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3년 만에 낳은 첫 딸이 올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서울의 명문 여대에 합격하였다.
이런 사실이 얼마나 대견하고 자랑스러운지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딸 자랑에 팔불출이 되는 것을 결코 마다하지 않았다. 아이가 그토록 힘들게 노력해서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하자 어머니가 그동안 노인 일자리를 통해서 번 돈이라며 200만 원 정도를 기꺼이 손녀딸 입학금에 보태라고 아내에게 주셨고 이걸 더해서 그동안 아내가 모아둔 돈으로 아이의 입학금을 내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바로 아래 17살짜리 둘째 딸도 언니가 좋은 대학교에 합격한 사실이 큰 동기부여가 되었는지 열심히 공부하는데 제 딴에는 5프로가 부족한 듯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가 필요하다며 지원해 달라고 아내에게 요구하였다. 자식이 공부하겠다고 이런저런 필요한 요구를 하는 것은 아빠로서 기분이 좋은 일이라 기꺼이 도움을 주겠다며 막내아들이 밥을 먹지 않으니 네가 막내에게 밥을 먹여주면 원하는 것을 해주겠다는 조건을 달자 둘째 딸이 와이프 얼굴을 보며 알겠다고 하는데 오히려 이런 조건을 단 아빠를 한심한 듯 쳐다보았다. 물론 와이프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와이프는 입시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될 것 같다며 지금껏 첫째에게 쏟아부었던 정성과 관심을 둘째에게 향했다. 첫째는 대학 생활이 즐거운지 거의 매일 밤늦게 돌아왔고 그런 딸이 걱정스럽거니와 여자가 밤늦게 쏘다닌 것이 맘에 안 들어 심하게 나무라면 아내는 아이가 재미있게 대학생활을 즐길 수 있게 모른 체 하라고 근심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부탁하였다. 아내 말인즉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고등학교 3년 동안 하루 5시간 정도 잠을 자고 대입 준비를 하였던 아이에게 또 다른 올가미를 주어서 구속하거나 틀에 가둘 수 없다는 것이었고 나 역시 그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아내 말을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큰딸은 밤늦게까지 무얼 하고 오는지 올 때마다 피곤에 찌든 얼굴로 점장이란 놈이 자기를 괴롭힌다고 불평하며 피곤해서 공부나 일이 제대로 안된다고 하는데 아내는 그런 아이의 등을 토닥일 뿐이었다. 큰 딸은 내가 자기를 심하게 나무랐던 게 기분이 나쁜지 집에 들어와도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고 내 방에 결코 들어오는 일이 없었다.
막내아들은 운동에 소질이 있어서 수영이나 농구를 정말 잘하고 성격 또한 매우 활발하거니와 예의도 바르니 이런 아들의 행실에 질투가 난 아파트 주민들은 행여 놀이터나 공원에서 나를 보면 나의 자랑질이 듣기 싫은지 애써 나를 못 본 체 하는데 내가 아는 체라도 하려다 어색한 상황이 일어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난 어이가 없어서 그들에게 자식 교육 좀 잘 좀 시키라고 혼자 비웃는 듯 큰소리쳤다.
아무튼 이런저런 걸 떠나서 문제는 어머니다.
큰 아이가 중학교 3학년때까지 우리랑 함께 사시다 고부간 갈등이 고조될 즈음 당신 홀로 스스로 나가 사시겠다며 집 근처 원룸을 얻어 나가셨는데 요즘 부쩍 외로우신지 집에 있는 나에게 수시로 안부 전화를 하신다.
