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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에서 전해지는 감동

필사하기

by 코코 Feb 20. 2025

책을 읽다 보면 생각지도 않게 내 혼을 쏙 빼앗는 문장을 마주하곤 한다. 잠시 스쳐가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운 문장이 나타나면 펜을 들고 따라 쓴다. 두고두고 꺼내 읽기 위해서다.


독서를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필사는 필사를 위한 책과 전용 노트가 있을 정도로 많은 북러버들이 애정하는 독후 활동이다. 필사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역동적인 독서의 연장선이다.


나의 첫 필사는 고등학교 국어 방학 숙제였던 추천 도서 독후감 쓰기를 할 때였다. 국어 선생님께서 독후감 양식은 자유로이 쓰되 반드시 인상적이었던 책 속의 문장 5개를 기록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북러버로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인생 첫 필사에는 내 의지가 없었다.


별 생각도 없었다. 그냥 선생님이 하라고 하니까,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 했다. 그래도 이왕이면 즐겁게 해내고 싶어 공책의 왼쪽 페이지에 필사를 하고 그 밑에 개인적인 감상평, 인상 깊었던 이유를 짤막하게 적었다. (첫 필사 활동에 내 의지가 조금은 있어서 다행이다.)


'마음을 두드리는 글'이라는 제목 아래에 써 내려간 짤막한 필사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쓰다 보니 꽤 재미있었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봐도 그때 책을 읽고 느꼈던 감동이 다시 마음속에서 퍼져나갔고 여전히 지금도 내가 아끼는 노트로 남아있게 되었다.


나에게 필사는 책을 읽고 난 독후 활동임과 동시에 스스로 치유하고 치유받는 과정이다. 나는 출산 후 찾아온 우울감에 잠시 방황했을 때 나와 같은 엄마들을 위한 책들을 필사적으로 적었다. 문장의 길이는 상관없었다. 내가 원했던 작가의 문장들이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내 삶 속에서 생생하게 펄떡이게 하고자 적고 또 적었다.  


내가 필사를 시작한 이유는
지금을 버티기 위해서다.
스스로 스스로에게 위로할 방법을 찾아내고 이해받으며 위로받기 위해서다.
내가 이상하고 못된 엄마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서다.
내 스스로 나를 다독여주기 위해서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것들을
상실한 슬픔으로부터 극복하기 위해서다.
지친 나를 위로해 주고
용기를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이자
나 자신이 되기 위해서다.


최근에 시작한 블로그에도 인상적인 문장들을 기록하고 있다. 사용되는 도구는 다르지만 손가락에서 전해지는 감동의 크기와 무게는 같다. 올해도 내 손가락을 타고 올 감동의 문장들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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