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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렌체장탁 Oct 17. 2024

점점 낮아지는 자존감.. 다이어트.. 다이어트.

레몬 디톡스

  탁은 오늘로 7일째 밥을 먹지 않았다.


 그저 생수에 레몬과 고춧가루, 꿀을 섞은 물을 허기가 느껴질 때마다 벌컥벌컥 마셨을 뿐이다.

이른바 '레몬디톡스' 다이어트였다. 탁은 살면서 한 번도 마른 적은 없지만 항상 늘씬하다는 소리를 듣고 살아왔다. 169cm의 큰 키와 글래머러스한 가슴 사이즈, 살이 잘 붙지 않는 얼굴형 덕분에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시절에도 늘 살쪘다는 걸 잘 감추고 살 수 있었다. 특별히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적당히 잘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다이어트를 했을 때도 그저 헬스를 병행했을 뿐 밥을 굶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오늘 7일째 오직 레몬물만을 의지한 채 버티고 있었다. 출근 전 아침마다 레몬물을 만드느라 야단법석이었지만 그녀는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니까.


"탁 씨, 그러다 쓰러지는 거 아니야?"


 입사 3개월 터울의 신선배가 걱정스러운 듯 말을 건넸다. 동병상련의 신입동지로서 매일 시켜 먹는 야식만이 그들의 위안이던 시절이 있었다. 야근을 할 때마다 신선배와 탁은 쟁반짜장 2인분을 시키고도 보상심리로 국물이 필요하다며 짬뽕과 탕수육을 추가로 주문해서 함께 기꺼이 먹던 둘도 없는 야식파트너였다. 그런 탁이 일주일째 사무실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자 신선배도 초조해졌던 것이다.


"선배, 저 정말 괜찮아요. 이게 이틀이 힘들지... 3일 차부터는 배도 안 고프고 몸도 가볍고 일도 더 집중 잘되는 게 왜 진작 안 했는지 모르겠다니까요?

"아니.. 그래도 사람이 곡기를 끊고 일주일 넘게 있는 건 분명 문제가 생길 거야. 언제부터 밥 먹을 거야?"

"2kg... 딱 2kg만 더 빠지면요!"


"아니, 근데 살은 갑자기 왜 빼는 거야?"


"건강 지켜야죠....!"


 자신 있게 대답하려 했지만 탁의 목소리의 끝이 흐려졌다. 신선배 책상 위에 놓인 초콜릿 껍질을 멍하니 응시하면서 침을 꼴깍 삼키는 주제에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벼랑 끝으로 내몰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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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이트데이였다.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사탕을 준다는 날.


 S는 기념일을 챙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때마다 자신을 잘 챙겨주는 탁을 위해 작은 꽃다발을 하나 준비했다. 늘 반포의 자기 집 근처에서 데이트를 했기에 탁의 동네로 가기로 했다. 오늘은 탁의 부모님도 모시고 맛있는 저녁을 대접할 생각이었다.

 얼마 전부터 양가 부모님께 서로를 소개하고 교류하기 시작했다. 꼭 결혼을 염두에 둔 건 아니지만 매일 만나 함께 지내게 되면서 외박이 잦아지자 부모님들이 걱정을 하기 시작했고 우리 참 건전하고 예쁜 커플이란 것을 보여주기 위해 부득이하게 그리고 자신 있게 서로를 소개해주게 된 것이 계기였다. 다행히도 양가 부모님은 커플을 기꺼이 여기셨고 S의 부모님은 탁을, 탁의 부모님을 S를 자주 초대하고 예뻐해 주셨다.


 특히 S는 탁의 아버지와 죽이 잘 맞았다. 애주가였던 탁의 아버지는 평생 딸 둘 아빠인 게 자랑이라고 말씀하며 사셨지만 아들 같은 S가 나타자나 홀딱 반해버렸다. 딸들과 아내에게 그간 서러움이 쌓여있었다는 듯이 S만 오면 벌컥 소주를 들이키며 남자들만의 대화를 하자며 그를 독차지하려 하셨다. 탁의 어머니 역시 처음에는 퉁명스러웠으나 서글서글하고 잘생긴 S의 마력에 넘어가고 말았다.


"결혼도 안 할 건데 뭐 하러 데려오노?" 라던 첫 반응과 달리 S가 오면 상다리 부러지게 술상을 차려주시거나 혹은 동네 맛집 투어를 3차 정도 예약해 놓으시며 그를 환대해 주셨다. 특히 S의 마음에 들었던 것은 탁의 부모님 애주가이셨다는 것이다. 술 한잔 기울이려고 하면 쉬신다는 본인의 부모님과 달리 탁의 부모님과는 주량 껏 마시고도 솔직한 속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부모님 연배의 사람이 이렇게 편하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과유불급이었을까.


 그날도 동네 갈빗집, 육회집, 김치찌개집 등 여러 맛집을 전전하며 포식을 하고 탁의 집에서 마무리를 하려고 들어온 참이었다. 탁의 부모님은 물론 S와 탁 모두 얼큰히 취해있었다. 탁에게 주려던 꽃다발은 어느새 탁의 어머니 품에 안겨있었다. 꽃다발의 여파인지 평소에는 그래도 말투가 차가운 편이던 어머님은 오늘따라 S에게 더더욱 따뜻하고 편하게 느껴졌다.


 갑작스레 어머님의 입에서 예상치고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많이 듣던 질문이었다.


