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직장에 들어오면 여기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사람들의 기능과 역할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 중에서 수술실에 들어와서 제일 긴장하면서 했던 일 중 하나가 수술 필드에 들어가 수술을 해내는 것이다. 소독 간호사의 역량에 가장 바탕이 되는 것은 1) 해당 수술에 2) 해당 환자의 케이스에 3) 들어오는 진료과에 맞추어 수술상을 차리고 지원하는 것이다.
응급 수술을 대비해 공부를 할 때 '상만 차려주면 수술은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을 할 정도로 수술 상차림은 중요하다. 전체 프로시져를 생각하며 쓸 기구들을 쓰임에 맞게 순서대로 혹은 효율적인 동선으로 준비하기 때문이다. 보통은 진료과의 수술 스타일이 있고 거기에 맞추어 그 과의 수술방 간호사들이 전하는 상차림을 고수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커다란 수술상인 instrument 상에서 소독 기구 set를 놓는 위치도 다르고, 꺼내는 싱글 부속 기구의 배치도 과의 스타일을 따르게 된다. 그리고 필드에서 기구 패싱과 빠른 보조를 위해 사용하게 되는 mayo 상에 기본으로 준비하는 스타일도 차이가 난다.
수술 상차림은 정리정돈과 비슷하기도 한데, 규칙을 정해놓고 거기에 익숙해져야 빠른 반응이 가능해 효율적인 스크럽이 가능해진다. 기구를 여기저기 매번 달리 놓게 되면 수술이 진행됨에 따라 1초에 한 번씩 다른 기구를 불러대는 집도의에 어찌 따라가겠는가. 눈도 몸도 익숙해지는 그 과의 루틴, 수술 상차림이다. 개복 수술의 경우에는 장시간 진행되기도 하고 업무 시간 상 소독간호사들끼리 손을 바꾸는 일도 잦아서 그 과의 스타일에 맞추어 상을 차려놓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다음에 들어가는 소독간호사가 자신의 스타일에 맞추어 상을 조정하긴 하지만, 정해진 루틴은 기본으로 해야 인계 시간이나 실수가 줄어드니까.
같은 프리셉터 선생님께 배우면 비슷하게 상을 차린다. 그렇지만 수술을 하다보면 본인만의 경험이 쌓이게 되고, 특정 진료과가 원하는 맞춤형 기구나 빠른 대응을 위해 수술 기구 위치를 요리조리 옮겨보며 효율성을 추구하게 된다. 또, 여러 과의 수술 써큐를 하다가 '기구 배치를 저렇게 활용하기도 하는구나' 보고 배우기도 하게 되므로 모든 사람과 상황이 나의 수술상에 영감을 준다.
나도 규칙을 따르면서 깔끔히 배치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요즘은 효율성을 더 추구한달까. 연이어 사용하게 될 것들이나 금방 준비해 빠르게 대응해야할 것들은 나름의 규칙을 정해 내 손에 닿는 곳에 잘 꺼내어 스탠바이 시켜놓는다. 사실상 그렇게 큰 시간차이가 나는 건 아니지만, 여러 손의 진료과에게 후달리면서 서두르는 모습을 덜 보이고 싶은가 보다. 어떤 PA 선생님 말씀대로 흐름을 잘 파악해서, '흔들리지 않게 스크럽하는' 안정적인 모습을 추구해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빠른 대응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미리 대응하는 게 가능하다면 왜 미루겠는가. 신규 시절에 대응 속도가 느리다는 지적에, 자책한 것의 발로일지도 모르지만 내 성향에 맞는 나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