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칸이 선택한 영화가 한국에 왔다

<로제타>를 보고

by Chaeyooe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었다. 감격스러웠다. 한국 영화가 세계 최고 영화제에서 1등을 하다니! 낭보가 전해지기 전, 일찍이 이 영화를 볼 좋은 자리를 예매해둔 나 자신이 흐뭇했다.


출처 = festival-cannes.com


사실 내가 궁금했던 결과는 따로 있었다. 벨기에의 형제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의 영화 <영 아메드>의 수상 여부였다. 다르덴 형제는 <영 아메드>를 포함해 지금까지 총 9편의 극영화를 연출했는데, 그중 7편이 칸 영화제에 출품되었다. 이변이 없는 한 두 사람이 여름휴가는 칸에서 보낸다는 농담이 전해질만 한 스코어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나 칸은 그들이 프랑스 공기만 마시고 가도록 두지 않았다. <영 아메드>는 감독상을 받았다. 이로써 그들의 장식장 안에 놓인 ‘FESTIVAL DE CANNES’ 트로피는 5개로 늘어났다.


출처 = (왼) IMDb <Rosetta>, (오) 네이버 영화 <로제타>


천재 감독과 역작이라는 말은 근사하지 않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 <로제타>가 지난 5월 23일 우리나라에서 정식 개봉했다. 뒤늦은 소개다. 1999년에 만들어진 작품이니 정확히 20년이 걸린 셈이다. <로제타>는 두 감독의 첫 칸 수상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들은 이 영화로 그 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두 번째 황금종려상은 2005년 <더 차일드>로 받았다)


극영화 연출 두 번 만에 최고상의 영예를 안았다는 점에서 다르덴 형제의 능력은 ‘천재적’이라는 뜬구름 같은 말로 눙쳐질 우려가 있다. <로제타>가 천재들이 자신들의 영혼과 맞바꿔 탄생시킨 역작이라는 상찬이 의도와 다르게 감독과 작품 모두를 절하할 수도 있다.


다르덴 형제는 일찍이 고향인 벨기에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온 성실한 예술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극영화로 이야기의 장을 옮긴 뒤에도 자신들이 작가로서 삼은 화두-노동과 노동자-를 지속적으로 관찰해 나갔다. <로제타>는 이러한 탐구의 결과물들 중 하나이지 특별판이 아니다. 따라서 너무 들뜨지 않고 거리를 둔 채 이 영화를 바라보는 것이 다르덴 형제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로제타>


약자가 약자를 밀어낼 수밖에 없는 구조

<로제타> 타이틀롤 캐릭터(에밀리 드켄)는 반드시 노동자가 되어야 하는 10대 소녀다. 알코올 의존자인 엄마(앤 에르노스)와 그랜드 캐니언 근처 트레일러에서라도 먹고살려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제타는 번번이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한다. 수습 기간이 끝나자 일하던 공장에서 쫓겨나고, 와플 가게에서 반죽하는 작업을 맡게 되지만 3일 만에 해고된다. 머지않아 같은 가게에서 종업원 앞치마를 두르게 되지만 며칠 만에 그는 사장(올리비에 구르메)에게 전화를 걸어 더는 일하러 가지 않을 거라고 통보한다.


극 중 와플 가게에서 반죽 작업을 하는 자리의 주인은 세 번 바뀐다. 한 여자가 열 번이나 결근한 탓에 해고되어 자리는 비게 된다. 그 자리를 10대 소녀 로제타가 채운다. 그러나 그의 자리 점거는 3일 천하로 끝이 난다. 사장이 자신의 어린 아들(플로리안 딜레인)을 그 자리에 넣으면서 로제타는 밀려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로제타>


이런 자리의 역사는 내가 대사를 귀동냥하여 시간순으로 배치한 것이 아니다. 난감하게도 영화는 밀려난 사람과 차지한 사람을 대면시킨다. 여자를 와플 가게로 불러들여 자신이 해왔던 밀가루 포대를 옮기는 일을 하는 로제타를 목격하게 한다. 아이가 아파서 결근할 수밖에 없었다던 여자의 처지를 로제타가 듣게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로제타가 여자를 위해 자리를 내어줄 수는 없다. 그는 이 자리를 사수해야만 한다. 관객도 로제타의 절박함을 알고 있다. 가만히 서서 자신을 쳐다보는 여자를 무시한 채 돌덩이 같은 포대를 옮기는 일만이 로제타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관객 역시 모르는 척 넘어갈 수밖에 없다.


