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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yell Sep 15. 2022

뒷모습을 기억하는 법 | 감자빵

백로 - 만물의 제철

설탕을 넣고 포크로 으깨는 것은 나의 몫이다.


초록색 찬장으로 꾸며진 오래된 주방에서 저녁 준비로 바쁜 엄마를 주황색 전등이 비춘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재잘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 엄마는 섞어먹으라며 나에게 감자와 설탕을 주곤 했다. 작은 손으로 감자를 열심히 으깨고 입으로 가져가는 사이에 엄마는 얼른 저녁을 차렸다. 그런 날에는 오이와 당근이 들어간 감자 사라다가 저녁 반찬으로 올라왔다. 엄마가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였다. 양껏 만들어 놓고는 다음날까지 먹곤 했으니 말이다. 


어린 나는 감자의 맛도, 오이가 들어간 사라다의 맛도 영 입에 맞지 않았다. 내가 감자를 먹는 유일한 방법은 황설탕과 함께 섞어 먹는 것이었다. 그 맛은 이제 오히려 내 입에 과하게 달지만, 그런 저녁은 따듯한 조명의 색과 함께 기억 한켠에 사진처럼 남아있다. 


감자는 여러 요리에서 다양하게 사용된다. 맛이 튀지 않으면서 양념을 잘 흡수하기 때문에 범용성이 좋다. 한국의 조림요리에서는 포삭한 느낌이 메인 재료를 빛나게 만든다. 반면에 감자의 전분을 사용하면 쫄깃 바삭한 식감으로 감자를 주인공으로 만들 수도 있다. 감자를 갈아서 잠시 두면 전분만 가라앉는데, 이 전분은 감자전이나 뇨끼에 사용할 수 있다.


오늘은 감자의 포삭하고 따끈한 느낌을 살리면서도 바삭한 식감을 포인트로 한 빵을 만들어볼까 한다. 감자처럼 생긴 건 투박할지 몰라도 맛은 인상 깊은 빵이 된다. 그리고 여기에 추억의 사라다를 곁들여 한 끼 메뉴로 손색이 없는 샌드위치도 만들어보자.




감자빵은 식빵 반죽을 베이스로 한다. 다른 재료는 그대로 두고 버터와 소금만 약간 더 추가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삶은 감자나 구운 감자를 넣어 빵 자체에도 포삭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 껍질은 감자전을 오마주한 토핑을 올려 바삭하게 마무리한다. 덕분에 오래 두어도 겉바속촉, 외강내유의 모습을 간직하는 매력 100%의 감자빵을 만날 수 있다.

감자는 어떤 종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단맛이 많으면 그대로 좋고, 전분이 많다면 또 그것대로 매력 있다. 감자의 상태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레시피이니, 마음 놓고 흘러가는 대로 흘려보내 보자. 


감자는 총 2개가 필요한데, 하나는 미리 익혀둔다. 역시 삶거나 굽거나 원하는 대로 해도 좋다. 다만 너무 오래 구울 경우 감자 1개로 중량을 못 맞추는 경우가 있으니 이 점만 주의하면 된다. 감자나 고구마 같은 채소는 익기 시작하면 냄새가 확 퍼진다. 집안에 감자 냄새가 가득할 때 젓가락으로 찔러보면 저항 없이 구멍을 내어준다. 그럼 적당히 식혀두자.

감자가 다 익으면 빵 반죽을 시작한다. 수분이 많은 듯해도 반죽하다 보면 이내 한 덩어리로 뭉쳐진다. 감자의 풍미를 살려줄 버터를 듬뿍 넣고 충분히 반죽한다. 여름은 빵이 부풀기에는 좋은 날씨지만, 손반죽으로 빵을 만들기에는 썩 버거운 날씨이다. 등에 땀이 맺힐 때까지 반죽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래도 이제는 요령이 생겨 금방 글루텐을 만들어 낸다. 반죽이 잘 늘어나면서 끊어지지 않는 상태가 되면 식혀둔 감자를 으깨 넣어준다. 