예전에 큰 집에서 함께 살 때에는 상당히 좋았다가 나의 사업이 잘못된 바람에 작은 집으로 쫓겨가듯 이사한 후 고부간의 갈등이 시작된 게 원인이라면 원인이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며느리 눈치나 보면서 기죽어 사는 꼴을 보시는 것도 고역이었을 것이고 여러 이유로 아내와의 잦은 트러블로 한집에 사는 게 불편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아들이 가운데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꼴을 보노라니 차라리 홀로 떨어져 사시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하신 듯하다. 그러나 연세가 80세가 다 되어가시니 좁은 방이라도 있으면 우리 집으로 다시 들어오고 싶어 하는 눈치다. 특히 어머니가 힘들어하는 것은 외로움인데 그 외로움을 달래고자 아파트 노인당에 가셔서 고스톱을 치거나 TV를 보시고 쓸쓸히 아무도 없는 집에 가셔서 홀로 덩그러니 있을 때 밀려오는 외로움은 어느 누가 해소해 줄 수 있겠는가. 이런 이유로 외로우실 때마다 나에게 전화해서 본인 걱정은 하지 않으시고 나를 걱정해 주신다.
다행스러운 것은 가끔 자원 봉사자들이 어머니가 홀로 사시는 집으로 쌀이나 빵 기타 식음료를 봉사한다면서 가져다주곤 하여 그 순간이라도 어머니가 여러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을 즐길 수 있다는 거다.
어느 날 큰 딸이 용인에서 서울까지 통학하기가 힘들다고 서울에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구해달라고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요구하였다. 사는 곳이 경기도권이라 더 먼 지방출신 학생에게 우선 배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기숙사 배정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와이프는 인터넷 검색을 하며 학교 주변 오피스텔이나 원룸을 알아보지만 얼굴엔 근심이 가득이다. 사실 내가 하던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을 즈음 큰 욕심을 안 부리고 안정적으로 운영했으면 아무 문제가 아니었을 거를 욕심이 과하여 일을 크게 벌인 통에 사업이 점차 나락으로 떨어지고 결국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라 난 조용히 옆에서 보고만 있었다. 아무튼 와이프의 근심거리를 해소시켜줄 수 없는 내 자신의 무능력이 저주스러울 정도로 나를 괴롭혔고 그 괴로움은 부모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큰 딸이 미워 아침 일찍 일어나서 걸어가면 된다고 큰소리치는 것 외에는 와이프를 달랠 수 있는 게 없었다. 사실 집안의 가장으로서 아이들의 교육투자에 아낌이 없어야 하고 그걸 뒷받침할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니 스스로 괴롭기 짝이 없다. 요즘 저녁 늦게 까지 잠들지 못하고 이불을 뒤척이는 날이 점점 많아지며 불확실한 미래나 차츰 늙어가는 내 모습을 볼 때 걱정스럽기 그지없지만 아내와 각방 쓰는 날이 오래되어 아내의 나를 향한 한심스러운 눈치를 보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아침이 되면 어쩌다 아이들이 손을 내밀며 아내에게 돈을 달라고 하기에 주머니에 얼마간 현금이 항상 있어야 하고 직장 생활 중에도 아이들이 갑자기 전화가 와서 필요한 책을 사거나 자기 친구들과 군것질을 하는데 돈을 보내달라고 할 때가 있어 항상 일정한 돈이 아내 통장에 있어야 한다. 나 역시 아이들처럼 돈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아내에게 좀체 말을 꺼낼 수가 없다. 물론 말을 해도 돈을 주지 않는다. 이러니 동내 지인들과 흔하디 흔한 소주 한 병 사 먹지 못하고 살아가는데 사는 게 정말 말이 아니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여야 하는 강박관념이 있는지 혹은 어릴 적 못 먹은 트라우마가 있는지 거의 매일 근처 마트에서 아이들을 먹일 고기나 우유 기타 필요한 장을 보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소주 한 병을 사주지 않는다. 하긴 한 여름 뙤약볕에서도 싼 아이스크림 하나도 아까워 못 사 먹는 아내에게 뻔뻔하게 소주 한 병 사달라고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짓인지 안다. 