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말고 나를 구하자

지루할지언정

by 새벽숲

아침을 먹는다. 금요일 아침 오랜만에 늦잠을 잔다. 행복하다. 일어나기 전에 갑자기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그를 위해 기도를 한다. 그리고 무엇을 먹을지 고민한다. 학원을 안 나가니 여유롭다. 어제 아침 급하게 샀던 소보로 빵이 맛있었던걸 기억해 낸다. 다시 소보로 빵을 사 먹을 까 하다가 요즘 학원에 나가느라 아침을 거의 빵으로 때우는 거 같아 참는다. 그렇지만 밥을 해 먹고 싶지는 않다. 머릿속에서 집 주변 거리를 스캔한다. 난 무엇을 먹을 수 있을까? 떡집이 떠오른다. 그리고 얼마 전 동생이 왔을 때 준 바나나가 맛있었던걸 기억해 낸다. 오늘 아침은 바나나와 떡이다. 콩송편을 산다. 300g에 5천 원이다. 비싸지만 콩이 들어서 든든할 것이다. 바나나를 사러 간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는 과일가게를 슬쩍 보니 바나나가 박스에 들어서 나오지 않았다. 더 걸어간다. 바나나를 정돈해 놓은 과일가게에서 바나나를 신중히 고른다. 10개 정도 달린 바나나가 5천 원이다. 계산하러 가는 길에 연시가 예쁘게 나를 바라본다. 6개에 3천 원이다. 같이 데려온다. 오늘 아침은 그렇게 연시와 바나나 그리고 콩떡이다. 저녁을 거의 안 먹어서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아침은 약을 꼭 먹어야 하기 때문에 무언갈 챙겨 먹으려 노력한다. 빈속에 먹으면 뭔가 속이 깎아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오늘은 요가를 가야만 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오랜만에 휴식의 날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요가도 제낀다. 행복하다. 바나나 3개 연시 1개 콩떡 몇 개 먹으니 배가 부르다. 약을 먹는다. 이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행복이 반복되면 지루하다. 나는 그런 사람임을 인정해야 한다. 글을 써야 한다. 오늘은 브런치 연재약속의 날이다. 이제 미리 써놓은 글이 없다. 예전에 정해놓은 주제만 있다. 세상 말고 나를 구하는 길 난 그 길을 가기로 했었지.


세상 말고 나를 구하자


배가 너무 불러 부대낀다. 소화제를 먹어야 하나 잠시 고민한다. 늘어지는 재즈를 듣고 있다. 늘어지고 지지직거리는 그렇지만 밝은 보컬의 재즈. 나의 감정도 늘어지고 밝아진다. 감정의 기복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요즘은 화가 나지 않는다. 울지도 않는다. 가끔 웃기까지 한다. 출근길에 전봇대 위에 까치가 울면 반가워하고 퇴근길에 고양이가 보이면 고양이 인척 야용 거려보는데 나를 바라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무리한 스케줄이 없었다면 이렇게 소소한 행복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또 우울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맞나? 한가하게 지루하게 있을 대도 행복해해야 하는 게 정상이 아닌가 한편으로는 생각하기도 한다.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세상을 구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조증의 망상에 지나지 않았을까 그렇게 까지 비약하게 된다. 내가 점점 사라지는 건지 내가 점점 나다워지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세상을 구한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 하지 말고 스스로를 돌봐라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세상을 구하는 게 저의 취향인데요?라는 문장은 성립이 되는 문장인가? 10년 후에는 초지능의 간섭이 시작될 수 있으니 그전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으라는 카이스트 교수의 말을 들었다. 그렇다 예상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계속 고민했다. 난 세상을 구하는 무언가 기업이나 단체를 하고 싶은 걸까? 자유롭게 여행하는 삶을 살고 싶은 걸까? 둘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나는 무엇을 고를까? 넌 왜 이렇게 극단적이야?라는 예전 남자친구의 말이 맴돈다. 둘은 너무 극단적이다. 중간이 없다. 얼마 전에 오랜만에 만난 지연이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거 같다. 언니는 중간이 없는 거 같다고.. 중간은 어떻게 하는 건데? 중간을 할 수 있다면 나도 중간을 할 텐데.. 난 중간은 할 수 없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이 극단적인 삶을 사는 것도 같다.


세상 말고 나를 구하자


우울증도 조증도 아닌 지금의 나의 상태의 선택은 세상 말고 나를 구하는 것이다. 난 세상을 떠돌겠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겠다. 함께 세상을 떠돌겠다. 그냥 떠돌든 봉사를 하든 계속 새로운 풍경을 맞이하겠다. 그렇게 결론 내린다. 이게 답은 아니다. 또 회피하고 도망일지도 모른다. 떠돌면서 글을 쓰는 것이 나의 삶의 가치이다. 나를 구하자. 지금 보니 연시를 하나가 아니라 두 개를 먹었다. 커피가 마시고 싶다. 집에 원두는 오래되어 맛이 없을 텐데.. 밖에 나가고 싶지 않다. 세상 말고 나를 구하자 계속 중얼거린다. 재즈 선율에 읊조린다. 세상을 말고 나를 구하자 근데 혹시 세상을 구할 자신이 없어서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서 도망가는 것은 아닌가? 맞다. 그 말도 맞아 난 세상을 구할 능력이 없다. 그걸 인정하는 단계이다. 억울하지만 맞다. 세상을 구한다는 건 조증의 내가 불러일으킨 환상이다. 이제 그 환상을 깰 때가 되었다. 세상 말고 나를 구하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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