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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텀민 Jan 31. 2023

기록이 만들어내는 기억

사진첩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지

 나의 기억력은 매우 편향되어 있는 편이다. 관심 있고 특별히 좋아하는 대상에 관해서는 마치 동영상이라도 찍어놓은 것마냥 기억하는데, 그렇지 않은 대상이거나 소소하게 흘러가는 일상에 관해서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 문제는 '관심 있고 특별히 좋아하는' 대상의 범위가 아주 좁다는 것이다. 특히 초등학교 이전 시절의 일상에 관한 기억들은 거의 전무한데, 가끔 엄마가 나의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 꼭 남 얘기를 듣는 것 같다.


 '그 남자의 기억법'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과잉기억증후군을 가진 남자가 나온다. 살아온 모든 날들을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아픔도 슬픔도 잊지 못한다는 것은 형벌이다. 예전에 어디선가 인간에게 망각은 축복이라는 말을 읽었다. 사랑하는 대상과의 이별,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좌절의 경험을 언젠가는 망각하기에 인간은 내일을 다시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는 것보다는 적당히 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분명 인생에 이롭겠지만, 가끔 나는 잔잔한 추억까지 망각의 바다로 흘려보내곤 한다. 나와 반대로 엄마는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고 그에 비례해 스트레스도, 상처도 잘 받는 편이다(그래서 우린 참 안 맞다). 하지만 엄마의 기억 속 소소한 이야기들은 별 것 아닌데도 듣고 있으면 재미있다. 지나간 이야기는 뭐든 추억이 되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원래도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소소한 일상 속 모습마저 사진 속에 남기고 있다. 처음에는 내가 흘려버리는 잔잔한 추억들을 붙잡아두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사진을 찍은 대부분의 순간들에 대해서는 사진을 다시 들춰보지 않더라도 잘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가 내 기억의 지속시간을 높여준다. 가끔 작년 이맘때, 재작년 이맘때 나는 뭘 하고 살았나 궁금할 때 사진첩을 들여다보다가 잊고 있던 힐링 모먼트를 발견하기도 한다. 작년 겨울에는 남편과 둘이 와인을 참 많이 마셨다. 사진첩에 보면 진득한 레드와인과 치즈 플레이트, 핑거스낵을 즐겼던 테이블의 모습이 잔뜩 찍혀있다. 재작년 봄에는 동네 산책을 많이 했는데 집 앞에 있는 산책로의 벚꽃나무며 개나리, 장미정원에 핀 색색의 장미들이 참 예뻤다. 우리 동네는 벚꽃축제를 할 정도로 벚꽃이 예쁜 동네다. 작년에는 바빠서 꽃구경도 못 하고 지나갔는데 올해는 남편과 손 꼬옥 잡고 산책로를 다시 걸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사진첩은 마치 일기장처럼 내 기억의 일부를 구성하기도 하고 지루한 일상에 힐링을 제시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집 사진을 꾸준히 찍어서 기록하고 있다. 매일 같은 집의 모습을 왜 찍는가 싶을 수도 있지만, 매일 같아 보이는 모습 속에도 변화는 있기 마련이다. 같은 구도에서 찍은 사진도 여름과 겨울에 찍은 사진, 오전과 오후에 찍은 사진의 느낌이 다르다. 나는 초여름 저녁에 찍은 우리 집의 모습을 좋아하는데, 낮아진 햇살이 깊게 들어와 주방까지 손을 내밀기 때문이다. 그 계절에는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도 해가 떠 있을 때가 많고 아직 그리 습하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라 창을 열어두면 여름이 약간 묻은 바람이 기분 좋게 흘러들어온다.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그날의 여름 공기가 기억난다.

