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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yell Nov 03. 2022

후회를 기억하는 법 | 고구마 펫 케이크

상강 - 하강하는 것들의 때

입안에만 머무르다 결국 내뱉지 못하는 말들이 있다.


떠올리다 보면 끝도 없는, 후회의 순간에 대한 감상은 쉬이 말로 완성되지 못한다. 혀끝을 지나는 나의 말이 다시금 귓가를 스쳐 나에게 들려오면, 그 말에 한번 더 쓰라림을 느끼기 때문일지 모른다. 나의 첫 번째 강아지는 우리 가족에게 후회로 점철된 존재가 되었다. 쉽게 내민 손에 선뜻 해준 그 아이는 우리의 가장 힘든 시절에 곁을 떠났다. 렇게 우리의 마지막 강아지가 되었다.


벌써 20년이 가까워지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감정이 정리되지 못한 채로 남아있다. 미안한 마음만 가득해서 가족 중 누구도 그 아이와의 순간을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지언정 다시 우리 곁에 와준다면 그 누구 부럽지 않게 잘 모셔줄 자신이 있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그 시절을 되짚어 보기 힘들다. 이 부질없는 후회를 곱씹으며 이제야 겨우 오븐 앞에 선다.


어릴 때부터 베이킹에 관심이 있었던 나였다. 그런데 어째 나의 강아지를 위한 베이킹은 한 번이 없었을까. 함께해서 행복한 순간도 많았지만 마지막은 처절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결국 모든 순간이 후회가 되어버린 나의 강아지와의 기억. 속죄하는 마음을 담아 먼 훗날 다시 만날 때, 나의 강아지에게 대접할 디저트를 만들어본다.




고구마는 강아지를 살 찌우는 주범이라고 한다. 아직 고구마를 싫어하는 강아지는 본 적이 없다. 인간도 강아지도 함께 좋아하면서 베이킹에 사용할만한 거의 유일한 재료이다. 그렇기에 펫 디저트 재료로 빠지지 않는다. 오늘은 종을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고구마로 어여쁜 색깔의 케이크를 만들어보자.

고구마는 호박고구마든 밤고구마든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촉촉한 수분감과 진한 색을 위해 호박고구마를 사용하는 걸 추천한다. 혀에 닿았을 때 느껴지는 단맛도 훨씬 직접적이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고구마는 끓는 물에 20분 정도 삶는다. 그동안 두부 크림을 만들어 냉장시켜야 한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펫 디저트인 만큼 재료는 전혀 거창하지가 않다. 먼저 두부를 곱게 갈고, 찬물에 불려둔 젤라틴과 섞어주자. 두부를 약간 덜어서 중탕한 뒤 젤라틴을 넣으면 쉽게 섞인다. 그리고 나머지 두부를 넣어주면 젤라틴이 덩어리 지지 않게 할 수 있다.

젤라틴을 강아지가 먹어도 돼?라고 묻곤 하지만, 돼지 피부에 있는 단백질이 젤라틴이기 때문에 돼지 귀를 간식으로 애용하는 강아지들에겐 이미 친숙한 재료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두부도 젤라틴도 기타 첨가제가 들어있지 않은지는 확인하는 편이 좋다. 간단하게 완성된 두부 크림은 냉장고에서 차갑게 보관하자.


그동안 달콤한 냄새를 풍기며 고구마가 부드럽게 익었다. 포크로 으깨도 좋지만, 식감을 위해 체에 내려서 입자를 곱게 만들었다. 입에 넣기만 해도 사르르 녹아내릴 듯한 식감이다. 노른자도 고운 거품을 만들어 잘 섞어준다. 그럼 샛노란 색의 고구마 반죽이 완성된다.

팬에 유산지를 깔고 사각형으로 넓게 펼친 뒤 오븐에서 구워낸다. 노릇하고 달큰한 냄새를 풍기며 시트가 익어간다. 사실 오븐에 익히지 않아도 맛있기 때문에 타르트 필링으로 사용해도 된다. 다만 생노른자는 상하기 쉬워서 바로 먹을 수 있는 경우에만 추천하는 방법이다.

완성된 고구마 시트는 충분히 식힌 뒤 작은 사각형으로 잘라낸다. 나의 강아지에게 한입사이즈면 된다. 그리고 차갑게 굳은 두부 크림을 한번 저어준 뒤 예쁜 깍지를 사용해 샌딩한다. 3단으로 쌓으니 적당한 크기의 육면체가 되었다. 역시 나의 강아지, 혹은 나의 한입사이즈에 맞춰 쌓아 내면 된다.

재료 4가지로 뚝딱 만들어 낸 고구마 케이크 보기만 해도 눈이 즐겁다. 노란색과 흰색이 반복되며 맛깔스러운 모양새를 연출한다. 맛은 자칫 사람에게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 흔한 소금이나 설탕, 우유, 버터마저도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워낸 탓에 계란의 비린내가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럼 어떨까. 나의 강아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냄새가 될 텐데 말이다.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디저트. 무지개 너머에서 나를 반겨줄 것이라는 동심 어린 소망을 가득 담아냈다.


부디 애정을 전해줄 기회가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깊은 후회를 에너지 삼아 쌓아 올린 고구마 펫 케이크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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