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여기 저기 다니다 보니 온몸은 피로로 천근 만근이라 모든게 귀찮았고 서있는것 조차도 여력이 없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의자에 털썩 앉고선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푹 쉬었다.
식탁위에 누가 마셨는지 반쯤 남은 오랜지 쥬스가 덩그러니 눈에 보이자 익숙한듯 손을 쭉뻗어 쥬스를
가지고 와서 급하게 벌컥 벌컥 마시는데 오렌지 쥬스의 달콤함에 목속에 꽉찬 스트레스가 날아간듯 하다.
몸을 추스리고 의자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어 식탁 의자에 조심스레 걸어놓고 목을 둘러싼 넥타이를 풀어 겉옷 호주머니에 쑥 집어 넣은후 오래 입고다녀 목 둘래가 먼지나 때로 새카맣게 얼룩진 셔츠와 바지도 벗어 세탁기에 곧장 집어 넣었다.
깊은 한숨을 쉬고 타박 타박 힘없이 걸어가 미리 불을 켠후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말 보기 싫은놈이
눈 앞에서 알짱 거렸다.
그놈이 불현듯 눈앞에 나타나자 화가 머리 끝까지 났는지 그놈에게 쌍욕을 해댔다.
"야 이 미친놈아 제발 정신차려 언제까지 그렇게 힘들게 살거냐?"
그놈은 갑작스런 나의 절규에 머리를 위로 치켜 올리더니 넓은 가슴속으로 긴 한숨을 깊이 들이 마신후 길게
내뱉으며
"그래 니말이 맞아. 내가 미친놈 이여. 내가 지금 무얼 하는지 모르겟다. 도무지 답이 안보여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겟다."
"내가 잘 하는것도 없지 그렇다고 남들보다 뛰어난 것도 없지 무슨 노력도 안하지 맨날 신세 타령이지 가진돈도 없고 말이지 한심하기 그지없네 내자신이"
그놈의 체념어린 대답이 답답해 그놈 얼굴을 가까이 바라 보고선 한심한듯 입술을 씰룩이는데 그놈도 마음 고생이 심한지 예전엔 안보이던 이마의 잔주름이 제법 많이 보였고 흰머리도 희끗 희끗 귀 밋머리에 보였으며 머리결은 푸석해 몰골은 생각보다 말이 아니었다.
순간 자기도 아침 출근때 겨우 생계란 두개를 젓가락으로 쿡쿡찔러 구멍을 낸후 쭈욱 마셨고 점심은 편의점에서 천원짜리 김밥에 컵라면 하나 먹은 기억에 이놈도 가진것이 없는놈이라 나와 똑같을 거라는 생각에 측은하여
더이상 모진말은 할수 없었다.
하긴 정신 차리라고 저놈에게 아무리 말해봐야 마이동풍이고 말 한마디가 그다지 큰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는것을 너무도 잘안다.
거의 매일 이놈의 얼굴을 어디서든 서너번씩 보는데 어떨땐 아무 생각없이 보다가도 또 어떨땐 답답하기 그지없이 한심해 욕짖거리를 한사발씩 쏟아 붙기도 한다.
한심한 이놈이 보기싫어 한발짝 옆으로 간후 돌아서서 펜티를 벗고 좌변기에 앉을려다 그놈이 보든가 말든가
그모양 그대로 아장 아장 다시 문밖으로 나갔다.
의자에 걸쳐진 겉옷 속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낸후 다시 돌아가 좌변기에 앉아 담배 한개피에 불을 붙인후
깊게 몰아쉬고 연기를 내 뱉는데 아까 그놈 얼굴을 보았을때의 짜증 이라든지 불쾌함이 잠시나마 사라져서 상당히 좋았다.
