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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텀민 Apr 24. 2023

그러니까, 살림부터

인테리어의 바탕은 살림

 인테리어 혹은 리모델링이라는 개념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아파트에 한해서 살펴보자. 우리나라 아파트의 역사는 1960년 즈음부터 시작된다. 물론 그 이전 일제강점기부터 아파트가 있기는 했지만 단지 형태는 아니었으니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동을 모아놓은 단지 형태의 아파트의 시작은 6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1960~1980년 사이에 서울로의 극심한 인구 유입으로 많은 인원이 살 수 있는 아파트 단지를 빠르게, 그리고 많이 짓기 시작했는데 이때 지어진 아파트들은 저층이나 복도식, 좁은 주차장, 노후화된 배관 등의 많은 불편함이 있지만 위치가 좋다는 극강의 장점이 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은마 아파트도 79년생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인기가 많고(집값이 비싸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입지 좋은 아파트에 살기 원하는데, 오래된 구축 아파트에 살기 위해서 인테리어는 거의 필수 요건이다. 실용적 관점이나 미학적 관점 둘 다를 고려했을 때 말이다.

 우리 엄마가 셀프 인테리어를 했던 것이 2003년인 것을 생각해 볼 때 집을 뜯어고친다는 이런 개념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겠지만, 본격적으로 인테리어 시장이 커진 것은 나름 최근이다. 2019년에 약 24조 원에 이르렀고, 작년 기사를 보면 60조 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최근 3년 만에 2.5배 성장한 것이다.




 우리가 큰돈 들여가며 인테리어를 하는 이유는 뭘까? 물론 사람마다 제각각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신축 아파트에 입주하면서도 집을 싹 뜯어고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노후화가 주된 원인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누구나 '내가 원하는 공간'에 살기를 원한다. 신축 아파트의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리고 비용적 여유가 있다면) 인테리어를 싹 뜯어고치고 사는 것이다. 나의 경우 아파트가 10년을 넘은 중년의 아파트였고 입주 후 한 번도 인테리어를 하지 않아서 그 악명 높은 '체리색 몰딩'이 온 집을 휘두르고 있었기에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샷시도 멀쩡했고 확장 공사도 다 되어있었기 때문에 순전히 디자인을 위주로 한 공사였다. 30년 된 아파트의 경우는 노후화된 자재를 교체하려는 목적 이외에도 좁은 주방이나 옛 스타일의 화장실, 또는 불편한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이 있을 수 있다. 또 샷시가 너무 낡은 집은 내열을 위해 샷시를 교체하기도 하고 베란다 확장이 안 되어 있어 방이 좁은 경우 베란다 확장 공사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경우를 아울러 인테리어를 할 때 개인적으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라운드 룰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살림과 행동 양식'에 관한 것이다.


 먼저, 살림이 뭘까. 국어사전에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살림
1. 한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
2. 살아가는 형편이나 정도
3. 집 안에서 주로 쓰는 세간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살림을 살고 있다. 아무리 게으른 사람이라도 최소한의 청소나 설거지, 빨래 등의 집안일을 해야 한다. 이것들은 우리 모두가 하고 있는 일인데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각기 방식이 다르다. 우리 팀에 내 옆자리 과장님은 매일 청소기를 돌린다고 한다. 나는 매일 돌리지는 않는 편이라 뜨끔했지만 그 과장님네 집은 낮 시간에도 장모님과 아이 둘이서 지낸다고 하고, 우리 집은 낮에는 사람이 없으니 그럴 만하다 싶었다(아니면 나의 게으름을 정당화하고 싶었는지도). 빨래를 개는 방법은 정말 집집마다 천차만별이다. 우리 엄마 같은 경우는 정기적으로 속옷 개는 법이 달라지는데 아마 살림에 관한 특집 프로그램 같은 걸 보고 따라 하는 것 같다. 수건 개는 법도 집집마다 다른데, 나는 결혼하고부터 쭉 '호텔식 수건 개는 법'으로 수건을 개고 있다(군말 없이 따라와 주는 남편에게 감사). 주방 살림을 보면, 어떤 집은 커다랗고 앤틱한 그릇장을 한편에 두고 그릇을 꽉꽉 채워 진열하는 반면에, 어떤 집은 주방 상부장조차 없다. 자주 쓰는 조리도구와 그릇, 컵들, 그리고 조미료를 상판 위에 예쁘게 줄 세워 정리해 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방을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만큼 모든 것을 상/하부장에 넣어놓고 사용할 때만 꺼내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부터 드레스룸이 필수 요소가 되었는데 어떤 사람은 전체를 오픈 형태의 시스템 장으로 짜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칸칸이 문을 달아 옷이 외부로 보이지 않게끔 한다. 말하자면 끝도 없다. 이렇게 모두의 살림 양식은 집집마다 너무나 달라서, 신혼부부들은 결혼 초기에 가끔 문화적 충격을 겪곤 한다. (이걸 그렇게 한다고?! / 우리 집에서는 그렇게 했어!)