이렇듯 소주 한 병 담배 한 갑 사지 못하고 낙심한 체 하루하루 허송세월을 보내는데 엎친데 겹친다고나 할까 어머니가 노인당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라면이 없어지고 김치도 없어지는데 심지어 집에서 끓여 먹고 가는 것 같다고 걱정스러운 듯 나보다 아내에게 전화를 하는데 옆에서 듣는 나로선 고역이었다. 아내에게 무능한 남편하나 있는 것도 고통일 텐데 어머니까지 치매 증상이 있으니 내입장이 크나큰 고통이었다. 이런 어머니가 걱정스러워 어머니집에 가서 확인해 보았으나 결코 라면이나 김치가 없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어머니에게 이 집은 어머니 외에 다른 사람이 절대로 열 수 없는 도어록 번호키라 그 비밀번호를 모르면 누구도 열지 못하며 그 비밀번호는 어머니와 나 그리고 며느리밖에 모르니 그럴 일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아무리 말 씀을 드려도 내 말을 믿지 않으셨다. 이런 사실을 아내에게 말하고 어머니가 혹시 치매가 오신 것 같으니 병원에 모시고 가서 치매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나를 보고 정말 걱정이라며 왜 쓸 때 없이 어머니를 찾아가 필요 없는 말을 하여 어머니를 걱정시키냐고 오히려 나에게 역정인데 놀랍게도 제발 어머니에게 찾아가지도 말고 그냥 집에만 았으라고 나에게 큰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문제가 있다 해도 자식으로서 어머니에게 찾아가지 말라는 아내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왜 네가 이래저래 간섭하냐고 정말 오랜만에 식탁을 손바닥으로 세차게 두드리며 큰소리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살면서 어머니에게 제대로 효도 한번 못한 아들이 어머니를 찾는데 그걸 못하게 하는 아내가 좀체 이해할 수 없었고 며느리로서 시어머니를 대하는 자세가 틀려먹었다는 생각이지만 아내에게 직접적으로 심한 말을 하자니 밥도 제대로 못 먹게 될 것이고 편한 잠을 잘 수가 있을까 하는 걱정과 후환이 두려워 선뜻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 거리에 우뚝 서있는 전봇대를 향해 누가 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거칠게 그 답답함을 토로하였다.
여하튼 자식으로서 홀로 계신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수시로 전화를 해서 오늘은 없어진 것이 없는지 혹 도둑은 들지 않았는지 아내 몰래 확인을 하였고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오늘은 괜찮다면 굳이 올 필요가 없으니 걱정 말고 집에 있으라고 다독거려 주셨다.
어느 날 어머니 걱정에 도무지 집에 편히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집에 있으라는 아내의 간곡한 부탁을 무시하고 어머니집 앞으로 간 후 도둑이 정말로 있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조용히 누가 눈치 재지 못하게 어머니집 앞 골목길에 앉아 어머니가 사시는 다가구 주택입구를 주시해 보기로 하고 2시간 정도 앉아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라면이나 김치를 들고 나오지 않았다. 그 결과가 당연하다는 생각에 하늘을 보고 안심한 듯 한숨을 푹 쉬고 어머니 방으로 들어가니 휑하니 아무도 없지만 어질러진 이불과 방금까지 화투를 만지셨는지 화투가 모포 위에 널브러져 있고 약봉지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아마 어머니는 이른 아침 일어나시고 화투를 스스로 치신 후 아침을 드시고 약을 먹고 노인당에 가셨으리라 라고 생각했다.
두 시간 동안 밖에서 있지도 않은 도둑을 잡겠다고 서성거리다 보니 배가 고파 찬장에 있는 라면을 자연스레 꺼낸 후 냄비에 넣어 끓이고 냉장고 속에서 김치를 꺼냈다. 어머니가 만든 김치는 어찌나 맛있는지 약간 쉰 냄새가 있음에도 라면과 먹는데 하늘을 날아갈 듯 행복했다.
이런 김치를 집으로 가져가서 먹으면 아내도 좋고 애들도 좋아할 것 같아 싱크대 서랍에 있는 비닐팩에 김치를 조금 덜어 넣은 후 어차피 어머니가 먹지 못해 아내에게 줄 쌀 한 포대를 들고 밖으로 나오는데 어머니와 아내가 박에서 수심이 가득 찬 얼굴로 나를 보고 서있는 게 보였다. 내가 반갑게 어머니와 아내에게 다가서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건정한 사람 두 명이 느닷없이 나를 번쩍 들고 십자가가 그려진 승합차에 인정 사정없이 집어넣은 후 문을 쾅 닫고 시끄러운 사이렌을 울리며 어디론가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