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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도댕 Oct 14. 2023

완벽한 사람이 어딨어,

완벽한 사랑은 있을지도.

지난 20대의 지난한 연애는 고맙게도 나의 자양분이 됐다. 나와 비슷한 연애를 한 친구들과 자주 하는 얘기지만 그 시절이 없었으면 이렇게 성장하지 못했을 거라고,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 참 다행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나이가 들수록 연애하기 어렵다는 말, 결혼은 더더욱 어렵다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지인들은 찬란한 미래에 걸맞는 상대를 고르기에 여념이 없고, 올곧게 걷다가도 깊은 수렁에 빠지기도 한다. 물론 예전의 내 모습도 다를 바 없었다. '결혼주의'에 빠져있던 당시의 나는 결혼만이 온전한 행복과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라 믿었다. (여러 의미로) 죽고 못 사는 상대와 평생을 약속하면 뭐 그런대로 살아지겠지, 그 끝은 창대하리라. 어떤 근거 없는 믿음에 빠졌달까. 지나고 보면 그때의 나는 지난 나의 기억을 잊고 새로운 울타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인생의 '리셋'이라 여겼던 것 같다. 뭐라도 할 일이 생기면 끝내기 전까지 안절부절 못 하는 내 급한 성미도 영향을 미쳤을 테고. 그러니 결혼이 얼마나 간절했을까. 안정, 그놈의 안정이 뭐라고 말이다.


불행히도 무언가 되도 않는 목표에 사로잡혔을 때 나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지금의 처지를 객관화할 능력도 현저히 감소한다. 이별이 마땅한 연애를 지지부진 끌어온 것만 봐도 내가 얼마나 자기 객관화가 부족한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다. 다행히 나를 갉아먹는 연애는 오래전에 끝났다.


요즘의 나는 남자친구와는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에 말간 얼굴로 넘치는 사랑을 고백한다. 잘 지낸다는 식의 답변은 분명 예전에는 찾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재수 없어 보일 수 있는 이야기지만 남들에게 과시할만한 무언가가 있어서도 아니며, 애초에 자랑질할 성격도 못 된다. 단지 나는 이제 와 진실로 사랑을 하게 됐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 말을 할 땐 실로 충만한 사랑의 감정을 내 사람들도 느끼길 바라는 소망도 함께 실어 보낸다. 그러다 같은 감정선을 나누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그게 또 반갑다. 세상이 한 스푼만 더 낭만적이어도 꽤 많은 변화가 일거라 믿으니까.


물론 사랑이 꼭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가끔은 아주 사소한 일로 토라지기도 하고 상대를 향한 배려가 서운함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마음은 얼마 못 가 증발된다. 겨우 이런 일로 감정 낭비하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서로의 마음이 어긋날 땐 오해가 어떤 모양인 지 들여다보면 그만이다. 화해는 간단하다. 내가 느낀 감정과 이 일에 대한 견해, 바라는 바를 똑바로 전하고 상대의 감정과 견해, 요구를 곡해 없이 들으면 어려울 것도 없다. 예민함이 증폭된 어떤 날에는 어려울 것도 없는 그 무언가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마는, 그날이 오기도 전에 그것부터 염려하는 태도가 문제의 발단일 수도 있다.


영원의 법칙은 결코 단단하지 않다. 오히려 쉽게 깨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서 더 매력 있는 법 아닐까. 이별에 허덕이는 이에게 보통의 사람들은 '바보같이 좀 굴지 말고 그냥 잊어버려'라는 말을 쉽게 한다. 마치 세상에 통달한 듯한 그 사람들도 자신의 이별 앞에는 똑같이 허덕이곤 한다. 그러니 지금 행복을 말하는 나라고 행복이 영원하리란 법은 없다. 허나 달라진 게 있다면 나는 이제 더 이상 사랑이 깨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건 지난 연애가 내게 남겨 준 교훈이기도 하다. 다시 혼자가 될까 두려워하는 데 쓰는 에너지를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쏟아 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당신에게 더 이상은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일어나는 슬픈 일은 당신의 의지를 떠난 일이며, 당신의 노력과는 무관한 일이다. 그렇다면 슬픔이 당신의 인생을 집어삼킬 일도 없겠지.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든 허점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서로의 모난 점을 덮어줄 만한, 완벽한 사랑을 만난다면 완벽한 사람이라는 말은 검증할 필요도 없는 말이 된다. 그렇다. 공연히 네가 보고 싶어 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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