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밴쿠버의 린 캐년 (2)
린 캐년으로 가는 228번 버스를 탔다.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여행자들은 피곤함이란 모르고 여기저기 다니기를 5일째다. 시차적응이 아직 안되었다는 건, 그 228번 버스를 타며 깨달았다. 케밥과 패티 두툼한 햄버거로 배를 두둑이 채운 엄마와 아빠는 버스 안에서 곧 달콤한 잠에 빠졌다.
이제 도심을 벗어나 조금씩 한적한 길로 들어서는 버스, 나까지 잠들면 안 돼! 가이드의 책임감을 가지고 쏟아지는 졸음을 이겨내는 중이다. 눈으로는 구글맵을 쫓으며 가끔씩은 창 밖을 내다본다.
반쯤 감긴 눈으로 휴대폰 속 지도를 보다가, 지나쳐버렸다. 두 정거장! 옆자리의 엄마와 뒷자리의 아빠에게 하차를 위한 눈빛을 보낸 후 stop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세 사람은 아무도 없는 어느 서양 마을의 시골 바닥에 내려졌다.
여기서, 원래 목적지인 린 캐년(Lynn Canyon)은 2.5 km² 규모의 숲 속에 자리한 협곡이다. 린 트레일(Lynn Trail)이라고 하는 등산로를 따라 가벼운 트레킹을 할 수 있으며 50m 높이의 역사 깊은 현수교(Lynn Canyon Suspension Bridge)와 천연 수영장(30 Foot Pool)이 있어 밴쿠버 사람들에게 깊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요정들이 나올 것 같은 자연 속 수영장은 특히 여름에 인기가 좋다고. 그리고 무료라는 점!
그 입구로 가기 위해 잘못 내린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한적한 주택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세 사람이 걷는 넓고 깨끗한 길 양쪽으로는 각자의 차고를 가진 서양 주택들이 고상하게 늘어서있다. 걸으면서 볼 수 있는 풍경은 잠시 우리의 목적지를 잊게 만든다. 원래대로라면, 걷지 않았어도 될 그 길을 걸으면서 나는 다시 깨달았다.
어느 집 마당에서는 할아버지와 놀고 있는 귀여운 손자의 모습이 보이다가, 망치로 뚝딱뚝딱 지붕을 고치고 있는 청년을 지나치고, 자신보다 커다란 가방을 뒤로 맨 여자 아이가 아기 캥거루처럼 뛰어가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잘못 내린 버스정류장은 우리가 놓칠 수도 있었던 모든 영화 같은 일상을 마주하게 한다.
여행은 언제나 우리의 실수를 우아하게 수용해 주기 마련이다
이 계획에 없던 산책을 설레어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탐정/수사 분야의 수많은 미국 드라마 시리즈의 팬을 자처하고 있는 엄마와 아빠. 이 동네는 꼭 얼마 전에 본 넷플릭스 시리즈(역시 스릴러)에 나오는 곳이랑 똑같이 생겼다며 지극히 평범하고 조용하고 평화롭기까지 한 이 낯선 동네에 대해 조금은 스산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중이다. 꼭 저렇게 생긴 차고에 범인이 숨어있다며...
그리고 우리는 린 캐년에 도착했다. 독특하고 멋진 모습을 하고 있는 카페가 있어서 커피 한잔을 하고 가기로 한다. 놀라웠던 사실은 이 카페가 넷플릭스 시리즈 버진리버의 촬영장이었다.
정확히 시즌 2의 1화 (새로운 시작) 37분경에 이곳의 전경이 나오기 시작한다. 버진리버는 엄마의 최애 넷플릭스 시리즈. 버진리버가 밴쿠버에서 촬영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린 캐년이 나왔을 줄이야. 그야말로 영화 속에 있던 순간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 사실을 몰랐지만.
영화 속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하고 본격적으로 린 캐년 탐험을 시작한다.
침엽수림이 가득한 울창한 숲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Lynn Valley Suspension Bridge라는 현수교를 필수로 거쳐가야 한다. 노스밴쿠버에는 유명한 두 개의 현수교가 있는데, 하나는 캐필라노 현수교 다른 하나가 이 린 캐년 서스펜션 브리지다. 고도 약 50m, 길이 약 48m로 1918년 개설된 1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오래된 현수교.
50m의 고도에서 바라보는 폭포는 매우 아릅답.. 다웠었다는 기억이 있다. (무서움 이슈로 선명하지 못한 기억) 이 현수교는 2018년 론리 플래닛이라는 여행 잡지 표지에 등장하면서 더욱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토록 튼튼한 다리를 100년 전에 지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역시 오래된 것들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현수교를 건너면 곧바로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등등의 영화가 생각나는 울창한 열대우림 숲이 나타난다. 숲에 난 길을 따라 얼마간 걷다 보니, 앞서 말한 천연 수영장의 모습이 곧 보이기 시작했다. 에어비앤비 숙소의 식탁에 앉아 노트북의 화면으로 봤던 그 신기한 물의 색깔은 결코 포토샵으로 만들어진 인위적인 색이 아니었다. 바닥에 깔린 돌이 투명하게 보이는 맑은 초록물의 자연 수영장.
가끔은 내가 여행지를 선택했나 아니면 여행지가 나를 선택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스스로 선택해서 왔지만 이렇게 멋진 곳을 만나면 마치 이곳이 저를 끌어들인 느낌이에요. 약 2시간의 열대우림 탐험을 마치고 나와 다시 한적한 동네를 걸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대화 주제는 올 때와 같았는데요.
넷플릭스에 나오는 그런 동네야... 저기 차고에...
여행에서 도시냐 자연이냐 하고 묻는다면 개인적으로는 선택하지 못합니다. 굳이 고르자면 도심을 약간 비껴나간 한적한 동네의 자연이 좋아요라고 말할거에요. 이런 점에서 노스밴쿠버의 린 캐년은 거의 완벽했던 여행지임이 틀림없었습니다.
P.S.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면, 감사합니다.
마음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