반죽의 마지막 단계에 감자가 곳곳에 잘 퍼지도록 치대고 나면 발효를 할 차례이다. 발효기에 넣기 직전의 순간이 가장 설레는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반죽은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부피는 2배, 3배까지도 커진다. 부풀어가는 반죽의 모습을 보자면 내 마음도 같이 부풀어 오른다. 혹여나 온도가 낮아 부풀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지겹도록 들여다 보기도 한다. 이제는 왜 이렇게 커지는지 그 이유는 너무 잘 알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보드랍게 덩치를 키운 반죽을 보고 있자면 어느샌가 어린아이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발효 끝에 잔뜩 부푼 반죽은 볼에서 잘 떼어내 가스를 정리해준다. 한 덩어리로 둥글게 뭉쳐준 뒤 잠깐 쉴 수 있게 해 준다. 안정이 된 반죽은 다시 둥글게, 하지만 아까보다 예쁘게 만들어 틀에 담는다. 틀이 없다면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좋다. 아니면 식빵 틀에 넣어서 네모나게 만들어도 된다. 

틀 안에 반죽이 잘 들어갔다면 위에는 토핑을 올려준다. 감자 토핑은 색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1차 발효가 끝날 때쯤 만드는 편이 좋다. 강판에 감자를 갈고, 체에 걸러 건더기만 따로 준비한다. 걸러진 액체는 5~10분쯤 되면 2개의 층으로 나누어지는데, 아래의 흰색 층이 감자 전분이다. 위의 액체는 따라버리고 감자전분과 건더기, 그리고 버터를 비롯한 나머지 토핑 재료를 잘 섞으면 끝이다. 


이대로 기름을 두르고 팬에 구우면 맛있는 감자전이 되는데, 오늘은 토핑으로 사용할 참이니 조금만 참자. 토핑은 반죽의 윗면에 얇고 넓게 바른다. 그리고는 2차 발효를 진행한다.

2차 발효 중에는 또 한 번 덩치가 커진다. 신기할 정도로 끊임없이 커지는 반죽을 보고 있자면 마음도 보들보들 부드러워진다. 비록 갈변한 감자가 듬성듬성 갈라져 있는 모습이 썩 보기 좋진 않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맛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군데군데 퍼진 감자 토핑과 함께 오븐에 충분히 구워내면 먹음직스러운 갈색의 윗면으로 탈바꿈한다. 빵 부분의 색이 좀 진해지더라도 감자 토핑이 갈색이 날 때까지 구워주는 것이 좋다. 그럼 시들지 않는 바삭함으로 보답을 해줄 테니 말이다.

모든 식빵은 오븐에서 꺼낸 직후가 가장 맛있는 법이다. 결대로 찢어지는 속살과 먹음직스러운 밀의 냄새, 따뜻한 온도까지 완벽하다. 하지만 여의치 않다면 오히려 잘 식혀 두는 편이 좋다. 잘 식혀서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바로 냉동실에 넣는다. 그리고는 먹을 때마다 가볍게 구워준다. 식빵을 맛있게 먹는 두 번째로 좋은 방법이다.


이번에는 남은 감자로 사라다도 만들어 함께 했다. 황금빛으로 구워낸 감자 듬뿍 식빵 사이에 엄마를 떠오르게 하는 감자 사라다를 끼우고 설탕 대신 달콤한 잼까지 곁들였다.

엄마의 사라다처럼 오이가 들어가 있진 않지만 소금과 마요네즈만으로도 충분히 맛을 낼 수 있다. 감자가 맛있는 계절이라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감자로 가득 채워진 한 끼를 먹으며 감자사라다가 올라간 저녁을 준비하던, 그 뒷모습을 떠올려 본다.


황금빛 조명 아래에서 빛나던 그날의 따뜻함을 기억하며 황금빛으로 구워낸 바삭하고 짭조름한 감자빵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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