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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머리 May 06. 2023

어이없는 상상

카테고리  부부

저녁 식사 후 설거지를 끝내고 여유롭게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데 안방에 있는 신랑이 나를 급히 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방에 들어가자 치질이 걸린 건지 모르겠다며 의아스럽게 서있는 내 앞에서 바지와 팬티를 급하게 벗고 엉덩이를 나에게 보여주는 자세로 침대에 털썩 눕더니 오후에 자기가 약국에서 샀다며 치질 연고를 준후 그곳에 골고루 발라 달라고 하였다.

아니 증세가 있으면 자기가 직접 바르면 될 일을 왜 나를 시키냐고 짜증을 내자 자기는 자기 엉덩이가 보이지 않아 아픈 곳에 연고를 정확히 바를 수가 없어 그렇다며 남편이 부탁 좀 하는데 그게 머가 힘든 일이냐며 그런 부탁을 한 본인 스스로도 웃기는지 웃는 건지 참는 건지 모를 얼굴로 재차 요구를 하였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고 나를 불러서 해괴한 요구를 한 후 내가 짜증스러워하거나 어이없어하는 반응을 보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기에 곧장 거실로 나가버렸다.

연애 시절엔 자동차 여행을 할 때 차 안에서 방귀를 뀌고선 시치미 뚝 떼고 있다가 그 냄새에 짜증 내며 창문을 급하게 내리는 나를 보고 재미있다는 듯 죽어라 웃기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느 날 저녁에 전등을 끄고 자려고 뒤척이는데 먼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혹시 곤충이나 벌레 소리인가 싶어 옆에 있는 신랑에게 머냐고 물으니 자기 코딱지인데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코를 판 후 원인이 되는 그 코딱지를 손가락으로 둘둘 말아 어차피 버릴 때도 없으니 방바닥에 훌쩍 던졌고 그게 그 코딱지가 떨어지는 소리라는 말을 하는데 내가 기가 차서 벌떡 일어나 큰소리로 악을 빡빡 쓰며 당장 불을 켜고 더러운 짓거리 그만 좀 하고 당장 그걸 찾아 치우라고 외쳐댔다. 그런데 이게 재미가 있었는지 며칠 후 화장실 휴지 한 조각을  몰래 가지고 누워 소리가 안 나게 찔금 찔금 찢은 후 그걸 또 똘똘 말아서 자기 팔을 내 얼굴 위에서 휘저으며 방바닥으로 그 휴지 조각을 휙 던졌다. 나도 이젠 눈치채고 모른 체 눈감고 있으려니 계속 그 짓거리를 하면서 내 반응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이 남자가 귀여워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 크게 웃으니 자기도 나를 보고 웃는데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이게 머 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다.

어쩌다 밖에서 지인들 모임이나 동호회 모임을 할 때면 젠틀하며 지적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직장에선 업무에 충실하고 유능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매사 조심하는 신랑이 나하고만 있으면 변태적인 행동을 한 번씩 하는데 모든 남자들도 다 그들 와이프 앞에서 마찬가지 행동을 하는지 아니면 내 신랑만 저러는지 의아스럽다. 사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저런 거는 아무것도 아니다. 더 희한하고 해괴한 아니 또 그렇다고 혐오스럽거나 더럽거나 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 그랬다간 곧바로 쇠고랑 찰 일들을 신랑은 거침없이 나에게 해대곤 하는데 또 웃긴 게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어이없지만 그런 망측한 행동들이 내가 느끼기에 아무렇지 않고 재밌고 웃기다는 거다. 사람 관계에 따라 받아들이는 감정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혹여 다른 남자가 내 앞에서 저랬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아무튼 늦은 밤 코를 골고 세상모르게 잠을 자고 있는 장난꾸러기 변태 신랑을 보니 퍼뜩 머릿속을 스치는 어이없는 상상이 나를 웃게 하였다.

내일 나도 신랑 앞에서 비슷한 테마로 요구해보고 한 이불속에서 신랑 모르게 조용히 방귀를 낀 후 이불을 두 손으로 들썩 휘저으면 그 상큼한 냄새를 맡은 신랑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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