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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머리 Aug 13. 2021

위기 탈출 넘버 원

카테고리   우리가 사는 세상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한 후 소파에 앉아 TV를 켜었다.

어린 아들은 TV에 관심이 없고 내 핸드폰에서 U tube 검색을 한 후 그 아이들 또래들이 좋아하는 게임 영상을 보았다.

스포츠를 볼까 영화를 볼까 두 채널의 선택 기로에서 망설이고 있는데 설거지를 끝낸 아내가 황급히 달려오더니 내가 들고 있는 리모컨을 냉큼 빼앗았다.

어이없어서 무슨 짓이냐고 큰소리치고 싶었지만 차려준 밥이나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주재에 가만히 있으라고 두 눈 부릅뜨고 악쓰고 큰소리치면 어린 아들 앞에서 이 집의 가장으로써 체면이 말이 아닐 것 같아 아무 소리 하지 않고 그 자리를 피해 소파 끝으로 조용히 이동하여 앉았다. 그러자 아내는 방금까지 내가 앉았던 자리를 마치 자기 자리인양 자연스레 털썩 앉았다. 맘에 드는 프로가 없어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보고 싶은 프로를 찾으려 그려는 건지 좀체 채널을 고정하지 못하고 아내는 여기저기 리모컨만 계속 눌려 댔다.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나 영화 채널이 화면에서 스쳐 지나갈 때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분이 나빴지만 고작 할 수 있는 말은 여기저기 리모컨을 눌려 봐야 다 그게 그거고 정신만 사나우니 그만 눌려대고 채널 하나로 고정해서 보라고 할 뿐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내 말을 무시하며 듣는 둥 마는 둥 개의치 않고 자기가 보고 싶은 프로가 나올 때까지 눌러대다 씨월드라는 프로가 나오자 아내는 바로 보고 싶은 프로를 찾았다는 듯 바로 고정시켰다.

유명 탈랜트와 그 며느리들이 서로 서운한 점 이라든가 바라본 관점에 관해 이것저것 토론하는 듯하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이해 못할 행동에 관해 말할 때면 나의 어머니가 꼭 자기에게 그렇게 대한적이 있었다는 듯 거침없이 맞장구를 치며 화를 냈고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행실에 관해 불평할 때에는 노골적으로 욕만 안 했지 며느리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며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해댔다. 물론 옆에서 듣고 있는 나의 기분이 적당히 나빠질 정도로만 영리하게 수위를 조절했다.

시청하다 보니 이 프로도 재미있어 나름 빠져들며 출연자들 말에 나와 아내는 웃기도 하고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공감하기도 하면서 보는데 사회자가 남자 출연자들에게 느닷없이 황당한 질문을 하였다.

어머니와 아내가 물에 빠지면 당신은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인가 라는 정말 멍청한 질문이었다.

세상에 질문할게 아무리 없기로 서니 저런 질문을 하는가 하는 생각도 생각이지만 그 프로를 보고 있을 수많은 가정의 화목이 그 질문 하나로 깨져 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무엇 보다도 어처구니없는 것은 천하의 등신 같은 남자 출연자들이 정답이라며 자기는 어머니보다 와이프를 먼저 구한다고 말을 하는데 출연하는 며느리들은 웃고 시어머니들은 떨 떠름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아내가 무섭기로서니 천륜을 무시한 남자 출연자들의 대답에 화가 치밀어 욕이라도 한 사발 해주고 싶었지만 결코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아내도 직접적인 질문을 하지 않고 너도 한번 대답을 해보라며 나에게 머리를 돌려 눈길을 주는데 망설이거나 더듬거릴 필요 없이 아내의 얼굴을 보고 당당하게 말했다.

“나 같으면 당연히 어머니부터 구하고 아내는 나중에 구할 것 같네”

핸드폰을 보던 어린 아들이 이런 나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사태의 심각성을 예감이나 한 듯 짐짓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모습을 보았지만 나는 그 대답을 하자마자 아내의 어떤 반응이 나오기도 전에 빛의 속도로 근심 어린 얼굴의 아들에게 TV 사회자와 똑같은 질문을 했다.

“엄마”

어린 아들은 영리하다. 참 영리하다. 상황 판단 및 순발력이 내 아들보다 뛰어난 아이는 없을 것 같다. 이 어린 아들도 언젠가 가정의 가장이 될 것이고 그 가장 노릇을 정말 잘할 것이라고 짧고 간결한 아이의 대답을 듣는 순간 확신하게 되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고 임기응변 구사일생은 이걸 두고 하는 소리이고 일석삼조라 나는 구차하게 아내의 눈치를 보며 아내를 먼저 구하겠다고 말을 안 해서 가장으로써의 자존심을 지켜냈고 어린 아들에겐 부모 자식 간의 절대 깰 수 없는 천륜을 깨우치게 했으며 아내 역시 있지도 않은 미래의 자기 와이프보다 엄마를 먼저 구하겠다는 아들의 대답에 기분이 좋아진 듯하다.

여우 같은 아내가 나에게 보냈던 분노 가득 찬 얼굴색이 변하더니 어린 아들을 향해선 흐뭇한 얼굴로 아들의 엉덩이를 토닥 거렸다.

위기는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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