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을 보고
※ 본 글에는 ‘두 남매의 과외 알바 진입 이후의 스토리 전개’가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한국인답게 나 역시도 반지하에 대한 기억이 있다. 언젠가 엄마에게 들었다. “네 아빠가 신혼집이라고 데려갔는데, 반지하이더라고.” 당시 20대였던 엄마는 계단을 내려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표정이었을까.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하나뿐이다. 그 집에 사는 동안 엄마는 당신의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지 않았다.
엄마에 비하면 내 이야기는 덜 비극적이다. 초등학생 때였다. 여름이었고 꽤 더웠다. 친한 친구 셋이 나를 보러 집 앞까지 와주었다. 소란스레 떠드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방안까지 퍼졌다. 나는 옷을 갈아입으며 창문에 늘어뜨린 발 너머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보이는 건 맨종아리뿐이었다. 친구들의 웃는 얼굴이, 손뼉을 치는 손이 보이지 않았다. 반지하였기 때문이다.
숨이 좀 턱 막혔던 것 같다. 실제보다 더 애처롭게 편집된 기억일 것이다. 가련한 주인공이 장래희망이던 시절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여태껏 그 깔깔거리는 맨종아리를 올려다보던 그때의 나를 잊지 못한다. 이사를 간 건 몇 년 뒤였다. 가까스로 1층이었다.
IT 강국 + 반지하의 왕국 = 대한민국
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은 시작부터 대뜸 하강한다. 어두침침한 땅 밑으로 내려가는 화면은 마치 낡은 케이지에 갇혀 갱도로 이동하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막 들은 육중한 종소리는 작업의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였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을 산다. 그러나 도착한 곳은 반지하의 가정집. IT 강국답게 그곳에서도 남매 김기우(최우식)와 김기정(박소담)은 스마트폰을 들고 돌아다니며 남의 집 와이파이를 잡고 있다.
16년 전 <살인의 추억>(2003)에서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야?”라고 외치며 날아 차기를 하던 박두만 형사는 이제 반지하의 왕국에서 실업자 4인 가구의 가장 김기택이 되었다. 그보다 생활력과 체력 그리고 입심에서 우위에 있는 식구는 기우, 기정의 엄마이자 기택의 아내 충숙(장혜진)이다. 전국체전 해머던지기 메달리스트인 그는 일심동체 선수 정신으로 피자 박스를 접는 재택 부업에 가족들을 투입해 생계를 겨우겨우 잇는다.
‘함께’가 가능한 봉준호의 가족들
빈곤해도 풍비박산 나지 않고 도리어 의기투합하는 기택네 가족은 일부 관객에게 현실성을 따져 묻게 한다. 요즘 사회에서 가난은 가족의 와해를 부르는 절대적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비정상적인 결집력은 봉준호 세계의 가족 모델이 가진 고유한 정체성이기도 하다. <괴물>(2006)의 강두네, <마더>(2009)의 혜자와 도준 모자, <설국열차>(2013)의 남궁민수와 요나 부녀, <옥자>(2017)의 미자와 동물 옥자 모두 비극 속에서도 끈끈한 가족 관계를 가져간다.
일찍이 봉준호 감독은 “논리적으로 이해 못 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비밀>, 2009)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기택네 가족은 그런 감독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혈연 공동체다. 그래서 그들은 궁핍해도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조너선 사프란 포어)’울 수 있다.
(대)문이 열리네요. 그들이 (쉽게) 들어오죠
강두네가 가족을 구하기 위해 똘똘 뭉쳤다면 기택네는 가족끼리 먹고살기 위해 함께 움직인다. 이들의 결집력은 모종의 가족 취업 사기 사업을 벌이는 추진력으로 전환된다. 당하는 쪽은 웨어러블 디바이스 사업의 번창으로 상류사회에 입성한 박동익 사장(이선균)네다.
친구 추천으로 이 집 첫째 다혜(현승민)의 영어 과외 선생으로 취직한 기우는 사모님 연교(조여정)를 통해 그들만의 폐쇄적인 인력 충원 루트(이른바 믿음의 벨트)를 알게 된다. 그리고 ‘아는 사람 소개’의 허술함을 이용해 기우는 기정을, 기정은 기택을, 기택은 충숙을 이 저택에 줄줄이 불러들인다.
