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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림 Aug 08. 2023

숲을 배우는 길에 들다

모든 공부의 시작은 즐겁다.

2019년 9월 4일, 숲해설가 입문 과정 첫 수업이 열렸다. 그날은 수요일, 직장인들에게는 일주일 중 가장 피곤한 날이다. 하지만 어떤 직장인들은 수요일임에도 활기가 넘친다. 가령 퇴사를 앞둔 나 같은 사람. 저녁 7시에 수업 시작이라 6시에 칼같이 퇴근을 하고서 부푼 마음을 안고 부지런히 달려갔다.


바로 전문가 과정부터 시작할 수도 있었지만, 입문 과정부터 차근차근 쌓아가고 싶었다. 물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할 수 없으니 바로 다이빙하기보단 발부터 참방참방 입수하고 싶은 느낌이랄까. 약 한 달 여에 걸친 교육과정이 남은 회사생활과 약간 맞물리긴 하지만, 수업이 평일 저녁 시간과 주말이라 충분히 병행할 수 있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내가 공부한 기관에서는 입문과정을 수료하면 전문가과정 지원 시 우선 선발권을 얻을 수 있었다. 다른 양성기관이 아닌 이곳에서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에 우선권도 야금야금 챙기기로 했다.


첫날에는 첫 시간답게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는데, 인상 깊었던 건 '자연명'을 만들라는 거였다. 자연에서 각자가 좋아하는 걸로 이름을 만들면 여기서는 서로 그 이름으로 부르고 불린다고 했다. '바오밥나무', '꽃마리', '병아리' 등 나무나 풀, 동물처럼 특정 대상에서 따온 자연명 틈에서 나는 '소림'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작을소(小)에 수풀 림(林), 작은 숲이라는 뜻이다. 나중에 숲해설가가 된다면, 나와 숲에서 함께 한 사람들 마음에 작은 숲이 하나씩 생기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그 작은 숲들이 하나둘 모이면 빽빽하고 거대한 숲을 이루겠지. 그런 꿈을 그리며 이름을 만들었다. 그때만 해도 이 이름이 이렇게 오랫동안, 여기저기서 쓰이면서 나를 설명하는 하나의 정체성이 될 줄은 몰랐다.






일곱 번의 입문 수업이 금세 지나갔다. 20대부터 60대까지 숲과 자연이 좋아 모인 10명의 벗들과 함께 여의도와 경희궁, 창경궁을 다니며 나무와 풀의 신비로움을 알아갔다. 나무에게도 눈이 있어서 햇빛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지를 뻗는다는 것과 가지가 뻗은 폭만큼 땅속뿌리도 넓게 뻗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솔방울 하나에 약 200개의 씨앗이 들어있다는 것, 더욱 효율적으로 햇빛을 받아 양분을 만들기 위해 나뭇잎이 진화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극강의 효율을 추구하는 나무가 수 억 년의 삶 속에서 찾은, 가지의 길이와 지름의 황금비율을 보며 식물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똑똑하다는 걸 느꼈다. 어쩌면 식물의 세계는 평생에 걸쳐 공부해야 할 만큼 무궁무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루페*로 보는 세상의 아름다움도 알게 되었다. 민들레는 사실 꽃 한 송이가 아니라 아주 작은 꽃들 200송이가량이 모여있는 꽃다발인데, 그 작은 꽃 한 송이를 루페로 보았을 때의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끼는 또 어떠한가. 루페로 들여다본 한 줌 이끼는 마치 공룡이 살던 중생대의 숲과 같았다. 탐험가의 망원경처럼 루페를 목에 걸고 초록 생명체들의 세계를 탐험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비로운 시간이었다.


루페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열고 들어간 문 같았다. 문을 열었더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루페를 들여다보면 몸이 작아진 앨리스가 된 것처럼 민들레 꽃이 거대해 보이고, 이끼가 공룡만큼 크게 느껴졌다. 루페를 눈에 대면 앨리스의 문이 열렸다. 그저 마음을 활짝 열고 한 걸음 한 걸음 그 세상 속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숲은 기꺼이 제 안으로 나를 들여보내 주었다.



*작은 생물을 10배 확대하며 볼 수 있는 휴대용 돋보기. 숲체험할 때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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