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하게 나아가기
밴쿠버에 도착한 첫날,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내다보이는 곳에 늦은 밤이 되어도 불이 꺼지지 않는 레스토랑이 보였다. Denny's라고 적힌 노란색 바탕의 눈에 띄는 간판. 이 도시는 오후 4시만 되어도 문을 닫는 카페들이 대다수인데, 24시간을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라니호기심을 품을 수밖에.
우리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던 밴쿠버 여행 마지막날, Denny's 에서 늦은 점심을 먹게 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눈이 편안한 톤다운된 민트색 의자에, 홀의 가장자리를 따라 나있는 부스(booth) 형태의 좌석들이 보인다. Breakfast, Lunch, Dinner and Late night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키친 앞으로는 음료와 커피가 만들어지는 작은 공간이 존재한다. 통창으로 밖이 훤히 보이는 테이블로 안내를 받아, 비가 오는 도시를 바라보며 자리에 앉았다. 고전적인 미국 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온 기분이다.
반숙 달걀 두 개와 버터가 올라간 핫케이크, 불에 구워진 소시지, 그리고 베이컨, 두툼한 패티가 숨겨진 햄버거, 구운 야채가 듬뿍 들어간 오믈렛...! Denny's Restaurant은 전형적인 미국 가정식 요리를 제공하는 캐주얼한 레스토랑이다. 우리는 햄버거와 오믈렛, 라쟈냐를 주문했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동안 아빠의 콜라가 먼저 나오고, 엄마와 나의 머그잔에는 따뜻한 커피가 채워졌다.
여행을 마치고 온 나는 이 평범한 레스토랑에서 보냈던 시간이 일상 속의 나를 유난히 건드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푹신한 식감의 오믈렛이나 흐드러진 치즈가 듬뿍 들어간 라쟈냐 때문이 아니라, 우리 테이블에 음식과 커피를 내어주던 어떤 사람 덕분이었다.
그의 친절은 프랜차이즈 식당의 고객 서비스 교육에 따라 만들어진 태도는 아니었을 거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그는 우리가 한국에서 온 여행자인걸 알게 되고, 우리는 그가 한국 드라마를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곧이어 나는 영어로 물어보고 그는 한국어로 답하는 이상하고 미소가 나는 상황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몇 마디의 대화, 주고받는 눈길을 통해 아무런 기억도 없는 생경한 도시에서 느껴지는 다정함이 신기할 뿐이었다.
우리가 식당에 도착하고 떠날 때까지 그는 정말 자신의 일에 성의를 다했다.
커피 잔이 채워져 있는지 다시 확인하고, 불편한 점은 없는지, 음식 맛은 괜찮은지에 대해서. 물론 이 나라의 식당 문화와 서비스 팁에 대한 것들에 대해 알고 있다. 그런 부분들을 차치하고 자신의 일을 대하는 태도가 반듯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 매우 평범한 행위가 어떤 마음을 관찰하게 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건 익숙한 도시 생활에서 형성된 일종의 권태였을 것이다. 평범한 일상이 지루하다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날들에 대한 반성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환경으로부터 받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고 느낀 건, 책보다는 경험에 의존하여 나온 것이다.
특히 어떤 조직의 구성원이 되었을 때, 자신을 둘러싼 외부 환경을 구성하는 요인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없다.
우리는 옆자리에서 10초마다 한숨을 쉬고 심신의 피곤함을 담아 키보드를 타닥타닥 거리는 동료들에게는 결코 에너지를 얻을 수 없다. 자신의 일에 대해 진심으로 흥미와 성취감을 느끼고 있더라도, 당신의 생기가 하루빨리 부러지길 바라는 상사의 탁한 눈빛을 보면 그 긍정적인 감정들은 진짜였지만 가짜가 되기도 한다. 연줄로 얻은 자리에 앉은, 역량이 부족한 리더는 자신의 무능함을 숨기기 위해 팀원들의 유능함과 잠재력을 교묘하게 갉아먹는다. 업무 메일 안의 줄 바꿈을 지시하며 자신의 무용한 영향력을 과시할 뿐이다. 우리의 작고 우연한 실수는 배움과 성장을 촉진하는 매개체가 아니라 능력 없는 관리자의 좋은 먹잇감 되어 패배감만 남기고 사라진다.
업무 떠넘기기로 인해 당신에게 도착한 일의 목적과 가치는 흐릿해진다. 내 인생이 재미없으니 당신도 재미없길 바라는 사람들 틈에 녹아져서, 평범해서 소중한 일상은 지루함과 태만함으로 가득 차버리기 시작한다. 조직이 개인을 이긴다. 성장을 찾을 수 없는 일은 불행할 뿐이다.
어떤 노동의 가치는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태도는 묘할 정도로 강하게,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지기 마련이다. 어떤 일이든 근심과 고통은 존재하고 (없을지도 모르는) 재미와 의미를 찾는 건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극히 소중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어떤 환경에 침몰되지 않는 자신만의 반듯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 힘은 못된 환경을 뚫고 나아갈 것이다.
어떤 일이든, 매일 하는 일에 대해 노력과 정성을 다하기로 다짐한다면 그건 결국 자신의 자연스러운 기질이 될 것임을 비 오는 날 갔던 Denny's의 그 사람을 보며 든 생각이다.
Denny's는 1953년 캘리포니아 레이크우드에서 설립된 미국의 프랜차이즈 패밀리 레스토랑입니다. 현재 전 세계 12개국에서 1,600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라쟈냐와 오믈렛은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거예요. 혹시라도 방문하게 되어 밝게 웃는 직원분을 보면, 함께 웃어주세요.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