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란티노가 지키고 싶었던 단 한 사람

<원스 어 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보고

by Chaeyooe



※<원스 어 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여섯 번째로 만든 장편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이유는 너무하다 싶을 만큼 재밌어서였다. 152분의 러닝 타임 동안 나는 말로만 듣던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오락적 흥분과 긴장을 처음 느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자극보다 평온을 즐기던 나는 뒤늦게 타란티노의 필모그래피를 훑기 시작했는데 어안이 벙벙했다. 설마 <바스터즈>만큼일까 하는 심정으로 보았던 <킬빌> 1&2부(2003, 2004), <재키 브라운>(1997),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 <헤이트풀8>(2015)이 전부 또 너무하다 싶을 만큼 재밌었던 것이다. 오락을 타란티노의 영화로 배운 나는 <장고>에 대한 한 줄 평을 이렇게 썼다. ‘누군가 영화가 권태롭다고 고백하거든, 주저 말고 타란티노 영화를 처방하라.’


그러나 그의 아홉 번째 장편 <원스 어 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이하 <인 할리우드>)는 처방 목록에 추가하기가 난감하다. 전작들처럼 약효가 바로 나타나는 작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열 편 찍고 은퇴하겠다던 감독이 이런 돌연변이 영화에게 NO. 9 타이틀을 부여한 속뜻을 헤아려본다. 어쩌면 지금의 그는 ‘쿠엔틴 타란티노도 마지막에는 따뜻한 영화를 만들었다’라는 얘기를 듣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출처 = IMDb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야 하죠

<인 할리우드>는 영원히 뙤약볕 한가운데에 있을 것만 같았던 타란티노의 영화가 처연한 가을볕 아래로 이동했음을 알리는 징표다. 그동안 그의 세계에서 느낄 수 없었던 이 쓸쓸한 감정은 현실에서 죽임을 당한 한 사람을 허구적 공간에서나마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엄호하는 시도에서 발현한다.


타란티노는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가 참혹한 사건의 철저한 외부인이길 바랐던 것 같다. 그가 짠 판에서 샤론 테이트는 동네에서 일어난 한바탕 소동을 전해 듣고 당사자를 걱정해 주는 그저 살가운 이웃이다. 보이지 않는 보디가드가 친 투명 바리케이드 덕분에 샤론 테이트는 맨슨 패밀리와 끝까지 마주치지 않으며 1969년 8월 9일 새벽에도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


출처 = IMDb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이런 결말에 다다르고자 타란티노는 LA 베벌리힐스에서 맨슨 패밀리만을 위한 유인책을 마련한다. 우선 테이트가 사는 저택보다 아래에 있는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저택을 일종의 방어 진지로, 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를 기사단으로 세팅한다.


그다음 낡은 차 안에서 테이트가 사는 저택 진입을 공모 중인 맨슨 패밀리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계획을 일부 변경한다. 감독이 조종한 대로 이제 이들은 TV 드라마에 나와 자신들을 현혹시키는 연기자 나부랭이 릭 달튼을 제거하기 위한 행동을 개시한다. 보호 대상의 출입이 완벽히 금지된 릭 달튼의 집안에서 마약 복용자와 개 한 마리 그리고 화염방사기가 활약하는 난투극은 비로소 우리가 아는 타란티노의 그것이다.


출처 = IMDb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배우가 직업인 사람들, 배우로 살아가는 삶

1960년대 후반 할리우드가 배경인 <인 할리우드>는 배우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등장하는 직업 배우의 머릿수가 많다 보니 인원 파악하는 단계에서부터 자연스레 그들의 직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몰입하기 위해 현장에서는 역할 명으로 불러 달라 요구하는 메소드 아역 배우(트루디 프레이저), 자신의 쓸모없음을 받아들이는 이야기에 공감하며 흐느끼는 한물간 배우(릭 달튼), 사진 요청에 흔쾌히 포즈까지 취하는 신예 배우(샤론 테이트), 연기 파트너의 매니저 역할이 우선이 된 스턴트 배우(클리프 부스)는 모두 새롭진 않아도 때때로 일반인으로 분류되지 않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답게 관객의 시선을 끈다.


이들 중 릭 달튼은 배우의 삶을 엿보기에 가장 적절한 인물이다. 연이은 대사 실수에 자신을 악랄하게 힐난하다가도 연기 칭찬 한 번에 기쁨의 눈물을 글썽이는 그를 보고 있자면 배우가 느끼는 ‘슛 들어가면 혼자’의 감정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배우 자신이 ‘할 수 있을까?’ 하고 망설이는 순간 가능성은 절반 이하로 떨어져 버린다(「부디 계속해주세요」, 2018)고 했던 문소리 배우의 심정을 알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진다.


출처 = IMDb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찬란한 당신을 위해

잊지 못할 한 컷의 주인공은 단연 샤론 테이트다. 그는 자신이 출연한 <렉킹 크루>(1969)가 상영 중인 관에 슬쩍 들어가 앉아 관객의 반응을 살피는데 변화무쌍한 그의 표정은 스크린 밖의 관객까지 몰래 온 손님으로 둔갑시킨다.


나는 이와 비슷한 표정을 짓는 마고 로비를 그가 피겨 스케이팅 선수 토냐 하딩으로 분했던 <아이, 토냐>(2017)에서 본 적이 있다. 샤론 테이트의 환한 미소는 경기를 성공적으로 마친 직후 토냐 하딩이 지었던 그것의 사랑스러운 버전이다.


가만가만 액션 손동작을 따라 하고 등 뒤에서 파도처럼 덮쳐오는 관객의 웃음소리에 숨죽여 기뻐하는 그의 모습 전부는 ‘찬란하다’라는 형용사의 더할 나위 없는 예시다. 그리고 이 상영관 맨 뒷좌석에는 이 반짝거리는 사람을 위해 끊임없이 손뼉을 치며 웃어 주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앉아 있다.




[chaeyooe_cinema]

원스 어 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Quentin Tarantino



영원히 뙤약볕 한가운데에 있을 것만 같았던 타란티노의 영화가 처연한 가을볕 아래로 이동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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