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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Oct 04. 2022

널 사랑할 수 있어 다행이야

강아지와 사는 건 참 설레는 일이다

아침에 알람은 7시에 울린다. 하지만 잠에 깨기 시작하는 건 대략 6시 40분쯤. 뒤척이는 존재들 때문에 잠귀가 섧은 나는 뉘엿거리며 눈을 뜨게 마련이다. 곁에는 늘 그렇듯 8년째 함께 잠드는 남편과 그 사이에 끼어 자는 강아지 모카가 있다.


모카는 집에 데려올 때부터 거실에서 따로 잤다. 그러다 이 집에 이사 올 무렵 에어비앤비에서 지내는 동안 우리와 함께 자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주로 숙소의 큰방에서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레 한 침대에서 잠들었고, 이때 모카는 뭔가를 깨달은 모양이다.

‘오잉, 엄마 아빠랑 떨어지지 않고 자도 되는 거였어?’


이런 식의 깨달음이 있던 모양인지 이사를 와서 아무리 따로 자려 훈련해도 통하지 않았다. 2인용 침대에 어른 둘 이상의 존재가 있으면 아무래도 좁다. 게다가 다리가 쭉쭉 뻗어 길쭉한 모카의 잠버릇은 네 다리를 사용해 상대를 밀어내며 자는 것이다. 내가 침대에서 떨어질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떻게든 따로 자려했지만 모카는 꿋꿋하게 버텼다. 모른 척 침대에 올려주지 않았더니 두 시간 넘게 침대 옆에 서 있을 정도로 고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함께 자기 시작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간다. 나는 6시 40분쯤 눈을 뜨지만 모카는 6시 30분 조금 넘으면 눈을 뜨는 듯하다. 항상 먼저 일어나 나와 남편에게 뽀뽀를 하며 깨우려 들고, 그러다 일어나는 남편의 기척과 더불어 나 역시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마주치는 모카의 얼굴은 정말이지 너무나 사랑스럽다. 매일 보는 얼굴인데 매일 설레는 건 무슨 조화람.

그렇게 일어나 남편과 내가 아침식사를 할 때 모카도 식사를 한다. 거실 러그 위에 앉아 밥을 준비하는 나를 지그시 쳐다본다. “모카도 맘마 할까?”라고 물으면 특히 ‘맘마’라는 단어에 귀를 펄럭이며 반응한다. 남편과 내가 먹을 과일이나 빵 같은 것을 차려둔 다음 모카의 사료와 영양제, 토핑 등을 넣어 아침밥을 만들어 다가간다. 그러면 러그 위에서 펄쩍 일어나 총총총 다가와 식사를 한다.


그리고 오전에는 집안일을 하면서 오며 가며 모카와 장난감으로 놀이를 해준다. 강아지의 악력을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터그놀이를 하고, 노즈워크도 해준다. 그리고 오전 9시경 내가 서재에 들어오면 모카도 따라 들어와 한숨 잔다. 누가 시키거나 가르친 적이 없음에도 항상 가족과 가까운 곳에 앉거나 쉬는 일상이 모카에겐 아주 당연한 것이다.


그렇게 모카는 잠시 지루한 시간을 보낸다. 내가 점심을 먹을 땐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상추나 배추 조각을 얻어먹기도 한다. 조용히 잘 기다렸다며 내어주는 간식도 먹는다. 그리고 오후에도 내가 일을 하게 되면 다시 발치에 앉아 쉬고, 업무가 없다면 점심식사 후 가장 화창한 시간에 함께 산책을 나간다.


산책을 나가기 위해 선크림을 바르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이것저것 산책 용품을 꺼내 준비한다. 그동안 모카는 들뜬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부산스럽게 군다. 목줄을 걸기 위해 몸을 잡으면 모카의 설레는 심장이 모터처럼 우다다거리는 게 손으로 전달된다.


현관을 나서면 그때부터 모카의 세상이다. 여기저기 자라나는 풀내음과 꽃내음을 맡느라 정신이 없다. 동네 강아지들이 남긴 흔적을 졸졸졸 따라 걷기도 한다. 그 시간에는 나 역시 내 세상을 즐긴다. 모카를 키우기 전에는 주로 밤에 걸어 다녔고, 홀로 음악을 들으며 정처 없이 걷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이어폰을 집에 두고 나온다. 바람이 나무를 스치는 수수수-소리를 듣고 개성 있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새로 생긴 빵집이나 가게를 발견하면 기억해두고, 숲 속에 피어난 요란한 색깔의 버섯을 발견하면 즉시 도망친다.


