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를 찾아야 할까?
비 오는 날 학원에 늦을 까바 뛰어가면서 각자 일터로 향하는, 목적이 있는 걸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스쳐가면서 생각했다. ' 나는 사회를 좋아한다.' 나는 사회를 사랑한다. 사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움직임은 목적이 있다. 목적들이 쌓여 사회를 만든다. 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움직임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움직임들이 모여 사회가 된다. 그 모습이 아름답다. 어쩔 때는 눈물이 난다. 이런 사회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개개인의 서로 다른 마음들이 모여 사회가 된다, 사회는 하나의 미완성된 그림이다. 똑같은 색으로 똑같은 영역에 칠을 하는 게 아니라 각각 다른 색을 각각 다른 영역에 칠을 하고 어느 곳은 중첩이 되기도 하고 어느 곳은 여백이 되기도 하며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사회는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다. 난 일렁이는 사람들의 움직임. 에너지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학원에 뛰어가며 내가 사회를 좋아했음을 다시 상기한다. 여행지에서도 좋아하는 곳 중에 하나가 복잡한 거리이다. 모두가 싫다고 한 인도 델리의 빠간 조차도 난 너무나 사랑했다. 다시 가고 싶다. 복잡한 거리 경적소리 호객하는 사람들 각자의 욕망에 충실한 시간. 난 무언갈 잘 잃어버리지 않는다. 한번 나에게 온 물건은 소중히 여긴다. 어쩌면 사물에 대한 집착이 강한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도 기억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길도 잘 찾는다. 여행에 최적화된 뇌를 갖고 있다. 한번 간길은 잊지 않는다. 처음 가는 곳도 잘 찾아간다. 난 길도 잃지 않는다. 길을 잃기를 의도하는 적은 있지만 그건 길을 잃는 것이 아니라 길을 탐색하는 것이다. 그런 내가 길을 잃는다는 건 큰 불안이다. 난 길을 잃었다. 조울증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길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많이 나은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거 같다. 난 길을 잃은 것뿐만이 아니다. 나의 뇌의 어떤 부분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곳에 들어가는 열쇠를 잃어버렸다. 잃어버렸다는 사실도 잃어버렸다가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나의 뇌는 점점 조각나고 작아지는 것 같다. 잃어버린 열쇠를 난 찾을 수 있을까?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잃어버린 채로 그렇게 나는 살아가게 되는 걸까....... 슬퍼하는 마음은 당분간 유지되다가 슬픔도 잊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난 열쇠를 찾기를 희망한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곧 다시 일어나서 다시 말을 할 것이라고 희망했던 것처럼 난 희망하고 바란다. 하지만 알고 있다. 엄마가 다시 일어서지 못했던 것처럼 다시 엄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 것처럼 나는 열쇠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걸....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기록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라는걸
정말 오랜만에 토마토룰 샀다. 찰토마토는 조금씩 안 팔아서 부담스러웠다. 작은 팩에 담긴 대추방울토마토를 샀다. 다행히 맛있는 토마토가 집에 왔다. 잘못사면 토마토에서 비린내가 나는데 구매한 토마토는 맛있었다, 난 바나나를 샀다. 요즘 바나나를 주식으로 먹고 있다. 하나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먹는 버릇이 있어서 바나나를 파는 가게마다 가서 사 와 쟁여 놓았다. 요즘 바나나가 제일 맛있다. 토마토와 바나나를 먹는다. 한동안 두유를 사랑했었는데 애정은 식었다, 안 먹은 두유가 쌓여있다. 두유는 의무감으로 먹고 있다. 초록색을 먹어야 할거 같아. 쌈채소를 사 온다. 저번에 사 온 쌀이 맛이 없어 집에서 밥을 짓는 일이 줄고 있다. 강화도 교동 쌀이라고 샀는데 아무래도 속아서 산거 같다, 혹은 파는 할아버지가 실수를 하셨거나. 지금 사는 곳은 전통시장과 가깝다. 하루에 한 번 시장을 순회한다. 떡집사장님 어묵사장님 홍두깨칼국수집 사장님과는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과일가게가 엄청 많고 서로 경쟁을 하고 있어서 질 좋은 과일들을 저렴하게 살 수 있어서 좋다. 같은 과일을 팔고 있어도 가게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집중하고 있는 상품들이 다르다. 과일가게들만 순회를 해도 재미있다. 각각의 다른 단골들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늘 과일가게는 활기차다.
학원수업은 일주일 후에 수료하게 된다. 정말 많은 것을 배웠으며 학원에 발을 디딘 스스로를 칭찬한다. 나의 삶이 바뀌었다. 조금 다른 내가 되었다. 그런데 파이썬을 다루는 건 그리 흥미롭지 않았다. 이미 많은 개발자들이 무료로 파이썬 코드들을 오픈해 놓았는데 내가 왜 만들어야 하는 건지 비효율로 느껴졌다. 내가 파이썬으로 먹고살 것도 아닌데... 그런데 생각해 보니 게임을 하나 만들고 싶었던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파이썬 공부를 열심히 했어야 한다. 맙소사. 오픈소스들과 바이브 코딩으로 어떻게든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기획이 없어서 꽝이다. 구체적으로 무얼 만들지 갈피를 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 그 에너지가 나에게는 없으므로 보류이다.
비 오는 퇴근길 비에서 수박냄새가 났다. 길은 비의 춤으로 반짝였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