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도에서 읽은 책들 중 단 1권을 골라야 한다면 주저 없이 고를 조안나 작가의 '나의 다정한 그림들'을 또 읽기 시작했다. 반복적으로 읽다 보면 글을 보면서도 다음장의 내용이 동시에 떠오른다. 뻔히 무슨 내용이 나올지 알면서도 궁금해하고 기대한다. 똑같은 문장을 읽으면서도 마치 처음 접한 것 마냥 감동을 받는다. 마치 책 읽자고 하면 매번 같은 책만 들고 오는 영유아 시기의 아이로 되돌아간 것 같다. 육아하는 분들은 아실 텐데 이 시기의 아이들은 동일한 책만 수십 번 읽어달라고 한다.
막상 아이를 키워보니 육아와 내 일을 균형 있게 잘 해낸다는 게 쉽지 않았다. 잘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매일 시간을 허비하는 기분이었고 뭐 하나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발만 동동 구르는 내 모습에 스스로 지쳐갔다.
그러던 중 도서관에서 '나의 다정한 그림들'이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정적인 그림'들이 건네어 줄 '다정함'이 불안정한 상태의 '동적인 내 마음'을 진정시켜 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보통의 일상을 예술로 만드는 방법'이라는 소제목이 분명 적혀 있었지만 안중에도 없었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꾸준히 독서 노트를 쓴다거나 서평을 쓰는 성실한 북러버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책을 사랑하다 보니 책을 보는 나름의 안목이 생긴 것 같아 기뻤다. 책 속의 작가는 나와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면서 시간을 쪼개어 읽고 쓰며 삶과 그림을 문장으로 이어나가고 있었다. 미술에세이에 나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살아가는 삶을 이렇게 담백하게 녹아낸 글이 또 어디에 있을까? '모래알의 흑진주'라는 수식어를 책 곳곳에 붙여 넣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책은 그림 못지않게 정적인 글자들이 모여 문장을 이루어 마음을 두드리고 다독인다. 언제 어디서 내가 어떤 모습을 하든 책은 편견 없이 내 눈을 바라볼 준비가 되어있다. 자존감이 낮은 상태인 내가 용기 내어 책을 꺼내들 수 있었던 이유다. '나의 다정한 그림들'이 앞으로도 '나의 다정한 문장들'로 내 옆에 있어주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