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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Sep 13. 2022

맛집 발굴

맛집은 경험과 추억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맛집’이라는 단어는 언제 생겨난 걸까? 나의 유년기와 아동기에는 분명 없던 단어였는데 말이다. 음식 맛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음식집이라는 뜻의 ‘맛집’이 고유명사로써 대체 불가하게 쓰이기 시작한 건 내 기억에 10년 안팎이다.


그렇다면 맛집이라는 단어가 쓰이기 전엔 어떻게 표현했을까? 맛있는 집, 맛있다고 유명한 집, 줄 서는 집. 뭐라 뭐라 수식이 필요했겠지만 ‘맛집’만큼 명확하고 직관적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맛집이라는 단어가 등장했을 때 나를 포함한 다수의 사람은 속으로 탄성을 질렀을 게 분명하다.

그래, 이제 그 식당을 말할 때는 ‘맛집’이라 말하면 되겠구나! 하면서 말이다.


이미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애정하는 맛집이 있었다. 학교 교문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오래된 전통시장이 나왔는데 그곳에 유명한 닭강정집이 있었다. 당시 가격으로 반 마리에 4천 원, 한 마리에 7천 원. 반 마리는 두 명이 미친 듯이 배부를 정도의 양이었다. 닭강정이 너무 먹고 싶은 날, 혹은 점심 도시락을 미리 다 먹어버린 날이면 친구에게 닭강정을 제안한다.

“각 2천 원씩 닭강정 어때?”

“콜”


친구가 수락하면 그날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11시 50분 즉시 뛰쳐나가야 했다. 경쟁자가 많아서 조금이라도 늦으면 줄을 서야 하고 피 같은 점심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1시 45분부터 꺾어 신은 실내화 뒤축을 바르게 펴서 신고 몸은 의자 옆으로 돌려 앉아 바로 교실 뒷문으로 뛰어나갈 수 있는 자세로 닭강정을 염원했다. 이윽고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친구와 나는 옆도 보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려 나갔다.


그렇게 열심히 달려 나가 닭강정집에 도착하면 입구에서 반 마리 주문하고 들어가 앉아 숨을 고른다. 채 썬 양배추에 케첩과 마요네즈가 섞인 소스가 뿌려져 나오고 치킨무가 그득 쌓여 나온다. 양배추 한 접시를 비울 즈음 닭강정이 나온다.


윤기가 차르르 흐르는 소스 속에는 세상 무엇보다 바삭한 닭강정의 본체가 느껴진다. 닭을 강정화했으니 바삭한 게 당연지사! 달기만 하면 맛없을까 봐 청양고추가 듬뿍 들어가 끝맛은 매콤했다. 주변에는 이 가게를 따라한 닭강정집이 몇 개 있었지만 도무지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열정적으로 달려 줄을 서야만 하는 가게에 비해 주변 가게들은 늘 한산했다.

닭강정집은 인천 사람들만의 아지트 같은 느낌이었는데 내가 대학생 무렵엔가 방송에 몇 번 나오고 SNS가 유행하면서는 더 유명해졌다. 결혼 전에 남편과 가봤더니 포장하는 줄만 해도 한 시간이 넘게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식당에서 앞에 한두 팀을 기다리는 정도는 괜찮지만 시간 단위로 기다려야 할 땐 주춤해지곤 한다.


요즘 시대 맛집은 기다림이 디폴트가 됐다지만 그 현상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기에 나는 속이 좁은 모양이다.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먹어야만 하는 게 즐거움이 맞는지, 정말 영업방식과 구조상 오래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게 맞긴 한 건지, 이 기다림에 의도는 없는지 오만 생각이 다 든다. 내가 생각하는 맛집이란 즐거움과 다정함도 함께 곁들여져야 하는데 마치 ‘을’의 입장인 듯 긴 시간 기다려야만 하는 가게라면 아무래도 다정함이 결핍된 것 같다.


