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머리 Dec 05. 2022

의사 친구의 진실한 조언

카테고리  남자


결혼 후 아이가 생겨 담배를 끊은 지 꽤 오래되었다.

물론 담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안 좋지만 아내가 싫어하는 데다  가끔

나오는 마른기침과 가래가 지저분했고 추했기에 끊기로 한 것이었다.

담배를 시작한 것은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고등학교 시절 도대체 저게 무슨 맛으로 피우나 하는 호기심과 주변 친구들이 한 두 명 피우는 지라 안 피우면 공부나 하는 샛님 취급을 받을 것 같은 방어적 차원에 남자라면 피워야 한다는 자기 합리화로 시작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당시 교복 세대들에게는 TV에서 주말의 명화 때 가끔 보여주는 미국 서부 영화에서 주인공이 말보로 담배를 피우는 야성적인 모습이 꽤나 멋있게 보인 게 이유일 수도 있겠다. 여하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간 후 또 군대를 가고 제대 후 직장에 들어가서 일을 하는 동안 담배는 늘 나와 함께 했다.

하나 추가된 게 있다면 술이었는데 기억 하기에 술 역시 담배와 그 역사가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다. 대학교에 갓 들어간 신입생 때부터 마셨으니 어찌 보면 술과 담배는 나와 함께 동고동락한 셈이다.

하지만 그런 오래된 담배와 술을 결혼 후 아내와 아이를 위하고 가정을 위해 끊어야 했다.

술과 담배는 몸에 해롭고 폐암이나 간암으로 일찍 죽기 때문에 가급적 한시라도 빨리 끊거나 줄여야 한다는 각종 미디어의 유명 의사들 권고도 큰 이유 중 하나다.

매사 다정한 남편이고 훌륭한 가장으로 살기 위해 출근하면 열심히 일을 했고 퇴근하면 막바로 집에 와서 아내를 돕고 함께 아이도 돌보았다.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를 보거나 그 아이의 재롱을 보는 것도 삶의 큰 낙이라는 것을 느낄만했고 그 가정을 위해 내가 희생하고 힘쓰는 것도 행복이었다.

김서방은 참 열심히 살고 부지런하다며 장인 장모까지 나를 보고 칭찬을 하시고 심지어 당신 딸에게 까지 좋은 신랑을 얻어서 복 받았다고 기분 좋은 립서비스도 해주시는데  그 소리를 듣는 아내는 이게 다 신랑 본인을 위한 길이고 가족을 위한 길이며 다른 남편들도 다들 그렇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남자가 집에서 그렇게 안 하면 여자와  자식들에게 무능력한 남편과 아빠로 찍혀 스스로 처량한 신세가 될 거라고 나를 보며 큰소리를 치는데 아내의 이런 경고가 거슬리지만 그건 마음속 일뿐 결코 내색할 수 없이 받아 들어야 한다는 게 슬펐다.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한 안식이나 만족이 없는 단지 좋은 아빠와 좋은 남편으로 살아갈수록 가끔 가슴이 답답하고 무언가 불안증 같은 심적인 고통이 서서히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업무적 압박이나 여러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심적인 스트레스 그리고 무언가 탈출하고픈 욕망이 목구멍까지 타오르는데 좀체 어디서 그걸 해소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아내와 사이가 좋아도 아주 세세한 것으로 다투거나 그 다툼이 커지기도 하고 내가 하는 일 역시 한 두 번 실수로 직장에서 난처한 입장에 설 때도 있었고 부모님과 아내와의 관계나 처가댁과 나와의 관계에서도 트러블이 생기기도 했다. 물론 다른 이가 보면 말도 안 되는 여러 잡다한 일들도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참거나 양보를 했고 집에선  아이를 키우는 아내에겐 매사 웃고 자상한 남편이 되도록 노력을 해야만 했으며 어느 누구에게도 나의 말 못 할 고민이나 스트레스에 관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스스로 그걸 해소하기 위해 바둑을 둔다든가 낚시광인 친구를 따라 며칠 바닷가에서 머물러 보기도 했지만 결코 해소되지 않았다.

어느 날 회사 업무를 보고 저녁 9시가 좀 지나 퇴근 후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가슴에 심한 통증이 오고  답답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황급히 핸드폰을 들고 의사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자기 집 근처로 와서 전화하면 바로 나가겠노라고 반갑게 전화를 받으며 불광동 어느 4거리까지 오라고 하였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도중 가슴이 답답해 창문을 열고 맞바람을 맞으니 조금 시원해지고 답답함이 풀리는데 이런 나를 힐끗 보던 60대 초반의 기사님이 짐짓 걱정이나 해주는 듯 스명수 한 병을 마시라고 주었는데 그가 보기엔 내가 무슨 음식을 급히 먹고 체한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여하튼 손님을 생각해주시는 서비스 정신이 고마워서 잔돈은 받지 않겠다고 하니 너무 고마워하였다.

불광동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친구를 약속 장소에서 만났다.

그 친구는 나름 그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동네 주점으로 오랜만에 나를 만나 기쁘다며 데려갔다.

이런저런 그동안 사는 이야기나 서로의 안부에 대해 간단한 대화를 한 후 나의 답답한 사정을 말하니 이 친구가 나에게 껄껄껄 웃으며 조언하기를

너는 너 스스로 너의 스트레스를 너의 준보다 타인의 기준에 맞추어 너의 몸속에 가두고 배출하지 못하니 답답하고 호흡도 거칠어진 것이라 지금 당장 그걸 풀지 않으면 병이 생겨 화를 당할 수 있고 그 걸 풀어줄 방법은 담배와 술밖에 없다고 어이없는 말을 하였다.

술이란 게 몸속의 세균을 죽이고 더러워진 몸을 정화시켜주며 정신을 맑게 해주기도 하며 취하면 무념무상의 천국도 가끔 데려다주는 것이고 담배 한 개비 피운 후 내뱉은 연기 속엔 내 몸속 모든 걱정 근심 스트레스가 들어 있어서 이 두 가지 합보다 더 좋은 궁합이 있으면 말해보라며 내가 따라준 소주 한 잔을 단숨에 훌쩍 마시며 큰소리쳤다.

가만 보니 이 친구도 보기에는 의사라 부러움 없고 걱정 근심이 없는 듯 보이지만 또 그것만은 아닌 것 같은 게 나와의 만남으로 나름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듯하다.

아무튼.

인간의 간은 워낙 훌륭해서 소주 한 병 정도의 알코올은 문제없이 하루 저녁에 해독할 수 있고 폐 역시 담배 한 갑 정도의 니코틴은 쉽게 중화시켜 버리는데 미친 듯이 먹거나 피우지 않으면 괜찮다고 자료 없는 술 취한 뇌피셜로 마치 사실인양 나에게 큰소리를 치는데 불판의 주꾸미를 볶아주는 아르바이트 여 직원이 철없는 중년 아저씨들의 어이없는 대화를 듣고 해맑에 웃었다.

이건 자기가 의사로서 자신 있게 나에게 조언하는 것이고 하루빨리 술과 담배를 시작해서 다시 예전의 건강을 되찾으라고 내 소주잔을 가득 채워주며 나에게 능청스레 말했다.

서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도중에 각자의 아내에게서 늦은 시간에 어디서 뭐를 하고 있냐며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는 앙칼진 전화가 계속 왔지만 그 목소리는 한병 두 병 마시는 소주잔과 매운 주꾸미 안주에 섞여 사라져 버렸다.

이전 05화 정신병(精神病)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