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놓아줄게.

사랑하지만 헤어져야 하는 게 헛소리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by 피렌체장탁

탁은 S를 정말 사랑했다.


정말..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그에게 맞출 수 있을 정도로..

결혼을 꿈꿨을 때조차 통제적이고 독단적인 그의 성향을 내가 다 맞추겠다 결심했을 정도로 그를 사랑했다.


부딪히는 면이 있을 때는 늘 생각했다.

"S가 다 생각이 있겠지. 결국 우리를 위한 것이겠지."


그리고 잘 풀리지 않는 일에 대해 S가 탁을 탓할 때에도

"내가 옆에서 잘 도와주지 못했나? 내가 잘못한 게 있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탁의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나서 기꺼이 탁의 곁을 지키며 도움을 자청하는

S 에게서 남의 탓을 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큰 일에는 담대하다는 듯이.. 그 어떤 탓도 하지 않고 탁의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S였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아니 이런 일이 생기면 내 탓을 하며 떠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우리 가족을 위해서 노력한다고?' 그러면서 바로 다음 순간부터는 감사했다.

S가 있어서 탁은 견딜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기에.


하지만 회사 상황이 웃기게 돌아갔다.


탁의 불행이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워낙 인망이 좋은 탁이었기에 알면서도 모르는 척 곁에 있어주는 후배나 친구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S밖에 기댈 곳이 없었지만.. 아무 사연도 모르면서 그저 힘들다는 소식만으로도 위로해 주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탁은 S에 대한 고마움이 덜해져 갔다.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는...

그러니까 탁은 S에게 아무 제재를 한 적이 없다.

그런데 탁의 상황이 이럴 때 자기가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S는 회사생활 중 회식이 있거나 하면 탁의 핑계를 대며 안 나가기 시작했다.


거기서 끝이라면 탁이 할 말이 없지만 그 와중에 점점 S의 거짓말이 시작됐다.


"자기, 나 오늘 진짜 맥주 한 잔만 하면 안 돼?"

"야, 너 이럴 때야? 정신 차리고 집에 들어가."

라고 맥주 한잔에도 죄책감을 주었던 S는 탁을 집에 보내고 다른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기 시작했고

그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알기 시작하자마자 탁도 똑같이 행동했다.


당시 탁은 회사 생활과는 별개로 관세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부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 근처로 고시원을 구해 살면서 출근-공부-아빠재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S가 탁을 위해 고시원의 냉장고 채워주거나 용돈을 주거나 하는 게 너무 큰 감사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탁을 보고 간 뒤에 S가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친구들을 만난다는 핑계에 더 이상 탁이 의문을 제기할 수는 없었다.

방금 전 나에게 밥과 돈을 주고 갔으니까.


'힘든 나를 돌봐주고 간 남자친구에게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순간순간을 심각하게 여기는 성격이 아닌 탁이었다.

상대방이 그렇게 속인다면 탁도 자신을 따르던 후배들과 술자리를 가지는 것이 문제가 될 리가 없으리라고 믿던 어느 날.


'우리 집은 망했지만 난 네 것이 아니야. 네가 날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나를 마음대로 통제할 순 없어, 나도 너를 구속하고 싶지 않고. 뭐... 어쨌든 미안해. 어쩌라고. 나 집이 망했는데도 놀고 싶어서 술 마시고 놀았어!'


고시원에 가서 생존신고를 해야 하는 탁에게는 너무 쉬운 방법들이 보였다.

S에게는 야근이라고 속이며 회사나 집 근처에서 후배들과 술을 마시고 전화가 오는 순간에는 겉옷이나 패딩을 둘러쓰며 집인 척 그를 속였다.


그가 정말 속았는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너와 내가 서로 함께 있는 인내 하듯 견디는 시간이 이제는 의미가 없으며 서로 속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지는의 싸움이었다.


적당히 집에 갔다는 탁의 말을 더 이상 S가 믿지 않기 시작했다. 그 믿음을 저버리고 싶지 않으면서도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마음은 아팠고 S와 탁은 서로를 사랑하고 지키고 싶었지만 일탈을 원했을 뿐이었다.


거지가 된 탁에게는 고맙지만 부담스러웠던 그 관계.

탁은 치졸하지만 자신의 치부는 감추고 그의 잘못을 운운하며 헤어짐을 꺼내 들었다.

그 시점에서조차 탁의 인생에 가장 소중한 사람은 S였다. 다만 그 관계가 서로에게 독이 됨을 너무나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을 뿐이었다.


몇 년 안에 상황이 급 반전할 가능성은 제로였다. 지금같이 서로를 속이며 간신히 붙잡고 있는 관계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감정은 그대로지만 상황이 달라졌고. 사랑은 점점 의리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S는 황당했다.

자기는 사실 처음부터 그냥 헤어져도 되는데 지키려고 했던 여자가 이렇게 나를 속이고 헤어짐을 입에 담는다고? (그래.. 물론 나도 너를 속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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