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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Apr 20. 2024

9. 가상공간에서 만난 미래의 남편

운명의 여신의 실타래는 늘 우연히 풀리기로 시작한다.

지난번에 이야기 한 대로 나는 내 미래 남편의 모습을 꿈에서 정확히 보았다. 약간 왜소한 체격에 안경을 썼다. 그리고 철학자였다. 그래서 대학교 시절 많은 남자를 만났지만, 그 모습에 부합되지 않았기에 모두 헤어졌다. 어쩐지 내 남편이 아닌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불륜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남자를 사귀면서도 맘이 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물론 엄마의 종교인 신앙 마을의 교리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남자와 성적 접촉을 하는 것은 가장 큰 죄악이었다. 그래서 엄마도 내가 사귀는 모든 남자와 손잡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물론 남자를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나는 그런 엄마 눈을 피해 즐겁게 손잡고 다녔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나는 남자와 손을 잡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나중에 점을 배우면서 내 사주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당시는 그랬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대학 종합병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6개월도 못 버티고 나왔다. 사람, 특히 동료 간호사의 ‘태움’을 견디기 힘들었다. 아무리 관례라고 하지만 나의 성정에 전혀 안 맞았다. 그래서 그만둔 뒤 조금 쉬었다. 그러나 엄마가 놀고 있는 나를 견디지 못했다. 그런 엄마를 나도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개인 병원에 취업했다. 간호사가 나 한 명이었다. 하루 종일 오로지 환자들을 접수하고 약을 처방하는 일만 했다. 그리고 환자가 없는 시간에는 고전음악을 듣고 내가 좋아하는 간식을 먹었다. 출퇴근 시간도 크게 압박이 없었다.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것도 좋았다. 비록 급여는 종합병원에 비해 형편없었지만 다른 ‘여자들’이 없는 것이 나는 너무 좋았다.     


사실 내 인생에서 여자들이 늘 문제였다. 중학교 때부터 여자 친구들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 이래 늘 여자들에게 고통을 당했다. 반면에 남자들은 늘 내게 잘 대해주었다. 그래서 여자를 싫어하고 남자를 좋아하는 나의 본성이 더욱 강화되었다. 그렇게 개인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남는 시간에 사주 공부를 시작하였다. 지난 나의 삶이 도대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중학교 때 유진이가 아무 이유 없이 나를 괴롭힌 이유를 여전히 모르겠다. 그리고 아빠가 우울증에 걸린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엄마가, 나를 그토록 사랑하는 엄마가, 그리고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엄마가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내게 그토록 고통을 준 이유도 알 수가 없었다.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신 이유도 궁금했다. 근본적으로 세상 자체가 나를 못 견디게 만드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내다보이는 강남의 저녁 풍경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요란한 간판 조명이 내 정신을 어지럽혔다. 늘 막히는 찻길에 무한히 서 있는 자동차들의 매연과 소음은 문자 그대로 내 숨을 막히게 했다. 길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은 저녁 어둠 속에서 더욱 침울해 보였다. 그런 얼굴로 모두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게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것은 아시아선수촌 아파트의 숲이었다. 병원에서 제조한 약을 환자들에게 소포로 보내기 위해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우체국까지 걸어가는 길에 즐겨 애용하던 길이었다. 오밀조밀 잘 가꾼 숲은 특히 봄에서 초여름까지 숨이 막히게 아름다웠다. 그 안에서 혼자 걸어가면서 나는 무한한 행복감을 느꼈다. 약을 발송하고 나서 버스를 타고 도착한 집의 문을 열면 나를 기다리며 엄마가 준비하는 따스한 저녁 식사의 냄새가 났다. 화장실에서 세면하고 나와 옷을 갈아입고 저녁을 먹고 나서 엄마와 별 대화는 없어도 같이 있는 것이 안심되었다. 그렇게 안온한 세월이 흘렀지만 내 맘 저 깊은 구석에 있는 불안감은 늘 나를 따라다니고, 세상에 대한 혐오는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지런히 자평명리와 자미두수는 물론 뉴에이지에 관한 책을 사서 부지런히 공부했다. 그렇게 직장 생활과 사주 공부를 하다 보니 훌쩍 나의 20대가 마감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교에 입학한 동생이 집에 사놓은 컴퓨터에서 인터넷 서핑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인터넷의 바다에서 사주카페를 찾았다. 그 당시 그 바닥에서 꽤 명성을 크게 얻던 청월이라는 점술가가 개설한 카페였다. 그곳에는 사주를 취미로 심지어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오랫동안 혼자서 병원 사무실에서 공부하던 내게 드디어 친구가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친구들은 가상 세계에 있기에 직접 만나야 하는 부담이 없었다. 안심하고 나를 감추면서 깊은 속내도 드러낼 수가 있는 신기한 공간이었다. 비록 독수리 타법이지만 열심히 타이핑을 하면서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사주를 공개하고 내 인생의 의문을 풀어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내 사주에 대한 풀이가 백인백색이었다. 그 누구도 시원하게 풀이하는 사람이 없었다. 프로들은 거의 없고 아마추어 수준의 해석이 난무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주를 올리고 인생 고민을 상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서 나도 그들의 사주를 보면서 내가 가진 지식을 동원해서 이런저런 위로의 글도 올렸다. 이 카페에서 상담하는 것은 다 무료였기에 백화쟁명식의 논쟁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나서는 습관처럼 컴퓨터를 켜고 사주카페에 들어가 보니 어떤 사람이 사주를 올리면서 자기 고민을 털어놓은 글에 답글이 많이 달려 있었다. 그 글을 일단 읽고 나서 나도 답글을 준비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한 답글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매우 길고 정성스럽게 쓴 글이었다. 그리고 그 글의 말미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었다.     