미대 입시를 준비했던 기정은 이 집 둘째 다송(정현준)의 미술 교육 및 심리 치료 교사로, 대리운전을 뛰었던 기택은 박동익의 수행 기사로, 집안 살림을 도맡아온 충숙은 집사로 취직한다. (기우에게는 입대 전후 도합 4번의 수능 영어를 공부한 경험이 있다) 나름 피고용인 각자의 경력을 우대하는 동시에 고용주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역할 분담을 한 셈이다.
여기서부터 당신은 웃을 수 있는 사람입니까
<기생충>을 보며 지리산 산봉우리를 하나하나 정복하는 듯한 흥분과 재미를 느낀 건 거기까지였다. ‘문광(이정은) 리턴즈’로 포문을 여는 후반전부터는 불안했다. 불편했다. 마치 진흙탕에 가슴까지 빠진 기분이었다. 이전까지 나는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기택네 가족의 삶이 나아질 거라고 말이다. 그들은 열심히 살고 있다. 그러니 잘 돼야만 한다. 그리고 그 희망은 내가 나와 내 가족에게 품은 것이기도 했다. 부정하고 싶지만 나와 내 동생은 기우고 기정이고, 나의 엄마 아빠는 충숙이고 기택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기택네 가족과 닮았다.
평생 통유리창 너머 해 뜨고 달 뜨는 풍경을 소파에 앉아 바라보는 박 사장네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적어도 기택네 가족이 노상 방뇨하는 인간의 정수리에 물 한 바지 내리쏟을 수 있는 그런 높이의 집에서 사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다.
그러나 나의 믿음은 배신당한다. 이미 기택네처럼 열심히 산 문광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박 사장네가 이사 오기 전부터 이 명망 높은 저택에서 일했지만 그의 사적 생활은 겨우 좁고 지저분한 지하 공간에 있었다. 그곳에서 그의 남편 근세(박명훈)는 4년 3개월 하고도 17일째 몰래 살고 있다.
문광은 충숙을 ‘언니’라고 칭한다. 자신과 충숙을 같은 ‘불우이웃’으로 묶는다. ‘우리’가 같은 사람임을 확인시킨다. 대치하는 두 가족을 보며 나는 나와 나의 가족도 실패할 거라는 절망감에 빠졌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소설가 김애란의 문장을 되뇌면서 말이다.
무사한 집과 무너진 집
영화는 물난리 신으로 확인 사살한다. 늦은 밤 갑작스러운 폭우에도 박동익과 연교는 거실 소파에서 조용히 단잠을 자고, 다송은 마당에 있는 고급 텐트 안에서 밤새 혼자 논다. 그들은 모두 무사하다. 그러나 그 시각 기택과 기우는 침수된 집 안에서 물 밖으로 목만 뺀 채 떠다니는 물건들을 잡으러 다니고, 기정은 오물이 더는 역류하지 않게 변기 위에 앉는다. 이재민이 된 세 사람은 체육관에서 간밤을 보낸다. 그들은 집을 잃었다.
다음 날 아침 미세먼지를 해소해준 단비에 기뻐하는 연교의 환한 표정을 보며 나는 그 앞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는 기택과 같은 표정을 지었다. 무계획한 불행을 박 사장네 가족은 방어하지만 기택네 가족은 그러지 못한다. 우리 가족 역시 그럴지 모른다. 참혹했다.
<기생충>은 외면해왔던 나의 가난에 대한 불안을 끄집어냈다. 다 잘 될 것이라는 주문이 무용하다는 걸 실감케 했다. 보는 내내 나는 기택네 가족과 우리 가족을 동일시했다. 그래서 그들이 모욕과 위협을 받을 때마다 조마조마했고 비참했다. ‘천국에서도 누군가는 화장실을 청소해야 한다’(알폰소 두랄레)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천국에 갈 수는 있을까. 노력하면 가능할까. 자신 없다. 나는 아직도 가까스로 1층에 살고 있다.
[chaeyooe_cinema]
기생충 PARASITE
감독 봉준호
햇빛을 보는 집에서는 다다를 수 없는 햇볕을 쬐는 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