"너는 근데 왜 탁을 좋아하는 거야? 내 딸이지만.. 저기 술 취해서 뻗어있는 거 보면 참...."

"어머님, 탁이 얼마나 이쁜데요!!!"


 여기서 끝났어야 하지만 오늘따라 S는 탁의 부모님과의 자리가 더더욱 편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어머님, 근데요... 저는 정말 탁이가 너무 예쁘고 너무너무 사랑하거든요???"

"그런데?"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저한테 탁이를 왜 좋아하냐고. 뭐가 좋냐고 물어봐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니.. 멈춰.. 멈.... 춰.. 그만...


" 저는 그게 너무 속상해요. 제가 뭐 엄청 잘난 사람도 아니고 솔직히 탁이 훨씬 대단한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전 정말 탁이가 좋은데 그걸 왜 사람들이 의심하고 자꾸 물어보는지 모르겠어요.. 탁이 정말 예쁘고 똑똑하고 착하고 전 정말 다 알거든요."


"그래, 고맙다. 우리 딸 예뻐해 줘서..."


"근데요.. 근데요 어머니.... 저 근데 탁이가 살 조금만 빼면 좋겠어요. 저랑 사귀고 나서 살이 많이 쪘는데 그것 때문에 더 그런가 싶고 저도 사실 탁이가 날씬한 게 좋고요.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거 알지만 그냥 어머니께 솔직히 말씀드리는 거예요. 맨날 사람들한테 그런 소리 듣는 거 저도 힘들거든요. 그렇다고 탁이 싫다는 건 아니에요. 지금도 좋은데 너무 좋은데 그냥 살 좀 뺐으면 좋겠어요....."


" 아이고.. 이를 어째.. 그런데 나도 동감이야."


 불행 중 불행은 탁이 술기운에 침대에 누워있었지만 잠들진 않았었다는 것이다. 탁은 어머니와 S의 대화를 한 톨도 빠지지 않고 다 듣고 있었다. 혀가 꼬여가면서 저런 소리를 내뱉은 S는 그리고 저 이야기를 듣는 우리 엄마는 어떤 심정인 걸까.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느꼈지만 탁은 그저 조용히 결심했다.


'그래.. 뺄게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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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있으면 일 년에 한 번 회사에 신체 및 건강검진한 결과를 제출해야 하는 날이었다. 다이어트를 결심했던 탁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아무리 업무 상 기밀이 원칙이라고 하지만 몇몇 여사원들의 신체사이즈는 인사팀 사원들을 통해 공유될 수도 있었다.

 생각보다 몸무게가 더 많이 나간다거나 한다면 더더욱.


 그래서 탁은 굶었다. 7일 동안이나...


 벌써 6kg 이 빠졌다. 입에서 쉰내가 나고 손가락 하나 하나까지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탁은 매일 줄어드는 몸무게와 그날 밤의 대화를 생각하면서 참고 또 참았다.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 12시에 퇴근하는 동안 레몬물만으로 버티기가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내 망신이 아니라 S의 망신이라고 생각하면 몸무게를 1kg이라도 더 줄여야만 했다.


 간절했다.

세상 어떤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의 어머니를 붙잡고 그런 소릴 할 것인가.

그간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날 밤 꼬인 혓바닥으로 울먹이던 S의 목소리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는 한 번도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다이어트를 권하지 않았다. 살이 쪘다거나 그녀 때문에 사람들에게 시달려 힘들다는 내색도 한 적이 없었다. 그저 그녀에겐 예쁘다, 예쁘다 해주었지만 그날 밤 그녀는 들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S에게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벌써 일주일째 만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의아해하긴 했지만 회사 상황을 잘 아는 덕분에 그녀를 이해해 주었다.


"보고 싶어. 우리 언제 봐?"

"좀만 참아. 거의 다 됐어. 기대해라."

"뭐?? 뭘 기대해?"


 살이 빠진 자신을 보며 감격할 S를 상상하며 탁은 행복해졌다. 이틀 정도만 더 하고 서프라이즈로 나타나야지.. 그러나 그녀의 서프라이즈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끼이이이익-------------------------탕.'


 성수대교에서 올림픽대로로 빠져나가는 길이었다. 탁은 직진을 하고 있었고 옆의 차는 도로에 진입하려는 중이었다. 보통 같으면 옆에서 빠른 속도로 진입하는 차를 인식하고 그녀가 엑셀레이터를 밟아 속도를 높이거나 브레이크를 밟아 양보를 해줄 참이었다. 기력이 없어 시야가 흐렸던 탁은 옆에 빠른 속도록 차가 오는 것을 보고서도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고 그 차는 그대로 탁의 조수석을 박았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탁의 차는 밀려 중앙선을 침범했다.

다행히 반대편에서 오는 차가 없었다. 한 대라도 있었다면 정면충돌의 상황이었다. 사고가 일어나고도 한참 탁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전화를 해야 하는데 손 끝이 저려왔다.


내가 기대한 건 이런 서프라이즈가 아니었는데...


 힘겹게 S의 번호를 누르며.. 탁은 시야가 점점 더 뿌옇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나.... 지금 사고 났어.... 와 줄 수 있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7일을 굶은 다이어트의 결과는 날씬하고 아름다워진 탁의 모습에 감격하는 S가 아니었다.

S를 기다리며 다시 한번 하늘이 핑 도는 것을 느끼던 탁은 몇 번이고 되뇌었다.


 "이게 다 너를 위한 거였는데.... 너... 내 사랑... 사랑은 위한 거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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