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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yell Oct 21. 2022

향기를 기억하는 법 | 국화버터 소금빵

한로 - 서로가 오가는 길목

'통통통통'


집 근처 선착장에서 작은 배를 타고 5분 정도 들어가면 돝섬이라는 작은 무인도를 만날 수 있다. 무인도이기는 하지만 관광 목적으로 꾸며진 섬이라 숙소도, 놀이기구도 있었다. 특히 10월쯤 되면 국화로 섬 안이 가득 차는데, 시화(市花)인 국화를 주인공 삼아 매년 축제를 열기 때문이다. 바닷가 작은 도시의 축제치고는 꽤 큰 규모였기에 매년 국화 축제를 보기 위해 돝섬으로 향했다.


지금은 육지의 항구로 그 개최 장소를 바꾸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국화축제를 위해서는 돝섬, 일종의 바다 위의 산을 탔어야만 했다. 국화축제는 밤늦게까지도 열려있었는데, 바쁜 날이면 해가 떨어진 뒤 찾기도 했다. 어느 해에는 해가 다 진 후 엄마와 함께 작은 불빛을 따라 어두워진 국화길을 걸었다.


그날은 가을밤의 쌀쌀한 바람을 타고 국화의 옅은 풀냄새가 퍼졌다. 작게 풀벌레가 울고, 조명이 어두운 곳에서는 별도 곧잘 보였다. 매년 똑같은 국화 조형물 식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두운 밤, 배를 타고 섬에 들어와 있다는 생각에 가볍게 들떠있었다. 수없이 찾았던 돝섬의 국화축제였지만 그날의 밤은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있다.


국화는 식용으로 먹을 수 있는 대표적인 꽃이다. 특히 색과 향이 좋아 차, 또는 술로 많이 즐긴다. 국화차는 가볍고 밝은 형광의 노란빛을 띠는 반면, 술로 담그면 국화의 모든 부분이 색으로 빠져나온 듯 깊은 가을의 노란색이 된다. 국화로 화전 부쳐 먹던 시절도 있다 하니 모양과 맛까지도 좋은 완벽한 가을꽃인 셈이다.


오늘은 그런 국화의 향과 색을 가져와 그날 밤 돝섬을 산책했던 기억을 담아볼까 한다. 버터에는 국화의 색과 향을 담고, 빵에는 밤하늘과 총총히 박힌 별을 수놓아보자. 시간과 품이 들지언정, 그날의 선선한 국화향 밤을 담기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최근 들어 소금빵이 굉장한 인기이다. 그래서 레시피를 찾아보려 했지만 만드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그 정체성을 알기 힘들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본인만의 레시피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의미 있는 것 아닐까. 다행히도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소금빵을 만들기 위한 고군분투는 헛되지 않았다.



소금빵의 기본 반죽은 크루아상의 반죽을 베이스로 선택했다. 버터와 계란, 설탕이 적절히 들어가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한 빵을 만들어보자. 크루아상처럼 롤인버터가 들어가지만, 사용법은 조금 다르다. 어느 쪽이든 버터향이 가득하다는 점에서 맛이 없을 수 없지만 말이다.

소금빵도 빵이니만큼 글루텐을 만드는데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 글루텐이 부족한 반죽은 마치 꽈배기 반죽인 것처럼 뚝뚝 끊어져버린다. 쫄깃하면서도 길게 찢어지는 빵 속의 결은 반죽하는 사람이 얼마나 열심히 반죽을 치댔느냐에 달려있다.


국화축제의 밤하늘은 오징어 먹물이 대신했다. 약간은 비릿한 듯 고소한 향이 나는 오징어 먹물을 빵 반죽에 더한다. 다시 한번 치대어주면 먹물은 반죽 전반에 색을 입힌다. 아직은 밥공기 정도의 작은 반죽이지만, 여기에 시간을 더하면 보들하고 큰 반죽을 만날 수 있다.

이스트를 평소보다 적게 넣었더니 발효가 더디다. 그만큼 더 많은 시간을 더한다. 아직 터지지 못한 팝콘 알처럼 이스트가 남아있을지 모른다. 제 할 일을 끝내지 못한 이스트가 남아있지 않도록 충분히 기다려준다. 그럼 들어간 효모의 양은 적었을지언정, 반죽의 부피는 적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향도 맛도 한결 더 좋아진다.


발효가 끝난 반죽은 적당한 크기로 나눠 둥글게 만든다. 그리곤 미리 만들어 둔 국화 버터를 작게 나눈다. 국화 꽃잎이 작게 박혀 노란빛을 띠는 버터는 그날의 국화꽃을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혹여나 녹아서 없어지지 않게 작게 나뉜 국화버터는 냉장고에 잠시 넣어둔다.

둥글려 둔 반죽은 올챙이 모양으로 길게 밀어주고, 그 안에 버터 조각을 넣는다. 넓은 면부터 말아 올려주면 익숙한 모양새가 만들어진다. 버터롤인 듯 소금빵인 듯 말린 빵은 다시 한번 발효시켜 부피를 키워준다. 말랑하고 보드라운 빵 결을 위해서 넘어갈 수 없는 과정이다.

2차 발효가 끝나면 국화버터를 녹여 겉면에 발라준다. 그 위에 큰 알갱이의 소금을 올리면 구울 준비가 끝난다. 먹음직스러운 빵의 색깔과 바삭한 식감을 위해 버터를 아끼지 않는 것이 작은 팁이다.


국화버터를 녹이면 꽃잎이 빵 윗면에 얇게 퍼지는데, 마치 밤하늘을 수놓은 별을 보는 듯한 착각도 든다. 반짝이는 소금도 빵껍질 위를 수놓는다. 오븐에서 구워지는 동안 국화 꽃잎도 같이 구워져 버리지만 괜찮다. 완성된 빵에 다시금 버터를 발라주면 국화꽃이 환하게 피어난다.

오징어 먹물과 버터로 색을 낸 밤하늘 같은 빵 위에 국화꽃과 소금으로 그날의 향기와 아름다움을 재현해보았다. 속을 가르면 버터가 녹으면서 길을 내어 놓은 걸 볼 수 있다. 그 작은 오솔길을 따라서도 국화꽃이 피어난다. 꼭 반으로 갈라 그 특별한 광경을 확인하길 바란다.


차가워진 가을, 무인도의 국화꽃길을 거닐던 밤을 기억하며 국화버터 소금빵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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