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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yell Nov 18. 2022

두꺼비집을 기억하는 법 | 미니사과 구겔호프

입동 - 무탈하기 바라는 마음

접어 올린 바짓단 안으로 모래알이 가득하다.


친구들과 열심히 놀다가 들어온 날이면 항상 그랬다. 아직 놀이터 바닥이 모래이던 시절, 모래알의 습격을 피해 갈 아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특히 운동장 한켠의 씨름장에서 방과 후를 보내면 그 정도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분명 그런 용도는 아니었겠지만, 초등학교의 작은 씨름장은 두꺼비집을 짓기에 좋은 장소였다. 고운 모래와 가까운 수돗가가 있었기에 해자(垓字)가 있는 멋진 두꺼비집을 지을 수 있었다.


그때도 손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뭐든 좋아라 했었기에, 교실 다음으로 씨름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도 그곳의 모습이 눈앞에 선한 것을 보면 틀림없다. 수돗가 옆으로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가 서있고, 작은 스탠드 위쪽으로는 꽃사과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이맘때쯤 빨간 열매도 열렸더랬다. 선생님 몰래 따먹은 적도 있었지만 시고 떫은 꽃사과의 맛은 두번 먹고 싶은 맛은 아니었다.


요즘 시장에 미니사과라고 불리는 작은 사과가 쏟아져 나온다. 이 사과를 보고 있자니 그날의 교정이 생각난다. 맛이 더 좋다는 점에서 그날의 꽃사과와는 다를지 모르지만, 작은 사과의 모양새는 충분히 닮았다. 꽃사과 나무 옆으로 모래알을 모아 넓은 집을 지었던 그날의 기억을 담아 디저트를 만들어 보자.




구겔호프는 중간에 기둥이 있는 틀에 구운 왕관모양 케이크를 말한다. 원래는 빵을 굽는 틀이었지만 지금은 주로 케이크 반죽을 담아 굽는다. 구겔호프는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케이크이기도 한데, 작은 크기로 구워서 쌓아 올리면 언뜻 트리를 닮았다는 점이 재미있다. 그래서인지 내 주변에선 어려운 이름 대신 트리 모양 빵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미니사과는 크기만 작을 뿐 사과보다 부족한 점 하나 없다. 빨간색은 오히려 사과보다도 진하고, 탐스러운 꼭지는 누군가 만들어 낸 것 같이 완벽하다. 신맛이 충분해서 큰 사과보다 더 큰 만족감을 주기도 한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깎아 놓은지 30초도 지나지 않아 까맣게 변해버린다는 점이다.

일반 사과에 비해 갈변 속도가 월등히 빠른 탓에, 손질하는 사람의 빠른 손놀림이 필요하다. 팬 위로 설탕과 버터가 달큰한 향을 내면서 녹으면 그 위로 작게 썬 미니사과를 던져넣는다. 그리고는 사과의 색이 변하기 전에 얼른 설탕 버터로 코팅하듯 졸여낸다.

새콤달콤한 향을 내며 졸아드는 사과 필링에 레몬과 계피의 향도 더한다. 5가지 재료의 향이 이렇게나 위화감 없이 어우러질 수 있다니, 놀라는 시간도 잠시뿐이다. 이내 사과가 말랑해질 때, 불에서 내려 필링을 충분히 식혀준다.


다른 볼에서는 버터와 땅콩버터를 부드럽게 풀어 부피를 키워준다. 계란 분리되지 않게 천천히 섞어주면 땅콩버터의 눅진한 향이 코 안을 훅 파고든다. 꾸덕한 식감만큼이나 그 향도 밀도 높게 주변을 에워싼다.

퍼지는 땅콩버터의 향을 즐기며 반죽을 완성하면, 틀에 담아 구울 차례이다. 미니 구겔호프 틀 안으로 식혀둔 사과 필링과 반죽을 겹겹이 쌓아 고르게 담아낸다. 작은 틀에 섬세한 손놀림으로 반죽을 담아내면 괜히 마음이 뿌듯하다. 이토록 구석구석 손길이 닿아야지만 하나의 케이크가 탄생할 수 있다.

황금빛 왕관 모양으로 구워진 구겔호프는 틀에서 꺼내 잘 식힌다. 그리곤 남은 사과 필링을 구멍 가득 채워낸다. 꼭꼭 눌러 넣을수록 케이크는 더욱 더 촉촉해진다. 필링을 눌러 담는 요리사의 마음은 물에 젖은 모래를 꼭꼭 다지는 아이의 그것과도 같다. 모래집 아래에서 손을 빼내기 전, 두꺼비집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담긴 손놀림이 필요하다.

이제는 모래알을 만들어보자. 역시나 버터와 땅콩버터를 크림화하고 밀가루를 자르듯 섞어준다. 그럼 머지않아 부드럽고 고소한 향의 반죽이 완성된다. 반죽은 동그랗게 모양을 잡아 얼려준다. 동글동글 잘라낸 반죽은 오븐 안에서 바삭한 쿠키로 구워진다.

충분히 식은 쿠키는 그냥 먹기에도 너무 맛있지만 조심스럽게 부수어내면 이내 익숙한 모양새가 된다. 바짓단에서 굴러다니는 모래알의 모습이다. 마룻바닥에 모래알이 한 움큼 쏟아지듯, 부엌 바닥으로 쿠키 가루가 떨어진다. 쓸어 담을 것을 생각하면 번거로울지 몰라도, 내가 가져온 모래알에 어이가 없었을 엄마의 표정을 생각하면 되려 웃음이 나기도 한다.

차가운 생크림까지 휘핑하고 나면 이제 모든 준비는 끝이 난다. 남은 미니사과로 마음에 드는 장식을 만들기만 하자. 얇게 슬라이스해 올려도 좋고, 땅콩버터에 디핑해 모양을 내도 좋다. 아니면 남은 사과 필링을 올려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원하는 대로, 다른 재료들과 함께 쌓아 올리기만 하면 된다.

촉촉하게 사과 필링을 담아낸 구겔호프 위에 크림과 사과, 그리고 땅콩 맛 모래알까지 올리면 어린 날의 운동장을 떠오르게 하는 미니케이크가 완성된다.


그 시절 사과나무 옆에서 열과 성을 담아 쌓아 올린 두꺼비집을 떠올리며, 미니사과 구겔호프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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