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느라 바빠 우린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 그랬어도 소문으로, 전언으로 서로의 사정은 알고 있었다. 남의 얘기란 으레 그런 것이다. 누구는 잘나가던 대기업 팀장에서 명퇴해 일년 가까이 퇴직금 까먹고 있다는 얘기, 알코올 중독이 심해진 누구는 끝내 이혼하고 지방을 떠돈다는 얘기, 다른 누구는 사업을 말아먹고 처가 돈으로 수도권 신도시에 부동산을 개업했다는 얘기들은 알려 애쓰지 않아도 절로 날아와 귀청 깊숙이 꽂혔다.
“우리 나이란 그런 것이야. 인생의 굴곡을 크게 한 번 넘는 것이지.”
아이스 아메리카노 빨대를 쭉 빨아들인 친구가 말했다. 어느새 이런 자리에 가면 노후 준비 이야기가 자연스러운 나이가 됐다.
노후. 국어사전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나온다. 오래되고 낡아서 제 구실을 못하게 된 상태 노후(老朽). 그리고, 늙어진 다음 노후(老後). 둘 다 늙음과 퇴화에 관한 것이니 울적한 낱말풀이다. 아마도 우리 모두 준비해야 할 것은 후자일 테지. 전자에 대한 준비는 딱 하나, 돈이면 충분할 것이고 후자라면 생각할 여지가 많아진다.
친구들은 재테크를 말했다. 아직도 주식 이야기. “내가 그때 그랬잖아. 바이오 종목 사라고. 손해 나면 내 돈으로 벌충해 준다고까지 했는데 왜 안 샀냐. 그러니까 니들이 돈을 못 만지는 거야.” 여전히 부동산 이야기. “서울 아파트가 오르면 뭐하냐고. 다른 데도 죄다 올랐는데. 깔고 앉아 있어 봐야 세금만 더 나오는 걸.” 그리고 사업 아이템 이야기. 그놈의 대박 이야기는 빠지지도 않는다.
노후엔 돈이 있어야겠지. 그리고 그 돈으로 누릴 재미도 가져야 하고. 재미를 만끽할 신체 건강도 필요할 거야. 그래서 나는 배드민턴을 친다. 오래 탐구해봤는데 나이 들어서도 즐길 수 있는 운동 중에 배드민턴만한 게 없다. 우리동네 배드민턴 클럽은 60세 이상이면 회비 절반을 할인해주고(아직 60은 멀었지만), 부부가 같이 나오면 일년 회비에서 한 달치를 더 깎아준다. 이렇게나 좋은 걸 요행히 발견했다.
그리고 팔굽혀펴기를 한다. 나이 들면 팔다리가 가늘어진다. 사우나 온탕에 앉아 가만히 지켜봤는데, 어르신들의 치명적인 신체 약점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가느다란 팔다리더라. 내가 할머니라도 팔다리 앙상한 할아버지는 매력 없을 것 같다. 팔뚝 굵어지는 데는 팔굽혀펴기가 최고다. 하루 두 차례. 육십 번과 사십 번을 아침 저녁 반복한다. 배드민턴을 쳐서 허벅지를 유지하고 팔굽혀펴기로 알통을 만든다. 이 근육으로 돈을 많이 벌어야지.
그럼 무엇을 할까?
아름다운 그림을 떠올려봤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정말 멋진 집을 발견했다. 외곽의 숲 근처 언덕에 지어진 이층 주택. 쓸데 없는 수영장만 없애면 당장 사고 싶은 집이었다. 사진을 캡처해 아내에게 보냈다. “기대하라고. 언젠가 이런 집에서 살게 해줄 테니.” 근거도 없이 큰소리쳤는데, 그러고 나니 슬쩍 기분이 좋아졌다. 거기서 무엇을 할까? 뜰에 나와 햇볕을 쬐고 밤에 군고구마를 까먹고 기도를 하고 잠을 자고.
무엇을 할까? 노후가 되어 어디서 무엇을 할까?
폴 퀸네트의 수필을 읽으며 생각해둔 게 있다. 그는 은퇴 후에 스페인에 가서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머리가 환해졌다. 나도 그래야겠구나. 그런데 왜 스페인인가? 왜냐하면 스페인이 좋기 때문이다. 따뜻한 햇볕과 청명한 공기. 올리브 나무 그늘과 목가적 분위기. 음식도 맛있고 말이지. 무엇보다 스페인은 미국도 아이슬란드도 아니어서 흔하지 않고 속물적이지도 않다. 그냥 이국적인 스페인. 영어도 잘 통하지 않는, 적당히 어렵고 적당히 가려진 나라에 가서 캠핑 의자를 놓고 오래오래 글을 써야지.
말이 통하지 않는 시골 여성이 청소를 해주고 가끔 차를 가져다 주면 좋겠다. 이런 장면을 알고 있다. 영화 <러브 액추얼리>. 최고의 크리스마스 영화여서 매년 연말이 되면 <나홀로 집에>와 함께 영화채널에서 끊임없이 틀어주는 바로 그 영화. 봐도 봐도 지겹지 않은 이 영화에 내가 꿈꾸는 장면이 나온다.
작가 제이미로 나오는 콜린 퍼스가 마르세유 외곽 주택 호숫가에서 포르투갈 출신 파출부 오렐리아의 시중을 받으며 글을 쓰는 장면. 영화의 주제가 사랑이라 그런 설정이었을 테니 내게 아름다운 시골처녀의 시중은 없어도 된다. 그렇더라도 둘의 에피소드엔 새살스럽지만 인상적인 대사가 나온다.
제이미: 당신을 바래다줄 때가 제일 행복해요.
오렐리아: 여길 떠날 때가 가장 슬퍼요.
그러하다.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 실연의 아픔을 딛고 떠나온 작가에게 새로운 사랑은 구원처럼 다가오겠지.
내가 스페인 남부의 한적한 교외 주택을 빌려 호숫가 나무 그늘 아래 앉아 글을 쓴다고 할 때, 배드민턴 라켓을 흔들며 아내가 방해해도 괜찮겠지. 눈가 주름이 자글자글해도. 귀밑머리 검버섯이 돋아나도 말이지. 그때 나는 세상을 놀라게 할 책을 한 권 완성했을 수도 있다. 사람 일 알 수 없는 법이니 꿈꾸는 건 자유다.
그러기 위해 일단은 열심히 배드민턴을 치고 알통을 볼록하게 키워놔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니 기나긴 동창 모임이 지루해졌다. 술도 안 마신 채 취한 친구들의 객담을 듣자니 점점 좀이 쑤셨다. 울분과 자조와 솟구치는 슬픔을 미처 못 숨기는 친구들아. 짠하구나. 여태 배드민턴도 모르는 너희들아. 나는 이만 간다.
3차를 뿌리치고 나와 버스를 기다린다. 지금 내게 그리운 건 딱 한 달의 시한부 방학. 근사하게 나의 플랜비를 연습해볼 수 있는 그 황금의 시간이 다음 정거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