“Es tut mir leid...”     


고등학교 때 선택한 제2외국어가 독일어여서 그 말의 뜻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글을 쓴 사람이 이 말을 다음과 같이 자세히 해석하여 준 것이 내 맘을 울렸다.      


“... ‘Es tut mir leid.’는 영어의 ‘I am sorry.’와 같은 뜻입니다. 그러나 독일어에서 Es tut mir leid는 직역하면 ‘내 맘이 아픕니다’라는 뜻이 됩니다. 사주를 올리신 분의 사정을 들어보니 제 마음이 아프게 됩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되기에 독일 사람은 ‘Es tut mir leid.’라는 말을 하고 상대방의 아픔에 공감한다는 뜻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문장을 보통 한글로는 ‘미안합니다.’라고만 번역하게 되는 데 이렇게 번역해서는 그 깊은 뜻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     


지금도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문장을 읽으면서 저절로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 그 글을 쓴 사람이 참으로 마음이 따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글쓴이의 주소로 메일을 보냈다.   

   

“... 답변을 쓰신 것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아 이렇게 무례하지만, 글을 보냅니다. 아무런 사례를 받지 않음에도 그렇게 정성스럽게 위로가 되는 글을 쓰신 것을 보고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특히 ‘Es tut mir leid.’ 그 말을 들으니, 눈물이 저절로 나서 이렇게 글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독일어를 매우 잘하시나 봐요. 저도 고등학교 때 독일어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그런 깊은 뜻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

    

매우 긴 글이었다. 그러나 핵심은 그 글을 쓴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런 공감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 사정도 잘 이해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사주가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드디어 그의 답장이 왔다.    

 

“안녕하세요 현주님, ... ”으로 시작하는 글이었다, 사주카페에서는 다 아이디를 사용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내 본명을 알리고 글을 썼다.    

  

“저는 독일에서 오랫동안 철학 공부하고 학위를 마친 후 이제 막 한국으로 들어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사주카페는 방장이신 청월님의 소개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인터넷을 뒤져보다가 우연히 청월님이 사주를 보는 카페를 발견하여 제 사주를 유료로 문의해 보았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서 무엇을 하고 살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아직 자리를 잡지는 못하고 시간 강사를 하는 중입니다. ...”     


그렇다. 느낌이 왔다. 이 사람일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도 답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현우님, ...”     


우연히도 그의 이름이 나와 비슷했다. 그래서 더욱더 운명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그랬다. 그러나 그 운명이 나의 인생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게 될 것이라고는 그때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저 운명의 신의 가혹한 실타래가 나를 더욱 얽어맨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끌리는 나를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그 운명을 선택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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