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선 정말 혼인신고만 할까?

라이프치히 시청에서 직접 경험한 독일 결혼식 이야기

by 나흐클랑

독일의 결혼식 문화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어쩌면 이런 이야기들을 지나가면서 들어보신 적 있으실지도 모르겠어요: '예식장에서 하는 결혼식이 없다더라', '그냥 동사무소에서 혼인신고처럼 하고 끝이라더라'라고 말이죠. 네, 정말 그렇답니다. 그런데 실제로 독일에서 결혼식에 직접 참석해 보니, 그럼에도 식마다 차이가 있더라고요. 제가 결혼식 프로참석러(?)로서 세 번의 각기 다른 결혼식을 소개하려고 하는데요, 이야기를 다 보시고 나면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독일 결혼식 문화'가 좀 더 눈앞에 자세히 그려지실 겁니다.


시청 건물 안에서 결혼식 시작을 기다리는 사람들.

첫 번째로 소개할 결혼식은 바로 '시청 결혼식'입니다. 적당한 단어가 없어서 '시청'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요, 독일어로 '슈탄데스암트(Standesamt)'라고 하는 관공서에서 주관하는 결혼식이죠. 슈탄데스암트는 시민으로서의 신분 등록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곳이에요. 방문자들은 혼인이나 출생신고, 더 나아가서 전입 및 전출 신고를 통해 '내가 이 도시의 시민입니다'라고 등록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슈탄데스암트를 '혼인청'으로 번역하시기도 하던데, 사실 혼인청이라고만 하기에는 좀 더 넓은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말하자면 한 도시의 시청(Rathaus) 안에 있는 하위 부서 중 하나가 슈탄데스암트라고 할 수 있겠죠. 도시에 따라 시청 건물 안에 슈탄데스암트가 있기도, 또는 별도의 건물을 사용하기도 하고요. 베를린이나 함부르크 같은 대도시는 서울처럼 '구' 단위 행정구역을 또 나누기 때문에 구마다 슈탄데스암트를 두기도 합니다. 이 날 제가 방문한 라이프치히는 시청과 슈탄데스암트가 바로 옆에 붙어있었어요.


라이프치히 시청 안에는 결혼식을 진행할 수 있는 홀이 있다.

결혼식을 진행하고자 하는 커플은 라이프치히 시에서 제공하는 여러 공간 중 하나를 예약할 수 있어요. 예약에 성공하면, 해당 일시에 결혼 당사자와 슈탄데스암트 직원, 그리고 가족 및 친구들이 함께 모여 결혼식을 진행하죠.


이 날 결혼하는 커플은 라이프치히 시청 안에 있는 홀 중 하나를 예약했고, 그래서 이 날 결혼식은 라이프치히 시청 건물 안에서 진행됐답니다. 토요일 아침 아홉 시. 다소 이른 시간이지만 오히려 건물 동편에서부터 들어오는 자연광을 누리기에는 더 좋은 시간이었어요. 직계 가족들이 참석했고, 신랑 신부가 직접 알고 지내는 지인들 몇 명이 참석했어요. 한국에서는 부모님들의 지인도 하객으로 많이 참석하시는데,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모습.
결혼식 전 과정을 진행하는 슈탄데스베암테(Standesbeamte).

앞에서 제가 '슈탄데스암트가 주관하는 결혼식'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그 이유는 말 그대로 슈탄데스암트 직원, 즉 '슈탄데스베암테(Standesbeamte)'가 이 결혼식을 주관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게 정말 중요합니다. 슈탄데스베암테는 독일의 모든 행정기관을 통틀어서, 결혼 성립을 선언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거든요. 단순히 사무를 처리하는 게 아니라 국가를 대신해 법적 효력을 부여하는 셈이죠.


