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밴쿠버의 린 캐년 (1)
한 도시에서 일주일 정도를 머물면 이틀은 구체적인 일정을 세워두지 않고 비워두는 편이다.
낯선 도시에서 더 낯선 곳에, 갑자기 가고 싶은 마음을 위해서다.
밴쿠버 도시 여행을 마치고 온 어느 날 저녁 시간.
여느 때처럼 식탁에 노트북을 열고 비워둔 이틀의 일정을 위해 여기저기 검색을 하고 있다. 도시는 충분히 돌아다녀봤으니 이제는 어떤 초록색 안전지대로 쏙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든다. 너무 힘들이지 않는 가벼운 트레킹 코스가 있으면 좋겠는데.
검색어는...
'vancouver trekking' 또는 'vancouver hiking'.
그러던 중 초록색의 작은 호수 사진 한 장을 보게 된다. 마치 팅커벨이 날아다닐 것 같은 그곳!
노스밴쿠버의 린 캐년(Lynn Canyon)이라는 곳은 그렇게 해서 가게 되었다. 산이라면, 그리고 걷기라면 당연지사 오케이를 외치는 엄마와 아빠도 두말할 것 없는 찬성이었다.
린 캐년으로 가려면 일단 밴쿠버 다운타운에서 노스밴쿠버라는 지역까지 배를 타고 가야 한다. 밴쿠버의 랜드마크인 가스타운 증기시계가 있는 Waterfront Station에서 SeaBus를 타고 10분 정도 가면 도착!
아빠는 이번 캐나다 여행에서 특히 배 타는 것을 신기해하셨다. 아니 사실 지하철, 택시, 기차 이국적인 이 나라의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마다 눈을 반짝거리시는데, 5년 전 토론토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내 모습이 보였다. 새로운 곳에 갔을 때 두려움과 망설임보다는 호기심과 두근거림으로 다가가는 기질은 정확히 엄마와 아빠에게 물려받은 게 분명하다.
오래된 항구에서, 오래된 기계에서 노스밴쿠버행 SeaBus의 표를 끊었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면 언제나 오래된 것들에 매력을 느낀다. 얼마나 오래전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기계에서 표를 뽑아 그들의 여정을 이어갔을까. 그런 상상을 하며 그 시간의 축적에 즐겁게 가담한다.
밴쿠버 도심에서 린 캐년으로 가는 여정은 그리 간단하진 않다.
노스밴쿠버에 도착했으면 그 근처로 가는 버스를 타고 또 20분 정도를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이동하는 시간조차 우리에게는 소중한 과정.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현지 사람들 틈에서 자연스럽고 거침없이 녹아드는 모든 시간을 너무 사랑한다. 익숙지 않은 새로운 환경에서 더 나다운 내가 되는 느낌은 이상하고도 넘치게 매혹적인 일이다.
버스를 타기 전에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노스밴쿠버에는 론즈데일 키 마켓(Lonsdale Quay Market)이라는 유명한 시장이 있는데 다양한 먹거리를 판매하고 아기자기한 소매 상점이 모여있는 곳이다.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사 와서 야외에 마련된 테라스 자리에 앉았다. 아빠는 오늘도 햄버거를 찾는다. 아 여기 유명한 맛집 찾아놨는데. 하지만 그가 햄버거를 원한다면... 햄버거집을 찾는다, 실시!
부모님과 함께 (특히) 해외여행을 한다면 유연함과 차분함을 갖춘 계획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 모든 일정은 명확하게 그러나 촘촘하지는 않게, 동선의 효율성을 높이고 유명한 맛집의 옆집의 앞집을 가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필수 덕목이죠.
그렇지만 신기할 정도로 서양인 입맛(?)을 가진 아빠는 언제나 햄버거 노래를 부르신다. 이건 캐나다 여행자로서 아주 좋은 역량이다. 고로 가이드인 나를 매우 편하게 하는(심지어 즐겁게)하는 부분이다. 캐나다 한 달 여행 동안 한식당을 한 번도 안 갔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내 친구들은 잘 믿지 못한다. 어쨌든 우리는 아름다운 해안가를 바라보며 엄마와 나는 케밥을, 아빠는 패티 듬뿍 햄버거를 점심으로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버스 시간이 다 되어 테이블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옆 테이블에서 혼자 점심을 드시고 계시던 아저씨는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Beautiful Day!
이런 순간엔 심히 감동을 받는 편인데요. (상황에 따라 거의 울먹일 때도 있어요. 물론 혼자 속으로) 6년 전 토론토를 사랑했던 이유는 그저 이런 사람들 덕분이었어요.
그리고 앞에 있던 잔잔한 해안가가 유난히 아름다워 보였지요. 오늘의 목적지인 린 캐년은 가지도 않았는데, 이미 최고의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