동훈 정도의 최고 엘리트가 겨우 ‘김건희 리스크’에 걸려 몰락하지 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