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끼리 둘러 앉아 만두를 빚는 오랜 로망을 이루었다
만두를 좋아한다.
어릴 땐 고기만두가 좋았는데 지금은 김치만두가 좋다.
부추와 고추장아찌를 다져넣은 왕만두라면 비할 데 없이 좋다.
이렇게 말하니 마치 만두에 관해 방귀 좀 뀌나 싶겠지만 실은 만두를 좋아하면서도 만두에 관해 추억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특별히 만두를 싫어하셔서 그러하다.
맞다, 안 좋아한 게 아니라 싫어하셨다, 이 맛있는 만두를.
이유는 간단하여 한입 베어물면 툭 터진 만둣속이 마치 오만가지 음식을 씹다 뱉어논 것 같아 욕지기가 나서 도무지 먹을 게 못된다는 거였다.
한입에 못 먹고 여러 번 베어 먹어야 한다며 한산모시떡조차 양반 먹을 건 못 된다 투덜대신 특이한 취향은 존중하지만. 온집안 식구까지 만두를 못 먹게 막는 건 아니지 않나 이런 생각 조그맣게 하며 만두도 못 빚는. 그래서 못 먹는 불우한 환경에서 수십 번 겨울을 보냈다.
그래서 설이면 둘러앉아 만두를 빚는 친구집이 부러웠다.
하지만 내겐 추석 송편이 있었다.
맛이야 만두에 비할 바 아니지만 여럿 둘러앉아 쌀가루반죽에 팥소 참깨소 넣어 초승달 송편을 만드는 건 명절보다 좋았다. 그래서 공부 잘하던 누나보다 내가 많이 빚었다.
누나보다 잘하는 건 송편 빚는 재주였는데 그건 할매가 어느날 "송편 묘하게 만들면 이쁜 색시 얻는다 카더라"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색시 얻을 일 없는 누나는 가버리고 뭔가 꿈이 생긴 나는 하얗게 줄지어 늘어가는 밥상 위 내 송편을 보며 뿌듯해했다.
만두 얘기하다 웬 송편 얘기냐. 하지만 오늘 신년 기념으로 집에서 만두를 빚었다는 사실.
아들도 딸도 끌어들여 처음으로 온가족 만두를 빚었다.
드디어 나도 소박한 꿈을 이룬 것이다.
만두의 유래는 다소 충격적인데 삼국지에 나온다.
제갈량이 남만을 정벌할 때 화공으로 수많은 남만인들을 태워죽이고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나자 그들의 원혼을 위로하고자 남만 사람의 머리(만.두.)모양으로 떡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다. 만두가 사람 머리라니. 오오 그러고보니 아버지가 만두를 싫어하는 것도 이것 때문이었나. 한입 샥 베어물면 물컹하고 뇌수가 터지.. 앗. 이게 아니지.
여튼 이 맛있는 만두를 온식구 둘러앉아 화기애애 빚었는데. 어린것들은 엉망. 역시 늙은말이 길을 안다고 내가 낫다. 손이 기억하고 있어.
아이들이 금방 지루해하기에 한마디 해줬다. 만두를 이쁘게 빚으면 이러저러하다더라. 에이 멈니까. 비웃으면서도 짜식들 만두 사십개를 금방 빚었네. 서로 지께 이쁘다며.
노동을 놀이로 승화시킨 특별한 시간이었어.
두 개만 먹어도 배부른 대단한 고기왕만두의 주말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