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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밤이 Dec 19. 2020

그는 되고 그녀는 안 되는 걸까

 여자라서, 엄마라서 그래야 하는 것들

"믹 재거는 재밌는 사람이에요, 4명의 다른 여자에게서 7명의 다른 아이들을 만들었죠. 참 인생 열심히 산 사람이에요. 물론 록스타 믹 재거는 그 애들을 키우지 않았어요. 엄마도 아니니까요, 아빠들은 자기 맘대로 할 수 있어요. 원하는 사람들과 맘대로 잘 수 있고, 위험한 짓도 하고 마약도 하고 떠나버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상처 받겠지만 그런 경험에서 명곡이 나오는데 누가 신경 쓰겠어요. 그래도 어쨌든 애들은 아빠를 존경할 거예요. 아빠니까 사랑해 줄 거고요. 하지만 엄마라면, 공연이 있어도 학예회 한번 빠지면 안 되고, 결혼식도 가야 하고 이빨요정 노릇도 해줘야 해요. 그걸 빼먹으면 인간도 아니에요."  

- 영화 <어바웃 리키> 중


 락스타를 꿈꾸며 세 아이와 남편을 떠난 후 바에서 공연을 하며 살고 있는 리키(메릴 스트립)는 딸의 우울증 회복을 위해 몇 년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결혼을 리키 몰래 하고 싶은 첫째 아들과 엄마에 대해 무조건 반기를 드는 둘째 아들까지, 돌아간 집에서 그녀를 반기는 사람은 없다. 잠시 떠났던 새엄마가 돌아오고 나서, 리키는 다시 작은 바로 돌아가 공연 중 위와 같이 말을 한다.


 영화채널에서 우연히 이 영화가 시작하길래 심심해서 보다가 후반부를 못 보게 돼서 넷플릭스까지 가입해서 본 영화였다. 엄마와 아내의 역할을 포기하고 자신의 꿈인 록가수를 하기 위해 떠난 리키가 딸의 파경 소식을 듣고 새엄마 가자리를 비운 사이 딸을 위로해주러 돌아온 집에 잠시 머물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세 자녀는 돌아온 리키를 반기지 않는다. 자녀들은 그녀를 약혼식에 초대조차 하지 않았고, 리키의 옷차림과 행동에 불편해하며 결혼식에 오기를 꺼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녀 입장에서 성장과정에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기에 리키의 자녀들이 엄마의 부재로 인해 겪은 마음의 상처를 생각했을 때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부부가 이혼한 상황이 나오는 대부분의 영화에서 아빠는 크리스마스 때나 생일날 선물을 들고 와서 잠시 오붓한 시간을 보내면 아빠 역할을 제법 하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걸 봤을 때, 리키에게 들이대는 잣대는 남자들보다 가혹하다. 떠난 리키에게 매년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온 건 자녀들이 아니라 친엄마와의 관계가 끊기지 않기 위한 전 남편의 새로운 부인의 배려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리키는 점점 첫째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기를 두려워한다.


  리키가 떠나게 된 경위가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남편과 간간히 하는 대화를 유추해 봤을 때, 리키가 록가수라는 꿈과 가정생활을 함께 해보고자 했지만 남편은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자 가정에 충실하며 자녀들을 잘 돌볼 수 있는 아내를 원했다. 인간이 행복할 권리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함에 따라 리키는 살아가는 순간순간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행복,  자녀를 낳는 행복을 추구하며 가정을 이뤘고 거기에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행복을 놓칠 수 없었기에 선택을 강요했던 남편을 떠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이혼 전 리키가 남편을 일중독이라고 일컫는 걸 봤을 때, 리키의 남편은 자신의 일에 집중하기 위해 가정적인 아내를 원했을 것이다. 리키의 경우, 월남전에서 젊은 나이로 사망한 친오빠의 사진을 머리맡에 두며 인사를 건네는 장면으로 추측하건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우선시 될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삶의 허망함을 겪고 나면 삶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기도 하지만 타인을 위한 삶보다 내 마음이 원하는 삶 중심으로 구성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리키가 자녀를 키우던 때의 시대적 상황이 현재보다 더욱 보수적일 거라 생각했을 때, 주변에서는 더욱 가정에 충실함을 강요했을 것이므로 가정을 돌보는 것에 있어 주위의 배려와 도움을 받으며 꿈을 이루기 힘들었을 것이다.


 리키의 남편과 재혼한 여성처럼 남을 도와주고 양육하는 과정에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가정에 집중하는 그 삶 자체가 꿈이었을 수 있다. 이 사람이 자신의 꿈을 이루고 인정받는 것처럼 리키가 록가수라는 꿈을 향해 달려갈 수도 있다는 점도 인간으로서 어느 정도 인정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양육의 의무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자식 입장에서 원망스러울 수 있지만 성별을 바꿔 생각했을 때, 꿈이 두 개일 수 없는 상황 자체와, 이로 인해 자녀에게 더욱 외면받는 상황이 동일하게 발생했을지는 다소 의문이 든다. 영화는 다행히 엄마로서 요구되는 정형화된 모습이 아닌 리키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보이며 딸을 위로하고, 아들의 결혼식을 축하해주며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사회화가 적절하게 이루어진 사람이라면 우리는 살면서 자신에게 다양한 역할을 부여한다. 딸이면서도 학생이고, 학생이면서도 근로자이고, 친구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애인이기도 하다. 어떤 취미 모임의 장일 수도 있고, 돈을 벌고 있는 회사의 중역일 수도 있다. 한정된 에너지 안에서 이런 다양한 역할들을 수행하는데 완벽할 수 없기에 우리 주위의 사람들과 서로 배려하거나 도와주며 역할을 수행해 나간다. 인간으로서 결핍될 수밖에 없는 이런 구조와 역할이 다양해진 현대 사회에서 아이를 낳은 여성에게 여성 자신의 꿈보다 양육자로서의 역할에 대한 시선이 무겁게 가해지는 것은 안타깝다.


 왜 포기하는 쪽은 '엄마'여야 하는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엄마이기 때문에 감당해야 할 것들은 더 표면화되는지. 꿈이 두 개면 안되냐고, 나는 엄마가 아니라 리키로 태어났다고 반문하는 리키의 말은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와 주 양육자로서의 요구 사이에서 슈퍼우먼이 되고자 했던 여성들을 생각했을 때 우리에게 마음의 울림을 준다. 엄마가 꿈일 수도 있지만, 아이를 낳기로 한 여성들이 모두 '엄마만의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엄마가 되는 축복을 얻기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함을 감수하지만,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엄마가 되기 전 '리키'로 태어났기에 양육자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묻기 전 한 번쯤 '당신의 리키'는 괜찮은지 물어봐주며 '당신의 리키'를 보여줄 수 있도록 따듯한 시선을 보내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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