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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나그네 윤순학 Oct 17. 2021

이제 MZ에게 양보해


MZ가 골목을 바꾸다     


홍합 거리(홍대+합정동), 강남역 골목, 신사동 가로수길, 신촌~이대거리, 경리단. 망리단길 하면 모두 젊은 신세대, MZ세대의 거리로 통한다. 나도 이 거리, 골목들을 주름잡아 다니던 때가 있었지만. 그런데 요즘 신세대들은 예전의 우리와 조금 다른 면이 있다.     

 

2030 MZ세대를 중심으로 ‘뉴트로(New+Retro)가 몇 년 전부터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부모세대나 겪어봤을 과거의 감성을 즐기려는 2030 세대와 옛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고 싶어 하는 중장년층 사이에서도 뉴트로 소비가 확산되고 있는데 요즘엔 남녀노소를 안 가리고 노포(오래된 가게, 혹은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가게) 순례가 대유행이다. 전국의 유명 맛집, 먹거리를 휩쓸고 다닌 인기 블로거와 유튜버들도 골목, 노포 탐방에 나선 지 오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노포 하면 허름한 옛 골목에 촌스러운 구닥다리 외관, 쾌쾌한 풍취, 누가 봐도 노땅(?)과 아재들이 즐겨 찾는 옛 가게들이었지만 언젠가부터 파릇파릇, 앳된 얼굴의 신세대들이 끼리끼리, 삼삼오오 이 가게들을 앞다투어 찾는 현상이 발생했다.          


사실 노포(老鋪)란 말은 일본식 한자어다. 도쿄, 교토에는 유난히 100년, 200년 된 가게가 많은데 오래된 가게를 일컬어 '시니세(老舗)'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유래되었다. 몇 년 전 서울시가 순우리말 ’오래가게 ‘ 명칭을 개발, 보급하려 애썼지만 아직 널리 확산되지 않고 있다.     

      

신세대 식객들에 이어 방송 프로그램도 ‘노포’ 열풍에 대거 동참했다. 허영만의 백반 기행, 다큐멘터리 3일, 한국기행, 한국인의 밥상 등 주요 음식기행 프로그램 속에 이제 ‘노포’는 단골 소재다.     


수많은 노포 식당들이 공통적으로 쓰는 문구가 있다.  'Since 19OO'!   

       

가게 간판에 대문짝 만하게 큰 글씨를 써 붙이고, 전국의 청춘 식객들을 맞이한다. 중장년층 원조 노포 단골손님들과 섞여 신기한 듯 오래된 옛 정취와 분위기를 느끼고 기다리던 음식이 나오자마자 스마트폰 카메라 인증샷! 신세대 식객들은 노포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에 놀라고, 가성비 높은 푸짐한 양에 반하며 세월이 녹아든 노포 식당 음식에 감동한다.     


을지로 3~4가 주변은 노포의 천국이다. 전통적으로 공구상가, 인쇄골목, 철공소 골목 등이 자리 잡고 있는데 신세대들은 여기에 또 이름 하나를 더 붙였다. 힙지로! (힙하다+을지로)      


신세대 감성과 전통적인 감상의 을지로가 어울려 새로운 문화 탄생을 의미한다. 실제 골목 곳곳에 신세대 감각의 카페, 맛집, 액세서리 가게들이 하나둘씩 둥지를 틀었다. 신세대의 ‘감성 알박기’라고나 할까? 옆집, 앞집에 오랜 세월 터를 잡고 있던 을지로 붙박이 아재들도 이들을 반기고 함께 어울려 가며 골목을 환하게 밝힌다.          


을지로에는 수십 년 이어온 가게들이 즐비하다. 최근 오랜만에 들린 ‘노가리 골목’은 조금 이른 저녁 시각인데도 신세대 손님들이 거의 절반 이상 점령하다시피 했다. 예전 같으면 아재, 아저씨들의 독무대인데 최근의 MZ세대의 노포 사랑, ‘뉴트로’ 열풍을 느낄 수 있었다.       

  

을지로에는 세월을 대표하는 노포들이 많다. 노가리 골목의 42년 역사의 간판주자 ‘OB베어’는 생맥주 한잔에 1,000원짜리 안주 노가리로 유명한 가게다. 아쉽게도 현재는 건물주에 의해 강제로 쫓겨날 위기에 놓여 많은 단골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서울 3대 평양냉면집 ‘을지면옥’,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단골로 찾았다는 대곱창구이집 ‘양미옥’이외에도 5060 세대의 별다방 ’을지다방’, 돼지갈비 맛집 ‘안성집’, 닭곰탕으로 유명한 ‘황평집’, 대창순대의 ‘산수갑산’등 수십 년을 한결같이 이어온 가게들도 요즘은 SNS로 소통하는 신세대들의 발길이 잦다. 세대를 넘어 추억을 공유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인다.       