그렇게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산책한 뒤 집에 돌아와 모카의 발을 닦아준다. 실컷 놀다 들어왔으니 모카는 맡겨둔 것처럼 간식을 달라며 내 주변을 뱅글거린다. 내가 냉장고의 문을 열면 펄쩍거리며 기뻐하고, 간식을 입에 쏙 넣어주면 리듬감 있게 자기 방석으로 가 천천히 음미하며 먹는다.


그리고 모카는 잠시 낮잠을 자고 나는 책을 읽거나 간단한 요리를 한다. 모카의 간식을 만들어주는 시간도 주로 산책을 다녀온 뒤 한가한 오후다. 주로 닭가슴살과 단호박 등을 말려주곤 했는데 지난해 강아지 요리책을 산 이후 간식 메뉴가 다양해졌다. 뭘 만들어주든 맛있게 잘 먹는 모카 덕분에 보람이 꽤 크다.

그러다 해가 지고 달이 뜬 다음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모카는 또 한 번 거대한 에너지를 분출한다. 산책으로 단련한 근육, 사료와 간식을 먹으며 쟁여둔 에너지, 그리고 기쁜 마음을 똘똘 뭉쳐 남편을 요란하게 맞아주는 일이다. 현관문이 열리고 신발을 벗는 남편에게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가는 건 나보다 모카다. 그리고 걸어 들어오는 남편 다리를 탁탁 쳐가면서 주책맞게 맞아준다.


그리고 잠시 의식을 가져야 한다. 모카의 반가움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달려 나가는 마중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그래서 남편이 잠시 소파에 누우면 모카가 폭 안겨 뽀뽀를 한다. 반가움의 표시이거니와 밖에서 일하고 온 남편이 아프진 않은지, 이상한 냄새가 나진 않는지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늘 자신이 갖고 놀았던 장난감을 물고 와 남편 앞에 내려다 놓는다. 마치 “아빠도 같이 놀래?”라고 하듯 눈을 반짝이며 의사를 묻는다.

여기까지는 거의 매일 반복되는 모카와의 시간이고 그렇지 않은 시간도 있다. 내가 아파서 앓아누우면 모카는 비상이다. 침대에 누워 끙끙거릴 때면 물 마시러 가거나 화장실도 가지 않은 채 내 옆에 몸을 붙이고 일어날 때까지 지켜준다. 최근에는 이유 없이 두통이 심해 12시간 정도 누워있었는데 모카는 그날도 12시간 내내 내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기운을 차려 침대에서 내려오면 모카도 그제야 내려와 물을 마신다.


집에 낯선 사람이 찾아오는 때도 특별한 일상이다. 방문객이 있으면 낯선 사람이 우리 집에 왔다며 잠시 짖지만, 사실 모카는 몹시 겁이 많아 낯선 사람에게 대적할 수 없다. 고작 하는 거라곤 30초쯤 짖다가 식탁 밑에 들어가 징징거리는 게 전부다. 그나마도 방문객이 간식을 주고 냄새를 맡게 시간을 주면 금방 친해져 애교를 떨고는 한다.

매일 모카와 함께 하는 일상은 3년을 훌쩍 넘었다. 앞에 적은 이야기에서 모카를 언급한 부분을 지우고 읽어보면 허우룩하고 여백이 너무 많다. 모카가 없다면 평생 무맛 무취의 식사를 하듯 밋밋한 회색의 세계를 살게 될 것이다.


다시 모카를 언급한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강아지와 사는 게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체감이 된다. 내가 허튼 시간을 보내며 가라앉지 않도록 톡톡 건드리는 모카의 발랄함과 자연의 변화를 만끽하도록 이끄는 산책길은 12색 색연필을 쓰던 인생에 128색 색연필을 선물 받은 기분이다. 아침에 눈 뜨며 만나서 잠들 때까지 설레고 생기 있게 살게 해주는 반려생활이다.


강아지는 오늘만 산다고 한다.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매일 솔직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존재다. 걱정 많고 예민한 내 곁에서 정반대 성향의 모카가 있기에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그러니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모카를 만나 함께 할 수 있어 정말이지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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