담배를 피면서 이런 저런 오늘 하루의 일들을 잠시 생각 하기도하고 멀뚱 멀뚱 문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바닥에 떨어진 휴지 쪼가리를 주어 다시 휴지통에 넣기도하고 머가 쉽게 안 나오는지 숨을 깊게 들어마시다 끙끙거리며 배에 힘도주기도하고 머리가 간지러운지 손가락으로 머리도 긁적이다가 손톱에 낀 회색 비듬이 더러워 담배를 쥐고있는 다른 엄지 손가락 손톱으로 빼내기도하고 휴지통 근처에서 윙윙거리는 날파리를 잡겟다고 손으로
휘젓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콧속도 만지작거리다 콧속을 꽉 막고있는 커다란 코딱지를 빼낸후 엄지 곤지 손가락으로 둘둘말아 변기통으로 넣기도 하다보니 볼일이 끝났다.
뭉기적 거리며 일어서 펜티를 입고 나간듯하다 다시 펜티와 런닝을 벗어 밖으로 휙 던진후 두 발자국 정도 떨어져있는 샤워기로 향했다.
샤워 꼭지를 돌려 한손으로 물의 온도를 가늠하여 적당한 온도가 되자 샤워기로 온몸에 물을 뿌려댔다.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를 부르며 여기 저기 이쪽 저쪽 온몸에 비누칠을 하고 이태리 타울로 살짝 살짝 어깨 팔다리 몸을 맛사지하듯 벗겨내니 기분이 참 좋아졌다.
미지근한 물로 온몸을 행구고 세면대 앞에서 치솔에 치약을 바르는데 김서림 때문에 보이지않는 그놈이 나타날까 급하게 양치질을 하였지만 이내 김서림이 점점 사라져 한심한 그놈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놈이 보기 싫어 물컵으로 급하게 입속을 행구고 뱉기를 서너번 한후 바닥을 보자 비눗물과 몸에서 떨어진
때조각으로 매우 지저분 해져 있었다.
샤워기를 가지고 수압이 가장 센쪽으로 꼭지를 돌려 물 청소를 시작하였다.
이곳저곳 세면대와 좌변기 그리고 벽과 바닥 구석 구석을 시원하게 물을 뿌리자 이내 깨끗해져서 기분이 한결 좋아 졋지만 아까 양치질 할때 치약 거품 찌꺼기들이 튀어붙은 큰 거울로 물을 뿌리자 그놈이 여지없이 나타나 자기를 보기 싫어하는것을 아는듯
"네눔이 나를 벗어날것 같은가" 라며 비웃었다.
저놈을 바라보는 자체만으로 큰 스트레스라 이내 등을 돌리고 보름도 넘게 빨지않은 구린내 나는 수건으로
얼굴과 온몸의 물기를 급할것도 없어 천천히 닦았다.
문을 열고 그대로 밖으로 나온후 아까 벗어둔 펜티와 런닝을 발가락으로 집어 손으로 전달한 다음 어차피 더러워서 빨래를 해야 하는것이라 누리끼리 색이 바랜 런닝으로 발가락 사이 사이에 있는 물기를 깨끗하고 개운하게 닦았다.
온몸을 벗은채로 침대에 털석 누워 저 보기 싫은 몰골을 어떻게 해야 보기좋게 만들수 있을지 고민하며 높은
천정을 뚫어지게 처다 보지만 이런 저런 아무런 답이 없다는것이 절망적이다.
그 절망적인 상황이 한 두번이 아닌듯 얼굴이 이내 평온해 지자 벌떡 일어나 아무리 흔들려도 소리가 나지않는 두 방울을 틀링 틀링 출렁이며 식탁으로 걸어가 씽크대 찬장에서 작은 냄비를 꺼냈다.
수도 꼭지에서 힘차게 쏟아지는 물을 냄비에 적당히 받아 가스렌지에 곧장 올리고서 저놈이 듣고 함께먹자고
튀쳐나올까 무서워 혼자 조용히 중얼 거린다.
"배 고픈데 라면이나 끓여먹자"
오늘도 알찬 하루의 일상과 일기장은 어제와 똑같이 끝났고 내일도 그럴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