얼마 안 있으면 이제 을지로는 MZ세대가 점령할 태세다.    

   




MZ와 골목을 공유하다     


서울 종로는 최고의 핫플레이스 지역으로 역사적으로 서울시민의 스토리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코로나 이전 매일 30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지이자 상업 중심지이다. 특히 종로 3가는 신, 구 세대 간의 만남이 교차하며 소통과 공유가 기대되는 곳이다. 오랜 전통의 거리인 만큼 더욱 유별나다고 할까. 종로 3가는 MZ세대와 4050 꽃중년, 6070 실버세대가 어우러지며 함께 모여들고 스치듯 지나가며 마주하기도 한다. 이 무슨 얘기인가?       


이 일대에는 주로 낮에는 노년층이, 오후에는 중년층이, 저녁과 주말에는 신세대들이 함께 거리를 메운다. 인근에 대형 전통시장, 쇼핑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차역, 버스터미널이 있는 교통 중심지도 아닌데, 서울시내에서 이렇듯 전 연령층이 고루 찾고 즐기는 곳이 또 있을까?   


지난 80~90년대 낙원상가 일대에는 각종 악기상들이 모여 있어 POP 음악과 기타, 보컬밴드로 상징되는 청춘의 거리, 음악과 낭만이 흐르는 감성의 명소였다. 이 시기를 거친 이들이 바로 7080 학번, 나이로 치면 오늘날 5060 세대가 주역들이다.      


2000년대 이후 젊은 세대가 신흥 상업지역인 압구정, 강남, 홍대, 성수동 등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종로 3가는 어르신 세대가 그 빈자리를 꿰차고 들어갔다. 나이 지긋한 노년세대들이 탑골공원과 종묘, 종로 3가 일대 곳곳에 그들만의 아지트를 구축하고 사랑방 역할을 하는 지역으로 자리 잡아왔다.     

   

낙원상가에서 약 1.2km에 이르는 락희(樂喜) 거리, 일명 송해 길이 ‘노인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일본 도쿄의 ‘스가모 거리’를 본떠 조성되었다. 국민스타. 송해의 이름을 따서 송해길이라고도 한다. 근데 최근 들어 조금 낯선 이들이 동네에 몰려오기 시작했다.     

    

락희 거리의 맞은편에 있던 그저 평범한 작은 옛 한옥마을. 익선동이 갑자기 뜨면서부터 시작된 현상이다. 평일 오후, 주말에 종로 3가 전철역 4~6번 출구는 다양한 연령층의 행인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오간다. 익선동은 서울의 마지막 한옥 보존지구로 지정된 100여 채 규모의 작은 한옥마을을 지칭한다.   

       

매주 주말 오후 익선동 풍광. 좁디좁은 익선동 골목에 청춘 남녀들이 줄지어 몰려든다. 성인 2명이 나란히 걷기도 힘든 좁은 길이 오가는 행인에 미어터질 지경이다. 이곳에는 이미 SNS로 명성이 자자한 카페와 독특한 콘셉트와 메뉴로 유명한 맛집, 재치 있는 아이디어 공예품 점등이 입점해 있다. 익선동이야말로 낡은 한옥마을이 MZ에 의한, MZ를 위한 골목으로 탄생한 곳이다.    

   

익선동 바로 옆에는 돈의동 갈매기 골목이 또 먹자골목으로 유명한데, 실버세대의 락희 거리 어르신들과 꽃중년 세대, 익선동 골목의 신세대들이 우연히 한 구역 내 식당에서 한바탕 고기 잔치를 할 수 있다. 물론 합석까지는 아니더라도 맛난 고기 앞에서 굳이 세대 간 구분할 필요는 없다.     

 

이곳뿐인가? 전국에 많은 지역, 동네, 골목이 창의와 아이디어를 장착한 젊은 MZ들이 접수해가고 있다.      

문래동 철공소 지역을 예술촌으로 승화시킨 이들도, 갈수록 쇠퇴하는 용산 인쇄골목을 독특한 청년 음식거리로 만든 열정도도 MZ세대가 이루어 낸 결과물들이다.   

   

이제, 골목을 MZ에게 양보해 ~           



■  황홀한 골목을 위.하.여 -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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