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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도댕 Oct 14. 2023

언제쯤 '좋은 어른'이 되려나.

고도는 낮게, 가능한 멀리

어릴 때부터 줄곧 내 꿈은 좋은 어른이 되는 일이었다. 좀 잘 늙자는 내 소박한 꿈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찌어찌 어른이 되기는 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오르내리거나 이따금 타인을 향한 시기가 꿈틀댈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 나 좀 별로네."


그러고 보면 모순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었다. 누군가를 막연히 동경하다가도 별안간 미워지는 순간이 있고, 사실은 '그것' 때문이 아니면서 '이것' 때문인 척 위장하기도 한다. '너'를 위하는 척 '나'를 위할 때도, 아주 사소한 것에 얽매여 하루를 낭비할 때도 있다. 때로는 결과를 지레짐작해 일과 사람으로부터 뒷걸음질 칠 때도 있다. 순수함은 사라지고 오만함만 남은 걸까. 앞뒤가 다른 사람을 극도로 싫어하면서도 그 모습이 내게 보일 때면 참을 수 없는 수치가 떠밀려온다. 그것이 온몸을 덮칠 때쯤 나는 검게 변한 바다에 숨어버리곤 한다.


애초에 좋은 어른이라는 목표부터가 잘 못된 걸지도 모르겠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나는 내 모습이 싫었다. 부당한 일에 목소리를 높이는 법도, 상대의 선 넘는 태도에 주의를 주는 법도,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요구하는 법도 알지 못했다. 작게는 나의 하루를 크게는 내 인생을 망치는 모든 일에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아니 반응하는 게 맞는지조차 인지하지 몰랐다. 남에게 소리를 질러본 적도, 울그락불그락 해 가며 화를 내 본 적도 없었으니까 가만있어도 생체기가 나는 건 아주 당연한 수순이었다. 누군가 내게 하지 말라고, 그건 아주 못된 버릇이라고 가르친 적도 없는데 나는 꼭 그렇게 불편하다는 티를 내는 게 어려웠다.


한 때는 이런 내 모습을 보며 자기 연민에 빠져 살 때도 있었다. 이도 저도 아닌 태도는 나를 맘껏 위하기는커녕 불쌍해하기만 했다. 불쌍하려고 태어난 건 아닌 데 말이다. 몇 번의 학습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아니다 싶은 순간엔 아니라고, 기분이 나쁘면 나쁘다고 말할 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럼에도 이따금 불쾌하거나 조금은 불편한 일이 생긴다.


그래, 솔직해져야 해. 감정에 솔직해져야 한다는 압박은 아래위로 넘나드는 출력값을 냈다.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걸까. 물론 1년 전의 나만 돌이켜 봐도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1년 전의 내가 그 이전의 나를 돌이켜 봐도 현재가 만족스러운 건 마찬가지니 이쯤 되면 좋아한다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가 사랑스럽다는 표현이 맞겠다. 분명 나를 무척이나 사랑하게 됐지만 내가 그토록 바라던 '좋은 어른'에 가까워진 줄은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은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성숙한 태도를 지녔으며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시기질투라는 감정은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사람이다.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쉽게 일반화를 하지 않으며 '내로남불'이라는 단어와도 거리가 먼, 주변인들에게 닮고 싶다는 귀감을 주는 사람 말이다. '저 사람처럼 늙진 말아야지' 다짐하게 만든 과거의 어떤 한심한 인간들과는 다른, 모난 구석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고 싶었다. 언제고 웃어줄 것만 같은 인자한 미소를 가진, 풍파와는 거리가 먼 그런 사람 말이다.


어릴 때부터 줄곧 다짐해 온 내 꿈은 자꾸만 삐걱댄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사건사고 소식에 내 안의 잠재된 불안은 자꾸만 고개를 내민다. 성선설을 믿었던 과거의 나는 온데간데없고 낯선 사람을 지나치게 경계하기도 하고, 지옥철에 몸을 구겨 넣을 때면 시작점을 알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오르기도 한다.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이 마냥 인자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 실패인 걸까. 나는 '나쁜 어른'에 가까워진 걸까.


꼭 이상적이진 않아도 앞으로 나아갈 수만 있다면 1년 후의 나는 지금보다 더 나를 사랑할 거라 믿는다. 여전히 아침과 저녁의 기분이 다르고 때때로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더라도, 여전히 내가 사랑스럽다고 말하고 있지 않을까. 그러려고 사는 거니까. 오늘 더 부푼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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