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압도적 지배력
세계 경제와 국제정치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자원은 석유와 천연가스입니다. 그러나 21세기의 새로운 자원 지정학에서 주인공은 ‘희토류(Rare Earth Elements)’라 불리는 17가지 특수 금속 원소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낯설지만, 이 자원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 전기차, 풍력발전기, 미사일 유도장치, 전투기 레이더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첨단 산업과 군사 장비에 들어갑니다. 희토류 없이는 첨단 기술도, 현대 군사력도 작동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희토류는 ‘보이지 않는 무기’라고 불립니다.
희토류는 사실 지구상에 매우 드문 자원은 아닙니다. 문제는 채굴과 정제가 어렵고 환경 오염이 심각하다는 점입니다. 높은 방사능을 포함한 폐기물이 발생하고, 정제에는 대규모 화학 약품이 필요합니다. 많은 국가들이 환경 규제와 비용 문제 때문에 희토류 개발에 소극적이었고, 그 결과 중국이 이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희토류 정제의 80% 이상이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채굴과 공급망 전반에서도 중국의 지배력이 절대적입니다.
중국이 희토류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는 사실이 전 세계에 각인된 것은 2010년이었습니다. 당시 중국은 일본과 영토 분쟁을 벌이던 중, 희토류 수출을 갑작스럽게 중단했습니다. 일본의 전자산업과 방위산업은 즉각 충격을 받았고, 전 세계는 희토류가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정치적 무기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가 개입하여 중국의 조치가 자유무역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정했지만, 중국은 이미 희토류를 무기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보여주었습니다.
2020년대 들어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중국은 다시 한 번 전략 자원 통제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2023년 중국은 갈륨(Gallium)과 저마늄(Germanium) 같은 희소 금속에 대한 수출 규제를 도입했습니다. 갈륨은 반도체와 레이저, 저마늄은 광통신과 적외선 센서에 필수적입니다. 두 자원 모두 첨단 군사·산업 장비에서 빠질 수 없기 때문에, 이는 서방의 반도체 공급망을 정조준한 조치였습니다. 희토류 무기화의 현대판이 다시 펼쳐진 셈입니다.
이에 대응해 미국과 동맹국들은 희토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국방부 자금을 직접 투입해 자국 내 유일한 희토류 광산 기업인 MP 머티리얼스(MP Materials)를 지원하고, 장기 구매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호주, 캐나다, 베트남 등도 새로운 희토류 공급처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중요 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을 통해 역내에서 채굴과 정제를 늘리고, 제3국과의 자원 파트너십을 확대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절대적 점유율을 단기간에 낮추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국 역시 희토류 공급망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한국은 세계적인 배터리 제조 강국이지만, 핵심 원자재와 희토류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합니다. 전기차, 풍력발전, 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서 희토류는 없어서는 안 될 자원입니다. 따라서 한국 정부도 해외 자원 개발, 공급망 다변화, 재활용 기술 연구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중국 의존을 단숨에 끊는 것은 불가능하며, 전략적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당장의 과제입니다.
희토류는 단순히 경제적 가치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군사력과 직결됩니다. 전투기 엔진, 잠수함 추진체계, 미사일 유도 장치 등 현대 군사 장비는 희토류 없이는 작동할 수 없습니다. 중국이 희토류를 무기화할 수 있다는 사실은 곧 미국과 동맹국의 군사력에도 직접적 위협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희토류는 ‘첨단 기술의 원유’이자 동시에 ‘군사 안보의 필수 자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희토류 경쟁이 단순한 공급망 다변화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자원 채굴과 정제에는 막대한 환경 비용이 따르기 때문에, 각국이 자급을 확대하면 글로벌 환경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희토류를 둘러싼 경쟁이 개발도상국의 자원 민족주의를 자극할 가능성도 큽니다. 자원을 무기화하는 방식이 반복되면, 국제 질서는 더 불안정해지고 갈등은 심화될 것입니다.
희토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기입니다. 한 나라가 이를 통제하면 첨단 산업과 군사력의 심장이 멈출 수 있습니다. 중국은 이를 통해 국제정치에서 강력한 레버리지를 확보했고, 미국과 동맹국들은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공급망 재편에 나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희토류의 지정학은 단기간에 풀 수 없는 구조적 문제이며, 앞으로 수십 년간 국제정치의 핵심 변수가 될 것입니다.
희토류 전쟁은 단순히 자원 확보 경쟁이 아니라, 기술 패권과 군사 안보를 둘러싼 장기적 싸움입니다. 보이지 않는 작은 금속 조각이지만, 그것이 움직이는 세계는 거대합니다. 20세기 석유가 국제 질서를 지배했다면, 21세기에는 희토류가 보이지 않는 권력의 무기로 세계를 흔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