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이지만 전문 의료인인 간호사이기도 했다. 내 몸과 마음도 혼자서 간호하기 위해서는 성장통이 따랐다. 사수로부터 집중적으로 교육받는 시기를 지나,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 이제는 혼자서 한 사람의 몫을 해내야 하며, 같이 일하는 수술 간호 팀원으로서 환자나 팀원들에게 해가 끼치지 않도록 부담이 커졌었다. 처음 교육받을 때부터 최소 5년, 최대 10여 년이 넘는 선생님들께 배우며 일하다 보니 수술간호의 정석(?)은 배웠지만, 신규 시기의 설움이나 고충을 토로하기는 쉽지 않았다. 같은 과에 동기가 있는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선생님 이야기, 진료과 이야기를 하며 공감하고 깔깔댔지만 나는 그런 동기도 없어서 혼자 속으로 앓아야 했다. 계속해서 자신감도 떨어지고, 우울하고, 때로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눈물도 나고 예민해져서 심리상담사 선생님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심리상담사 선생님께서는 전 직원의 고충처리, 심리 상담을 해주시는 분이셨다. 그래서 부서의 특성에 대해서 - 내가 왜 스트레스를 받고 어떤 점이 어려운지 - 설명하면서, 내 일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고 제삼자와 대화하면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돌아보는데 도움을 주셨다. 선생님은 나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시고, 감정과 생활의 변화에 귀 기울여 주시며, 나의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알려주셨다. 몇 주간, 한 번에 1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들이었지만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나는 조금 더 씩씩하게, 그 시간을 버텨 나의 마중물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기억에 남는 핵심은 이런 것이다.
1. 통제 불가능한 모든 변수들에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중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낼 뿐.
못 한다면 상황 탓을 할 줄도 알아야 한다.
2. 내 필드에 속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를 만들 것.
친구를 사귀고 유지하기 위해 먼저 다가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3. 나 자신의 엄마가 되어줄 것. 스스로를 잘 챙겨주고 마음을 다독여주기.
먹고 자고 쉬며 노는 것까지, 내가 필요로 하는 만큼 충분한 에너지를 채우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신경 쓰기.
4.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여러 가지 시도해보기. 효과 비교해서 나한테 맞는 최선의 방법 찾기.
- 칭찬 일기, 긍정적 습관 강화 일기 쓰기 ; 긍정적 사고로 사고의 길을 트며 부정적 사고 줄여나가기
- 상황을 일지처럼 기록해보기 ; 다른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문제와 원인, 개선방향, 향후 대응 찾기
- 취미로 할 수 있는 일들 찾아보기
핵심은 '혼자 만의 시간을 온전히 즐길 것', '자신의 엄마가 되어줄 것'이었으리라.
나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돌아가는 시간을 일상에서 만들어야 한다. 지금 나의 사고와 감정에 집중하고, 어떤 것이 힘들었고 어떤 것이 기뻤는지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를 보살피는 나만의 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 독립하여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지리적으로) 타지에서 첫 직장으로 병원에 근무하게 된 변화 상황을 인정한다. 침구나 소품, 사진이나 일기장 등의 추억거리로 나만의 편안하고 아늑한 공간을 만든다. 또 조금 손이 가더라도 신선한 재료를 이용해 직접 요리를 해 먹고, 빨래와 청소를 통해 청소하며 내 공간을 가꾸는 어른이 되고자 한다. 혼자만의 시간에 가치를 부여하고, 내 일상생활의 리듬을 지키며 일에 몰입하는 경험을 늘리고자 한다. 일상을 영유할 수 있는 독립적인 능력을 가지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전제 중 하나는, 나의 일에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관심과 노력의 지속성이다. 내가 일을 잘하지 못하면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지식적으로든, 술기적으로든) 내가 못한다고 스트레스받고 회피하는 겁쟁이는 되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때로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기도 하다는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나를 믿고 나아갈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나는 수술실 간호사가 되었다. 내 몸과 마음을 간호하는 방법을, 수술간호와 함께 배워가면서. 직업과 일상은 함께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로 긍정적인 영향, 발전적인 자극을 주고받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