 다음으로 내가 말하고 싶은 행동 양식이란 생활 루틴을 의미하지만 사실 살림 양식과의 경계는 모호하다. 집에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내든 간에 우리는 집에서 먹고, 자고, 걸어 다니기도 하고 앉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모두가 자기만의 루틴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퇴근하자마자 드레스룸에서 실내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손발을 씻는다. 옷은 드레스룸에만 걸어놓는 것이 내 원칙이다(남편은 집안에 있는 의자라면 모두 옷걸이로 활용한다...). 저녁을 먹은 후엔 소파에 붙어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주제의 유튜브를 본다. 남편의 경우 요즘 공부 중이라 저녁 시간에는 무조건 서재 붙박이다. 먹고 난 그릇은 바로 설거지를 해야 하고 샤워를 하고 나면 스퀴저를 이용해 여기저기 튄 물을 삭삭 긁어서 흘려보내줘야 마음이 놓인다. 샤워를 하고 나면 실내복에서 잠옷으로 또 갈아입는다(남편은 유난이라고 했지만 이젠 본인도 굉장히 익숙해져 있다. 실내복=집에 있다가 잠깐 외출도 가능한 옷, 잠옷=잘 때만 입는 옷) 아침에 일어나면 밤새 자면서 따뜻해진 이불을 활짝 뒤집어 습기를 날려 보낸 후 바로 정돈해 줘야 안심하고 출근할 수 있다. 외출할 때는 모든 창문과 중문을 꼭 닫고 나가야만 하고 집을 비울 땐 모든 쓰레기통을 비워야 한다. 설거지나 빨래거리가 마무리되지 못하고 놓여 있는 모습은 보지 못한다.


 결혼하기 전에 나는 오랜 기간 자취생활을 하였지만 '자취 살림'과 '신혼살림'은 천지 차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하기 전 신혼집을 셀프 인테리어할 때, 우리 집 설계의 절반 정도는 내가 보고 자랐던 우리 엄마의 살림 양식과 인테리어 스타일에 기반하였고, 절반 정도는 '내가 원하는(혹은 그리던) 신혼살림 양식'에 기반한 것이었다. 우리 집 신혼살림은 우리 엄마가 아닌 남편과 함께 하는 것이고, ‘내가 원하는 ‘ 살림 양식은 실현될 확률이 크지 않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설계는 멋지게 했는데 막상 들어와 살다 보니 아쉬운 것들이 자꾸만 생겨났다. 우리 집 욕실장은 작은 상부장과 오픈형 선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꼭 하고 싶은 디자인이었다) 목욕용품이 생각보다 많은 탓에 그곳은 예쁘게 정리하기가 어렵다. 큰 수납장을 두고 안으로 다 넣었더라면 좋았을 걸. 또, 나는 주방 집기를 좋아하는 편인데도 천장을 꽉 채우는 상부장이 싫어서 미니 상부장을 짰고, 그 결과 항상 수납에 허덕인다. 하부장이라도 ㄱ자로 짤걸 그랬다(현재는 일자 형태). 소파는 무조건 큰 게 좋은 줄 알고 크고 묵직한 애로 골랐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는 거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 테이블과 선반이 필요하고 가구 재배치하기도 좋아하는데 소파의 크기 때문에 다른 가구 놓을 자리도 없으며 소파를 이동할 수도 없다. 신혼집 가구를 살 때는 엄마가 좋아하는, 그리고 집안 곳곳 놓여있던 콘솔류를 나도 두 개나 샀는데 콘솔은 수납공간은 적은데 자리는 차지하는 '예쁜' 가구였다. 소형평수에는 적합하지 않은 가구였던 것이다. 살아보니 나는 음악을 거실에서 감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턴테이블과 스피커는 침실에 설치했다. 액자를 좋아해서 집안 곳곳 액자레일을 설치했는데 막상 제일 액자가 어울리는 자리에는 액자레일을 설치하지 않았다... 이런 문제들은 내가 '원룸에서의 자취 살림'이 아닌 '아파트에서의 가족 살림'을 처음 살아본 탓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액자레일이 가장 필요한 공간인데 여기만 설치하지 않았다니.
수납에 허덕이는 나의 주방

 신혼집이 아닌 가구라면 본인만의 살림 양식이 정립되어 있을 테니 맞춤형으로 인테리어를 진행할 수 있겠지만 신혼살림은 미리 파악해 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 살던 두 사람이 만나 같이 사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히 신혼집 인테리어를 할 예정이라면 나는 서로 간의 생활양식과 루틴에 대해 사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을 추천한다. 어떤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관한 것, 생활 루틴을 파악하고 자주 다니는 동선을 그려보는 것, 효율적이고 예쁜 가구들의 선택에 관한 서로의 의견, 현재 뿐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도 적용되는 배치와 디자인인지에 관한 것 등등. 우리 부부는 '공간'에 관심이 많아서 여러 쇼룸을 다녀보기도 하고 이런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그러니 서로 간에 다양한 관점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서 동시에 먼저 결혼한 선배 부부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인테리어 전문가와의 상담도 추천한다. 인테리어가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닌 데다가 재시공이란 아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가구야 새로 사면 된다지만 이미 공사해 놓은 것을 되돌리기란 정말 머리 아픈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사전에 많은 것을 파악해 두는 것이 좋다. 특히 유행하는 디자인을 무조건적으로 따라 한다면 개인에 따라 아주 불편한 인테리어가 될 수 있다. 집은 쇼룸이 아니라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장 편리하고 편안한 공간이 되어야만 한다. 물론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살림 양식과 생활양식을 파악한 후에 맞춤형으로 설계하고 그 위에 내 취향이 담뿍 들어간 디자인을 가미한다면, 비스포크처럼 나와 우리 가족에게 딱 맞는 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왕 인테리어를 하기로 결심했다면 그 과정 속에서도, 그리고 인테리어가 끝나고 나서도 그 집에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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