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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예수는 왜 율법주의를 경멸했을까?

법보다 사람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by Francis Lee Mar 23. 2025

예수는 당시 율법을 성실히 실천한다고 으스대던 바리사이들을 특히 미워했다. 그래서 그들을 독사의 족속이라는 말을 싸가면서 경멸했다. 이에 맞서 바리사이들도 예수가 율법을 어긴다고 공격했다. 이들의 미움이 결국 예수를 사형까지 이끌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예수가 유대교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율법을 어기고 신성모독까지 했기에 유대교 종교 지도자의 분노를 샀고 사형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교리에서는 예수가 율법을 어긴 적이 없고 오히려 율법을 완성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별화를 이룬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유대교에 기반한 것이기에 오늘날 기독교에서도 유대교의 율법, 특히 심계명은 유대교인과 마찬가지로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여긴다. 그렇다고 해서 유대교에서 지키는 모든 율법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취사선택을 하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되 율법주의는 배격한다는 것이다.    

  

과연 율법주의는 무엇인가?    

 

율법주의는 nomism으로 율법을 철저히 지키면 구원을 받는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예수는 율법이 다가 아니라는 발언을 서슴없이 한다. 사실 로마의 속국인 상태였던 유대왕국의 실질적 통합의 중심인 유대교 사두개,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에게 이는 신성모독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예수가 살던 시대에 율법은 타나크 곧 오늘날 구약으로 불리는 성경에 담겨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나중에 등장한 율법을 해석하는 것으로 미드라시, 미쉬나, 탈무드가 있었다. 이러한 여러 해석이 총정리된 것이 우리가 흔히 할라카로 부르는 해석 전집이다. 물론 예수 생존 시절에는 없던 것이다. 예수가 언급한 율법은 당연히 토라 곧 모세 5경에 나오는 613개의 율법을 의미한다.  이 가운데 으뜸은 당연히 십계명이다. 모세가 야훼 신에게 직접 들은 것을 돌판에 새겼다는 전설적인 계명이다. 예수도 이 십계명의 중요성을 부인한 적은 없다. 그런데 예수에게 이 십계명은 결코 영생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었다. 다음 대화를 보자.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랐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10, 17~27)


그렇다. 율법보다 무서운 것이 돈이다. 그리고 그 돈이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들이 지배하던 성전과 산헤드린마저 지배했다. 예수 생존 당시에 말이다. 다음의 대화를 보자.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요한 2,13~22)


이 장면은 공관복음에도 나오지만 요한복음에 가장 세밀하게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가장 거룩해야 할 성전이 이미 그 당시부터 장사꾼들이 모인 곳이 되어버렸다. 제물로 바칠 물건을 성전에서 매매하는 것도 모자라 전도 해준 것이다. 성전에 바치는 돈은 거룩해야 하는 법이기에 일상 상거래에 쓰이는 돈을 낼 수 없었다. 성전 앞마당이라고 있는 이방인의 뜰에서 제물인 비둘기가 매매되고 성전세  반 세겔을 환전주면서 환전상은 폭리를 취했다. 당시 하루 노동자의 품삯이 한 데나리온인데 환전 수수료로 1/3 데나리온을 지불해야 했다. 더구나  환전 금액이 반 세겔이 넘으면 추가 수수료로 1/3 데나리온을 지불해야 했다.  사실 비둘기는 시장에서 사도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물 심사'에 통과가 안 되었다. 그래서 억지로 성전 내에서 판매하는 제물을 사야만 했다. 문제는 성전 밖에서는 3.3 데나리온인데 성전 안에서는 25 데나리온을 받아먹었다. 똑같은 비둘기인데 말이다. 이제물을 파는 가게인 안나스장터는 대제사장 가문이 운영했다. 결국 사제가 이런 식으로 거액의 재산을 축적한 것이다. 그러니 예수가 화가 안 나겠나?


사실이 이런데도 제사장과 바리사이들은 자신이 율법을 지키는 수호자를 자임하며 큰소리치고 다녔다. 그러니 예수의 눈에 그들이 독사의 족속으로 보일 수밖에 없지 않나? 그리고 그런 율법을 내세워 장사하는 성직자가 경멸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예수는 율법을 경시하지는 않는다. 율법을 지키되 제대로 지키라는 말이다. 제대로 지킨다는 것은 사람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이다. 다음 대화를 보자.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데, 마침 그분 앞에 수종을 앓는 사람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은 잠자코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손을 잡고 병을 고쳐서 돌려보내신 다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 그들은 이 말씀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루카 14,1~6)


율법주의에 빠진 바리사이에게 이런 예수의 언행은 신성모독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또 다른 일화를 보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에브야타르 대사제 때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고 함께 있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마르 2,13~28)


법만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법꾸라지 짓으로 돈을 엄청 벌어들이는 제사장과 바리사이들의 속내를 잘 아는 예수가 이런 식으로 꾸짖어도 그들은 결코 깨닫지 못하고 결국 예수를 죽음으로 몰고 가고 말았다. 법 이전에 사람이 있고 사람이 먼저라는 사실을 모르고 일반 백성을 그저 자기들의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고 특권층 놀음이나 하던 바리사이와 사두개가 오늘날에도 넘쳐나지 않나? 목사가 호화로운 저택에 살며 최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고 신자들에게 헌금 안 한다고 호령하고 툭하면 빨갱이 타령이나 하고 있는 한국 교회의 상황을 보고  예수는 뭐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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