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우리는 모두 열 살 어린이였다.
2019년 9월 22일 산림교육전문가 과정 입학식이 열렸다. '교육전문가'라니 어깨가 으쓱해졌다. 내가 공부한 기관에서는 특이하게 각 기수별로 나무를 하나 정해 이름 붙여주었는데, 우리 기수는 '백합나무'였다. 꽃 모양이 튤립을 닮아 튤립나무라고도 불리는 나무. 그날 스물아홉 그루의 백합나무가 마음에 심겼다.
숲해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를 공부해야 했다. 두 달 반 동안 식물의 생리 곤충과 야생동물, 커뮤니케이션 기법과 프로그램 개발 방법 등을 배웠다. 평일 저녁에 3시간, 주말엔 3~6시간씩 강의실과 현장에서 공부하며 170시간의 이수시간을 채웠다. 시험을 보고 ―70점을 넘겨야 이수할 수 있다.― 현장교육실습도 나가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써서 동기들과 선생님 앞에서 시연도 했다. 다이내믹한 두 달 반이었다.
사실 공부보다는 동기들과 보내는 시간들이 참 좋았다. 우리 기수는 여러모로 독특한 편이었는데, 보통 35~40명 정도 되는 다른 기수와 달리 우리는 29명으로 비교적 적었다. 덕분에 더 똘똘 뭉쳐 오순도순하게 지냈다. 2,30대가 6명 있었는데, 보통 35명 중 한 두 명 정도인 다른 기수와 비교하면 젊은 사람들이 꽤 많은 편이었다. 입학식에서 내 또래를 다섯이나 만나고는 '숲해설가는 은퇴 후의 실버 직업인가' 했던 고민이 쏙 들어갔다. 엄마아빠 또래의 동기들은 우리 여섯을 '젊은이들'이라 부르며 어여삐 여기고 대견해하면서도 함께 공부하는 동기로서 동등하게 대해 주었다.
20대부터 60대까지 폭넓은 연령층이 섞인 우리지만 숲 속에서는 모두 어린이가 되었다. 몇 시간이고 메뚜기와 여치, 잠자리 수채와 강도래 따위의 곤충들을 잡으러 다니고, 가을 낙엽과 열매, 겨울눈 같은 것들에 매료되었다. 12월의 어느 추운 겨울날, 우리는 경희궁 숲 속에 모여 6시간 동안 온갖 숲놀이를 하며 놀았다. 하얗게 입김을 풀풀 풍기며 잡기놀이와 비사치기(비사치기), 숨바꼭질과 기차놀이를 하면서 뛰어노는 동기들이 마치 열 살 어린이 같았다. 스물아홉 명의 어른들이 숲에서 뛰노는 흔치 않은 광경이었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만 같은 정겨운 모습이었다.
동기들과 함께 하며 '숲 공부하는 사람=좋은 사람'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맛있는 거 주는 사람=좋은 사람'을 잇는, 나름 근거 있는 믿음이랄까. 숲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찌나 이리도 마음이 순수하고 열려있는지. 함께 공부하는 동안 동기들은 나이에 기대어 권위를 부린다거나 '나 때는 말이야',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같은 말로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젊은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게 옳다면 인정하고 따르기도 하는 멋진 어른들이었다. 그들과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나누었고, 그 따뜻한 경험을 통해 나보다 나이 있는 분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수료를 앞두고 기수 책자를 제작했는데, 젊은이들 중 두 명과 책자 작업을 하며 우리 셋은 무척 가까워졌다. 울멍줄멍 모여 까르르 웃으면서 작업하는 모습에 우리에게 '잔챙이'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그 별명이 퍽 마음에 들어 우리는 지금도 서로를 잔챙이라 부르고 있다. 그들을 떠올리면 마음의 아궁이에 불을 땐 듯 가슴 한 편이 뜨뜻해지면서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힘을 얻곤 한다. 녹록지 않은 세상에서 등을 맞대고 서로를 받쳐주는 듯 든든한 기분. 결이 맞는 사람들과 벗이 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일인지 잔챙이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각자의 개성과 신념, 영역을 존중하며 서로를 성장하게 하는 벗은 쉽게 만날 수 없다는 걸 안다. 회사라는 익숙한 자리를 떠나 숲에 뛰어든 용기에 보답하듯 삶은 나에게 귀한 인연을 선물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