지금은 없어진 맛집도 하나 떠올려본다. 마찬가지로 인천에 있던 동치미 국숫집이다. 국물이 인위적이지 않으면서 깔끔하고 깊은 맛이 나는 게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언제부턴가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친구들을 데리고 가곤 했다. 친구들에게 밥 한 끼 사주면서 맛있는 음식 알려주고, 겸사겸사 나도 한번 맛있게 먹고 오니 좋았다. 그 국숫집을 알게 된 이후 한동안 친구들과 주 1회 정도는 방문한 것 같다. 그러다 어느 날 가봤더니 다른 식당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자취를 알 수는 없다.


그리고 동치미국숫집 못지않게 현재 시점에서 애정을 갖고 친구들을 불러 모으는 맛집이 있다. 일산으로 이사 오고 알게 된 양식당인데 그 식당의 알배추 샐러드가 그렇게 맛있다. 이마를 탁 치는 샐러드의 맛! 알배추 4분의 1포기를 통으로 구워 드레싱을 얹은 심플한 샐러드인데 그 맛이 굉장하다.


알배추 샐러드를 먹어본 이후 또다시 나는 주 1회 이 양식당을 찾고 있다. 물론 홀로 가진 않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동네 친구, 예전 동료, 남편과 내 반려견 모카까지 그 양식당에 자주 방문했다.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곳이기 때문이다. 데려간 사람들이 나처럼 알배추 샐러드에 감탄할 때면 만족감이 펄펄 솟아오른다.

최근 알게된 솥밥집. 일주일에 두번 감ㅋㅋㅋ

그 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맛집은 곳곳에 있는데 몇 개만 더 적어보자면 파주에 살 때 정말 맛있는 생크림 케이크집이 있었다. 케이크가 정말 맛있어서 생일이나 특별한 날에만 먹기엔 갈증이 나는 바람에 나와 남편은 아무 이벤트가 없는 날이라도 종종 홀케이크를 사 먹었다.


지금 사는 동네에는 어떤 메뉴를 시켜도 실패 없는 중식당이 있다. 식사메뉴 모두 훌륭하고 요리도 굉장히 맛있다. 가끔 코스를 먹기도 하는데 무엇 하나 빠지는 음식이 없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지만 배달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평일에 오픈하는 11시 반에 맞춰 방문해도 이미 좌석의 절반 이상이 차 있다.


최근에는 뜻밖의 맛집을 발견했다. 한국민속촌에 공포 프로그램을 보러 방문했는데 예보에 없던 폭우가 쏟아져 급히 대피한 날이었다. 순식간에 물이 불어 발목까지 차올랐고 모든 프로그램은 취소됐다. 정자에 대피해 있던 나와 남편은 이대로는 집에 못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첨벙거리며 민속촌 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배도 고프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 너무 고될듯해 입구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우리처럼 비 때문에 급히 들어온 인파로 식당은 가득 찼고, 군데군데 지붕에서 비도 새고 있었다.


그래도 여차저차 자리를 찾아 앉았고 해물파전과 육개장을 주문했다. 나는 육개장을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한술 뜨자마자 내가 지금껏 먹은 육개장은 육개장이 아니었음을, 본질을 흐린 멍텅구리 국물이었음을 알았다. 국물 한 방울 남지 않을 만큼 열렬하게 먹었다. 정말 맛있는 육개장이었다. 진정한 육개장은 민속촌 식당에 있었다.

브런치 맛집 = 우리 집ㅋㅋㅋㅋ

이렇게 살면서 만난 이런저런 맛집들이 있고 그 음식들을 떠올리면 음식 맛만 기억나는 게 아니라 함께 먹은 사람, 그 사람과 식당으로 향하며 나눈 대화, 식당에서 벌어진 경험 등등 여러 가지가 감자 줄기처럼 함께 딸려 나온다. 어쩌면 맛집이란 그 식당으로 가는 여정과 그곳에서의 신선한 경험이 어우러져 맛이라는 감각으로 압축되는 ‘시간’ 아닐까.


‘어차피 아는 맛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아는 맛이라 다시 먹고 싶고, 먹고 싶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HMR이 이토록 발달한 세계에 살면서도 우리가 굳이 시간과 여유를 만들어 맛집에 찾아가는 이유는 비단 음식 때문만이 아니다. 맛집이라는 짧은 단어에 압축된 경험과 추억을 사랑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저녁에도 어디론가 향하는 여정을 떠난다. 마음을 사로잡는 맛집 발굴은 아무래도 지치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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