하나의 관계가 더 남았다. 로제타와 사장 아들이다. 영화는 기어코 두 사람을 만나게 한다. 로제타는 나중에 다시 불러주겠다는 사장을 무시한 채 지하 창고로 내려가 사장 아들의 멱살을 잡는다. 이때 사장 아들은 ‘내 일자리’를 가로챘다며 분노하는 로제타에게 저항하지 않는다. 퇴학당한 지금의 그에게 다른 자리를 찾는 일은 요원하다. 묘책이 없는 상황. 어찌할 수 없는 관객은 또다시 불편해진다. 이러한 두 번의 불편한 확인 과정을 통해 관객은 약자가 약자를 밀어내는 생존 방식을 눈으로 실감한다. 그리고 현실을 생각한다. 지금 내가 차지한 자리의 이전 주인은 누구인가.


출처 = 네이버 영화 <로제타>


혹시 지금 로제타를 미워하고 있습니까

더 가혹한 자리 뺏기는 후반부에 있다. 로제타는 친구 리케(파브리지오 롱기온)가 차지하고 있는 와플 가게 종업원 자리를 빼앗기 위해 그를 두 번 배신한다. 로제타는 자신 대신 낚싯줄과 올가미를 찾아주기 위해 진흙 호수에 들어갔다가 미끄러진 리케를 한동안 구조하지 않는다. 잡을 만한 나뭇가지를 들고 달려오는 건 리케가 가라앉는다고 몇 번이나 소리친 뒤다.


수상쩍은 일이 있고 난 뒤에도 여전히 자신을 환대하는 리케를 로제타는 결국 자리에서 밀어낸다. 그는 사장을 찾아가 리케가 자신이 만든 와플을 가져와 몰래 팔고 있다고 고발한다. 그것도 모자라 리케가 보는 앞에서 그의 와플 꾸러미를 찾아내 사장에게 건네준다. 결국 리케는 그간 일한 값도 받지 못한 채 좀도둑 취급을 받으며 쫓겨나고, 사장은 로제타에게 리케가 던진 앞치마를 건넨다.


관객은 이번만큼은 선뜻 로제타의 편을 들어주기 어렵다. 리케는 로제타의 생존뿐인 삶에 윤기를 불어넣어 준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설탕을 뿌린 얇은 식빵 한 장과 맥주, 음악과 춤, 트레일러 이외의 잠자리, 웃음과 장난은 모두 로제타가 리케에게 대가 없이 받은 것들이다. 그로 인해 여태껏 자본주의 시스템에 꽂혀있던 관객의 화살은 선의를 저버린 악녀 로제타에게 꽂힌다. 그러나 이후 약 12분 동안 펼쳐지는 로제타의 일상 컷들은 관객이 스스로 자기 심장에 칼을 꽂게 만든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로제타>


관객을 위한 해피엔딩은 무용하다

로제타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가늠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 돌아온 엄마를 부축해 침대에 눕힌다. 6구 달걀판에서 달걀을 하나만 꺼내 삶아 먹는다. 혼자서 철근 같은 가스통을 옮기다 또다시 간헐적 복통이 찾아와 고꾸라진 채 고통스러운 울음을 내뱉는다. 로제타를 바라보는 일은 숨을 쉬는 방법조차 잊을 정도로 괴롭다. 그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아닌 척하면서도 은근히 가난을 개인의 태만과 무능의 탓으로 돌렸던 나 자신이다.


영화는 나의 죄책감을 완전히 덜어 줄 만한 해피엔딩을 내놓지 않는다. 로제타의 삶을 구해주지 않는다. 리케의 도움으로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난 로제타가 훌쩍이며 그를 바라보는 것에서 영화는 블랙 아웃된다. 마치 구원은 현실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듯 말이다.




[chaeyooe_cinema]

로제타 Rostetta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Jean-Pierre Dardenne, 뤽 다르덴 Luc Dardenne



가라앉는 인간을 건져 올리지 않는 카메라.
구원은 현실에서 존재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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