그 해 여름


 예전에 찍어놓은 집 사진을 보면 신기하게도 그때의 감정마저 되살아난다. 과거에 즐겨 들었던 노래를 오랜만에 들었을 때나 과거에 즐겨 썼던 향수의 향을 오랜만에 맡았을 때 그 당시의 감정이나 추억이 되살아나는 것과 비슷하다. 꾸준히 집 사진을 기록하다 보니 사진이 알고 있는 나와 그때의 추억들도 고스란히 같이 기록이 된다. 기록하지 않았더라면 뇌의 해마에 저장되지 못한 채 어딘가에 영원히 잠들 뻔했던 나의 추억을 나의 사진첩이 대신 기억해 주는 셈이다. 얼마 전 사진첩을 뒤져보다 입주할 때쯤 찍어놓았던 집 사진을 발견했다. 동시에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지금도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신혼 때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남편은 남쪽 해안에 붙어있는 도시로 발령이 났다. 고작 6개월이었지만 신혼 3개월 차에 회사는 굳이 우릴 떼어놓아야만 하는 거냐며 원망의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남편은 매주 올라올 수 없었고 우리는 주말부부도 아닌 격주부부가 되었다. 아무리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편이라 해도 신혼의 단꿈에 젖어야 할 시기에 자취방보다 5배는 큰 이 집에 혼자 동그마니 남겨져있는 시간은 너무 길게 느껴졌다. 혼자서도 잘 노는 스타일이기에 그래도 대체적으로 잘 보냈지만, 2주 만에 올라온 남편이 다시 떠나가는 일요일 오후면 남편을 배웅하고 울면서 돌아오곤 했다(아직 남편도 모르는 사실이다). 떨어져 있으니 사소한 오해들이 자꾸 쌓여만 갔고 핸드폰 너머로 서로의 마음은 가 닿지 않았다. 어려운 시간들 속에 6개월은 느리적 느리적 지나갔고, 우리는 결혼한 지 9개월이 지나서야 신혼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지금은 올라와 같이 지내게 된 지 3년이 다 되었고 남들 다 겪는다는 신혼 시절 부부싸움의 시기를 지나 서로의 생활 패턴을 이해하고 웬만한 일에서는 싸우지 않는 정상 상태 - 물리적으로 steady state에 도달했다. 지금도 '격주부부의 시기'에 찍어놓은 집 사진(주로 혼자 술 마시다 찍었거나 음악을 듣다 찍은)을 보면 일요일 오후에 느꼈던 쓸쓸한 기분이 마치 어제인 듯 기억난다. 한 장의 사진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다.

'격주부부의 시기' 나의 혼술상

 공간의 꾸준한 기록은 내 취향의 변화까지 보여준다. 보통 우리는 취향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입맛이 변하듯이 취향도 변하기 마련이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입주할 때 나무 소재를 제일 많이 사용했다. 나무가 주는 따스하고 자연스러운 느낌, 무엇도 흉내 낼 수 없는 원목의 결, 묵직하고 중후한 월넛이 주는 분위기 같은 것들을 사랑했고 집 안의 모든 가구를 원목으로 선택했다. 싱크대 상판마저도 원목으로 하려던 걸, 관리가 어려울까 봐 포기했을 정도다. 그런데 거의 4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스틸 소재가 예뻐 보인다. 원목은 여전히 아름답고 따스하지만, 왠지 세련된 느낌은 떨어지는 것 같고 기분이 안 좋은 어떤 날에는 심지어 촌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잘 있던 원목 가구를 가져다 버리고 매끈하고 빛나는 스틸 다리를 가진 가구를 들이고 싶은 마음이 요동친다. 그러니 취향은 변하기 마련이다. 사랑하던 가구를 바꿀 순 없어 그 마음을 누르고 있지만 가끔 소가구를 바꾸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들이기도 한다. 이런 마음의 변화를, 사진첩은 다 알고 있다.


 카메라가 달린 핸드폰이 보편화되면서, 기록이라는 것이 너무 쉬운 세상이 되었다. 가끔은 너무 많은 기록 때문에 버거울 때도 있다. 켜켜이 쌓여가는 사진들을 보며 정리 한 번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하면서도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고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사진이 쌓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의 꾸준한 기록은 나에게 기억의 일부로 활용되고 어떤 때는 나의 성장까지 보여주기에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사랑하는 나의 집을 기록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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