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틀 무렵에 캔모어 걷기
자신 있게 아침형 인간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아마도 '처절하게 노력하는' 아침형 인간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할 것이다. 일찍 일어나고 싶은 이유는 아침 시간의 고요함이 주는 에너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오롯한 시간에 깨어있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은 거짓이 아닐 테니.
아무래도 나 같은 노력형(아침 인간)은 새롭고 낯선 곳에 가면 동트기 전부터 저절로 눈이 떠지리라 생각한다. 평소에 원하던 가장 이상적인 방식으로 아침을 맞는 진짜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것. 낯섦이 주는 기분 좋은 긴장감은 평소의 고치고 싶었던 습관을 바꿔주는 기폭제가 되는 것 같다.
'캔모어'라는 도시는 캐나다 앨버타주에 있는 도시다. 세계적으로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밴프의 옆에 붙어있어, 캘거리에서 밴프로 향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 첫 관문이 되기도 하는 곳이다. 우리는 밴프의 일주일 여정동안 이 캔모어라는 도시에 머물렀다.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우리가 어떤 장소에 가장 온전하게 있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그곳에 가있어야만 한다는 추가의 부담에 직면하지 않을 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에 대해 염세적인 태도를 가진 어느 소설 속 주인공을 소개하며, 상상했던 장소에 대한 기대와 실제로 그 장소에서 느끼는 바에 대한 차이가 크다는 관점을 드러낸다. 어떤 장소에 대한 '상상과 현실의 괴리감' 같은 것을 말하는데, 아마 파리 증후군 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문장은 나에게 다른 방면, 즉 좋은 방식으로 캔모어를 떠올리게 했다.
사진 속 캔모어에 다녀온 지는, 현재 이 글을 쓰는 시점을 기준으로 네 달이 넘어간다.
그렇지만 동틀 무렵의 Three sisters(세 자매봉.. 정도로 번역할까요?)가 웅장하게 버티고 서있는 사진은 그때 그곳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던 아침으로 다시 데려다 놓는다. 이런 식의 '현실과 상상의 괴리감'은 참 반겨볼 만하지 않을까요? 소설이 긴 호흡으로 우리를 상상 속의 세계로 데려가 준다면, 사진은 형광등이 탁! 하고 켜지는 것처럼 우리가 존재했던 장소와 시간 속으로 던져놓는 느낌이다.
매일 가는 동네 스타벅스, 만원 지하철 안 혹은 수많은 감정이 묵혀있는 내 방안. 우리가 어디에 있든 사진 한 장은 내면에 새로운 의식을 부여하는 것 같다. 대부분은 기분이 좋아진다. 좋은 것을 봤을 때, 사진을 찍고 싶어 지니까.
아무튼 캔모어에서는 매일 동트기 전에 일어나 가볍게 산책을 했다.
이른 시간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아무래도 일출이기 마련이다.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의 빛을 받아 록키 산맥의 색깔은 일분일초가 다르게 변하고 우주에 태양이 여러 개는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는 가끔 새로운 환경에 스스로를 던져 놓아 보는 경험이 필요한 것 같다.
꼭 해외여행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다니는 산책로의 경로를 조금 비틀어본다던가, 카페에서 새로 나온 신메뉴를 시도해 본다던가, 계단을 두 칸씩 씩씩하게 올라본다던가 하는 것들.
매일 똑같이 하는 행동이나 생각을 조금씩 비틀어 보면 보이지 않던 새로운 것이 나타나고 새로운 관점이 생기기도 한다. 그건 일상을 조금 더 즐겁게 다루는 방법이지 않을까.
어느 오후에는 아주 예쁜 무지개도 봤습니다. 그 선명함은 지금껏 봐왔던 무지개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였는데요, 혹시 맑은 공기의 영향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지개의 선명도가 공기의 질과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과학적 지식이 부족하므로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무지개였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 역자 정영목 · 청미래 ·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