한국에서는 결혼 당사자가 구청에 방문해 혼인을 '신고'하면 공무원이 처리하는 방식이라, 신고서를 제출하는 순간 갑자기 모든 절차가 끝난 느낌이 들죠. '이게 끝이야? 진짜 부부 된 거야?' 싶은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독일에서는 슈탄데스베암테가 법적 요건을 사전 심사한 뒤, 최종적으로 직접 결혼 성립을 선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라이프치히 시청의 홀은 내부가 정말 아름답다. 햇빛이 들어오며 형성되는 자연스러운 명암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더한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서명하는 행위는 큰 의미가 있다.

그래서일까요? 개인적으로는 이 슈탄데스암트 결혼식이 갖는 의미가 크게 느껴졌습니다. 이전에 '시청 결혼식'이라는 단어를 듣기만 했을 때보다 훨씬 더요. 사실 결혼이라는 건 두 사람의 관계를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묶는, 그야말로 '구속'하는 것이겠지요. 이 결혼식은 거기에 법적 권위가 부여되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국가를 대리하는 대리인과, 증인들이 보는 앞에서, 당사자들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서명함으로써 말이죠.


문득 한국과의 문화 차이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한국의 결혼식 문화에서 핵심 키워드를 뽑아내자면 '집안의 잔치'가 아닐까 싶어요. 사람들은 결혼식이 당사자 두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각 집안의 어른들에게도 의미가 있다고 여기죠(어쩌면 당사자들보다도 더요!). 게다가 '축의금을 회수한다'라는 유머 섞인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민망하지 않게 서로의 집안에 물질적인 부조를 제공하는 명분이 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독일의 결혼식 문화는 당사자 두 사람의 '관계의 구속'에 좀 더 초점을 둔다는 느낌입니다. 타인이, 그것도 내가 얼굴 붉히기 싫은 가까운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문서에 직접 서명해 법적 효력을 발생시키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죠. 그리고 그 무게감이 이 결혼식의 핵심이고요.


물론 이건 뭐가 더 좋고 나쁜지의 문제는 아닙니다. 각 사회는 저마다 고유한 모양의 공동체성을 갖고 있을 텐데, 이런 혼인 문화를 통해서 그 공동체가 지향하는 바를 엿볼 수 있는 거겠죠.


단란한 분위기로 진행된 카페에서의 피로연.

예식장에서 식을 올리는 게 아니니, 하객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선 다른 장소가 필요하죠.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부부와 하객들은 라이프치히 시내에 위치한 오래된 카페로 이동했습니다. 신혼부부가 사전에 미리 예약한 공간이죠. 이 공간에서 참석자들은 여유롭게 마저 시간을 보냈습니다. 커피와 케이크, 사람에 따라서는 간단한 브런치를 곁들이면서요.


참석자가 스무 명 남짓이다 보니, 단란한 분위기도 나더라고요. 신랑 신부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잔칫집'인 피로연장보다, 오히려 이런 분위기에서 한 사람씩 대화를 나누기에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신랑 신부를 축하하는 마음은 어디나 똑같지 않을까?

이렇게 제가 다녀온 첫 번째 결혼식을 함께 살펴봤습니다. 라이프치히는 독일 동부를 대표하는 대도시인 만큼, 결혼식이 진행되는 시청 홀도 크고 멋있었죠. 하지만 모든 도시가 이런 느낌의 장소를 제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도시마다 갖는 분위기도 다를 테고요.


그래서 다음 결혼식은 독일 남부의 작은 시골 마을로 가 볼 거예요. 그곳에서의 결혼식은 이 날과 어떤 점이 비슷하고, 또 어떤 점이 다를까요? 전혀 다른 공간,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했던 한 여름의 결혼식도 곧 소개할게요.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2편: <아침부터 자정까지, 독일 시골 마을 결혼식>

https://brunch.co.kr/@nachklang/13


3편(시리즈 完): <독일 결혼식 마지막 편: 스몰 웨딩의 정석>

https://brunch.co.kr/@nachklang/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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