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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Aug 28. 2024

재능력자_3

연애할 때에도 재능을 사용해

그나마 이 재능이 위안이 되는 건 연애할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거야. 오래전에 헤어진 남자가 있어. 되게 잘생겼지. 코가 아주 높은데 그 콧대가 가느다란 타입이었어. 코가 높은데 콧대가 두꺼운 건 매력이 없거든. 코가 높고 가느다란 게 내가 느끼는 잘생김의 핵심이야. 그 남자가 딱 그랬어. 높고 가느다란 콧대와 적당히 큰 눈매, 큰 키와 큰 손. 한 번씩 무심한 듯 풀썩, 하고 웃는데 그게 또 사람 미치게 하지.


그때가 스물인가 스물한 살인가 그랬는데, 그 무렵에는 시답잖은 명분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잖아. 무슨 모임이니, 동호회니 하면서 모이는데 왁자지껄 웃고 떠들고 친한 듯 굴지만, 그 안이 텅 빈 관계들의 집합체 같은 것. 그런 데서 만났어. 사람이 많은 데도 그 잘생김이 문득문득 눈에 띄었어.


그러다 아침까지 남아있던 멤버들끼리 맥도널드에 가서 맥모닝을 먹었거든. 그때 그 남자가 맥도널드 밀크쉐이크를 마셨어. 하여간 밀크쉐이크를 참 좋아했어. 나는 쉐이크 끝맛에 살짝 토한 맛이 나서 싫은데 말이야.


수십 명이 왁자하게 놀다가 몇 명 소수가 남았을 땐 이야기도 편하니까 말도 좀 걸고, 어떻게든 관심을 끌고 싶은데 도무지 안 돼서 고민만 하다가 재능을 써버렸지. “한 입만!”이라 외치고 냅다 그 사람이 마시던 밀크쉐이크 빨대를 입에 넣었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

‘별로 이쁘지도 않은데 말은 왜 이리 많지.’


토한 맛이 나는 쉐이크도 참은 결과가 너무 수치스러운 거야. 기껏 용기 내서 처음 본 남자 쉐이크에 입도 댔는데 소득은 별로 없고, 지켜보던 사람들은 나를 보며 절레절레하고. 하, 기분 참. 그래도 그렇게 시작되는 거지. 결국은 연인이 됐으니까.


그 남자랑은 뭐든 처음 해보는 게 많았어. 그래서 지금까지 오래 기억하나 봐.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 나이에 하는 연애는 대개 처음 경험하는 것의 특혜를 받고 시작하는 거 아닐까? 스물, 스물한 살 무렵에 경험이 얼마나 있겠어. 뭐든 신기하고 재미있고 특별하고 신선했지.


그래, 그 당연한 사실을 그땐 몰랐어. 살다 보면 처음의 순간은 항상 다가오게 마련이고, 그 나이에 처음이 다이아몬드급 기회도 아닐 텐데. 내가 너무 목을 맸지. 재능을 써서 항상 그의 기분을 맞추고, 마음에 드는 행동만 골라 하고, 싫은 내색이 있으면 즉시 몸을 낮추고. 그래서인가. 나중에 이별 통보받을 때는 나를 아주 지겨워하더라고. 마지막 그 남자 감정을 읽을 때도 빌어먹을, 그 끝맛이 토한 것 같은 밀크쉐이크 맛을 봐야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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