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맨>을 보고
우주에서 보면 지구에서의 일은 먼지 같아 보인다고 하지만 이 영화는 유별나다. 마침내 도착한 달의 신비함은 지구인 한 명의 깊은 고독과 슬픔에 비하면 사소하다. 데이미언 셔젤의 신작 <퍼스트맨>은 지구 밖으로 떠난 미국인의 스페이스 오페라가 아니다. 지구 안에서 불운과 불행을 견디는 가족의 생존기다.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 그리고 <마션>이 우주에서 살아남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뛰어난 시각적 구현으로 관객에게 체험하게 했다면 <퍼스트맨>은 지구에서 살아남는 게 얼마나 힘든가를 인물 내면의 탐구를 통해 관객에게 이해를 구한다.
셔젤에게 선택받은 주인공
감독 데이미언 셔젤은 ‘고생 끝에 낙이 온다’ 혹은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를 실천하는 인간형에 곧 잘 매료된다. 여기서 ‘고생’과 ‘인내’에는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포함되며, ‘낙'과 ’열매‘는 직업적 목표 성취다. 셔젤은 말한다. 고난을 이겨낸 자만이 위대해질 수 있다. 그가 선택한 주인공들은 아마추어에서 프로페셔널이 되기 위해 개인적인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며 수반되는 고통 또한 홀로 감내한다.
<위플래쉬>의 앤드류는 최고의 드러머가 되고자 자신을 학대한다. 플렛처 교수의 가혹한 교육 방식 역시 수련의 과정으로 여기며 끝내 그가 자신을 몰아세우는 데 동의한다. <라라랜드>의 미아가 할리우드 배우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야만 한다. 그녀가 수많은 오디션에서 낙방해 느끼는 좌절감은 꿈을 이루기에 부족하다. 마침내 그녀가 원하는 역할을 따낼 수 있었던 건 가장 소중한 연인 세바스찬을 제물로 내놓았기 때문이다.
<퍼스트맨>의 닐 암스트롱은 감독 개인의 취향에 정확히 도킹하는 인물이다. 직장과 가정 또는 직업적 성취와 심리적 안정을 동시에 얻을 수 없는 이 비극적인 남자야말로 셔젤이 생각하는 가장 영화적인 인간일 것이다. 암스트롱은 인류의 염원을 이뤄준 우주인인 동시에 딸과 동료들의 죽음에 사로잡혀 사는 지구인이다.
그가 겪는 고통의 강도가 세질 수록 그가 ‘퍼스트맨’이 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살리지 못한 딸에 대한 기억이 부지불식간에 그를 덮치고, 우주 비행 실험에서 동료가 또 죽었다는 소식을 수화기 너머로 전해 듣고, 집에 남은 아내가 남편과 아이의 아버지를 잃을까 봐 극심한 두려움에 떨 때쯤 그는 아폴로 11호의 선장 자리를 제안받는다.
할 수 있음과 할 수 없음
암스트롱에게는 항공 엔지니어이자 우주비행사로서 미션을 수행하는 일이 아버지 역할을 다하는 것보다 쉬워 보인다. 암스트롱은 문제 발생 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이고 놓친 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프로페셔널이다. 그가 일하는 NASA는 흔들리는 계기판의 화살표와 오르락내리락하는 숫자를 보고 위험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대비와 통제가 가능한 세계다.
미국의 달 착륙 프로젝트는 막대한 자본과 전문가들의 참여 아래 수많은 리허설을 거친다. 외부인이 보기에는 멀고 무모한 도전으로 보이겠지만 내부인에겐 이보다 더 익숙한 일이란 없다. 이러한 과정과 환경은 암스트롱이 자신의 일터에서만큼은 담대하고 진취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들었다. 암스트롱은 기절하면서 끝나는 360도 회전 트레이닝에 한번 더를 외치고 아폴로 11호의 연료가 거의 남지 않은 위기 상황에서 수동 운전을 선택해 달 착륙에 성공한다.
그러나 뇌종양으로부터 두살배기 딸아이 캐런을 구하는 일은 개인적이며 그의 능력 밖의 일이다. 딸의 발병은 예고 없는 현실이며 해결은 오로지 부모 두 사람의 몫이다. 그는 자료를 찾아 투병일지를 기록하고 친구에게 전화해 전문의를 수소문하지만 한 번뿐인 딸의 삶을 병으로부터 구해내는 데 실패한다. 그는 NASA에서와 달리 집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절망한다. 죽을 지도 모르는 여정에 오르는 그의 앞모습보다 책상에 앉아 방법을 찾는 그의 뒷모습이 더 고독해 보이는 이유다.
가정에서의 '무능력함'을 경험한 그는 가족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도 실패한다. 그가 아폴로 11호에 탑승하기 전날 아내 자넷은 그에게 아빠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두 아들에게 직접 말하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그는 소용없는 짐 싸기에 열중하며 고백의 순간을 미룬다. 마침내 성사된 가족의 책상 모임에서 그는 지루한 Q&A 시간에 참여한 교수처럼 아이들의 질문에 YES or NO로 대답한다.
지구에 남겨진 가족의 시간
마지막으로 암스트롱 가족에 대해서 덧붙이고 싶다. 자넷과 두 아들은 지구에 남겨진 사람들이다. 남겨진 사람들은 기다려야 한다. 떠나간 사람이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혹은 떠나간 사람을 따라갈 때까지. 전 세계인이 TV를 지켜보며 달에 성조기를 꽂고 귀국할 미국 영웅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때, 자넷은 집 안 소파에 앉아 라디오 중계를 들으며 남편이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초조하게 기다린다.
영화는 자넷 암스트롱이 겪는 고통의 시간을 닐 암스트롱이 달에서 보내는 시간만큼 할애한다. 가정의 시간이 역사의 시간보다 결코 사소하거나 무가치하지 않다는 걸 영화는 알아준다. 이 영화의 라스트 신이 TV 스크린 너머 꽃목걸이를 목에 걸고 대중에게 손을 흔드는 닐 암스트롱의 모습이 아니라 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본 암스트롱 부부라는 점 또한 그 증거다.
셔젤의 확고한 취향 탓에 <퍼스트맨>은 우주가 조연인 우주 영화가 되었다. <라라랜드>에서의 오로라 터치가 없다는 점은 이 영화가 지루하다는 평을 받는 여러 이유 중 하나인 듯하다.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이 그저 아름답기만 한 우주는 셔젤의 마음을 흔들지 못한다. 우주 한 번 갔다 오는 것보다 지구에서 살아남는 게 훨씬 더 힘겹다는 걸 그는 이미 알고 있다.
[chaeyooe_cimema]
퍼스트맨 First Man
감독 데이미언 셔젤 Damien Chazelle
그곳으로 떠나는 사람의 스펙타클 대신
이곳에 남겨진 사람의 고독에 관해 기록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