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완카 호수를 천천히 감탄하기
포레스트 그린색 점퍼를 입은 그 사람은 우릴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그는 우리 차의 유리창 전면에 붙어있는 파크패스권을 확인하고 엄지를 척 들어 올리며 자연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늘 웃는 얼굴로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대하는 사람을 보면 언제나 감탄하게 된다. (파크패스는 밴프 국립공원을 방문할 경우 구매해야 하는 일종의 입장권 같은 것입니다.)
약간의 언덕을 올라 주차를 하고 마침내 미네완카 호수를 마주했다. 넓게 펼쳐진 고상한 호수 주변으로 귀여운 털북숭이 강아지 두 마리가 뛰어다녔다. 반려견과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늘 웃게 되는 것 같다.
미네완카 호수(Minnewanka Lake)는 밴프 다운타운에서 북동쪽으로 약 15km 떨어져 있는 빙하호다.
호수의 길이는 21km, 깊이는 142m로 밴프 국립공원에서 두 번째로 긴 호수이기도 하다. 미네완카라는 이름은 원주민어인 크리어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물의 영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호수의 북쪽에는 '미네완카 레이크 트레일'이라는 하이킹 코스가 있어 가벼운 트레킹을 할 수 있고 여름철에는 보트 투어나 카약과 같은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5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는 미네완카 크루즈선을 운영하고 있어 거대한 호수를 조금 더 가까이 느껴볼 수 있는 곳.
이 호수에서는 세 시간을 머물게 되었다.
'머물렀다' 보다는 '머물게 되었다'라는 표현이 더 적확할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왼쪽 엄지손가락에 쏘인 벌 덕분(?)입니다.
호수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가 갑자기 등골이 오싹!
순간 손가락이 찌릿하더니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내 조금씩 벌겋게 달아오르며 퉁퉁 부어가는 엄지 손가락. 가지고 있는 비상약은 없고 벌에 쏘여본적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움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낯선 곳에서는 모기만 한 일도 코끼리처럼 크게 느껴지기 마련이니까요..
일단, 호수 앞의 작은 매점에 가봤다. "벌에 쏘였을 때 응급처치할 수 있는 약 같은 것이 있나요?" 하고 물으니, 주섬주섬 비상약 상자를 꺼내주신다. "벌에 쏘였더라도 알레르기가 없으면 곧 가라앉을 거예요. 일단 저희가 가지고 있는 소독약과 밴드를 드릴게요." 호숫가에 위치해 있는 곳이라 그런가,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에서 비상약품 상자가 나오는 것이 참 신기한 모습이다.
그러나 증상이 가라앉지 않는 손가락. 알코올 솜은 별로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중 아까 봤던 포레스트 그린색 점퍼를 입은 직원분을 다시 만났다. 그분께 벌에 쏘였다고 말하니, "알레르기가 없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동안 차가운 물에 손가락을 대고 있으면 좋아요, 저기 호수가 있네요"
그리하여 미네완카 호수의 차가운 물에 손을 대고 세 시간을 돌바닥에 앉아있게 된 까닭이다. 물에 손을 넣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은 꼭 한 마디씩 하는데 예를 들면, "물 차가워요?" 하면서 내 옆에 잠시 앉아 손을 넣었다 빼고는 "Have a good day"를 붙이고 지나가는 식이다.
처음에는 벌에 쏘여서 냉찜질을 하고 있다고 말하다가 나중에는 그냥 "시원해요, 손을 넣어보세요"하곤 했다. 아찔했던 순간은 작고 소소한 대화 속에 스며들며 사라지기 시작하고, 그제야 눈앞에 펼쳐진 호수의 청량미를 감탄한다. 그리고 다행히 알레르기는 없었는지 괜찮아졌다. 이후 이틀정도 부기를 가라앉히는데 꽤 고생을 했지만요.
어쨌든 벌에 쏘인 덕분에 미네완카 호에서는 계획보다 더 오래 머물게 되었습니다. 천천히, 세세하게 관찰했던 아름다움은 아무래도 마음속에 깊숙이 남겨지기 마련이지요. 그렇다면 벌에 쏘인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지 않을까.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