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매력
몇 년 전 대기업을 퇴사하고 쓴 소설이 '대박'이 나며 알려진 이미혜 작가를 북러버라면 분명 알 것이다. 그리고 작가의 첫 작품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읽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책을 읽지는 않았다. 베스트셀러라는 이유 만으로는 내 호기심을 자극하진 않기 때문이다. 이미 꿈을 이룬 상태여서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읽고 싶다는 강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작가의 두 번째 작품 '탕비실'은 달랐다. 극사실주의(하이퍼리얼리즘)로 책이 소개된 내용을 보자마자 '이 책이다' 싶었다. 감이 왔다. 실제 사회생활에서 만날 법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책이라는 사실을. 심지어 작가는 등장인물들을 '빌런'으로 설정해 놨다는 점에서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업 출신의 작가는 사회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빌런들을 데리고 어떻게 이야기를 꾸며냈을까?
책은 생각보다 작았다. 총 134페이지 분량의 성인 남성 손바닥만 한 책이었는데 내용은 군더더기 없고 촘촘하게 잘 이어져있었다. 순식간에 책을 읽었다. 직장 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분명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만나본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일까? 여느 소설들처럼 강하게 감정이 요동치기보다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 배웠던 것들, 깨달았던 것들을 등장인물들을 통해 정리되는 느낌이 더 강했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 '얼음(책 내용 중, 리얼리티 쇼에서 사용된 주인공의 이름)'이 왜 자신이 빌런이 되었는지를 알게 되는 과정을 통해 인간관계의 허점들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소설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은 내 삶을 고찰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점이 아닐까? 지어낸 허구의 이야기가 실제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준다는 게 다소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소설도 실제로 있었던 일들을 있을법한 일들로 탈바꿈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니 이 둘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싫어하는 대상의 기분을
한 번쯤은 상상해보는 것.
나는 단지 그 정도로 싫음을
대하기로 했을 뿐이다.
그러고 나서 늘 토하듯
뿜어냈던 싫음의 감정이
얼굴은 찌푸려질지언정
조금은 소화가 되었다고,
단지 그 말을 전하고 싶었다
날것의 상황들이 만나 찝찝함이 느껴지면서도 얻어낸 게 많아 동시에 만족감도 느껴지는 묘한 기분이 들었는데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다행이다 싶었다. 내가 작가의 의도에 따라 책 '탕비실'을 소화해 낸 것 같다. 작가와 같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짜릿한 일이다.
한동안 자기 개발서와 에세이를 읽다가 오랜만에 읽은 소설 '탕비실', 잠시 잊었지만 역시 소설은 또 다른 방법으로 삶을 돌아보게 하는 매력 넘치는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