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수술실 간호사의 출퇴근길 : 2018 일기
출근길의 첫 걸음은 늘 두근거린다. 학생 때 만난 수술장의 수선생님처럼, 나는 매일마다 환자를 위해 가슴 졸이며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검사 결과로 나온 것보다 병변이 심각하지 않게 해주세요, 오늘은 출혈이 많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세요, 환자가 나갈 때 '수술 잘 끝났어요. 환자분'하면서 깨울 수 있도록 해주세요, 하면서. 간절함이 어딘가에 닿아서 오늘 하루, 우리 병원의 수술장에 들어오는 환자들이 무사히 나갈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나은 내일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해주기를 바라면서.
병원에서 내 또래의 사람들, 더 어린 사람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나의 먼 친척까지도 생각나게 하는 사람들을 참 많이 봤다. 병원에 찾아오는 존재는 예측 불가능하다. 언젠가 나의 연인, 가족, 친구들이 될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하다, 소중한 사람을 잃을까봐 눈물 흘린 날도 있었다. 나는 매일, 그러한 사람들을 살리는 곳으로 오가는 것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출퇴근길은 평온하기만 하다. 평화는 모습을 바꾸어 인사한다. 여러 수목들로 울창한 잘 다듬어진 아파트 화단들로. 단지 사이의 차분한 보도블럭으로. 아이들이 재잘거리고 이를 배웅하는 부모들의 미소로 평화로운 초등학교 정문으로. 응원에 힘입어 나는 '떨지 말자, 잘 해내자.' 되뇌인다. 머릿 속에서 오늘 해야할 일들, 참여해야 할 수술의 술기들을 정리하면서 병원으로 다가간다. 그 사이에 주택가가 끝나고 단풍나무와 벚나무로 우거진 대로가 나오고, 크고작은 물고기가 노니는 천이 흐른다. 햇살에 나부끼는 나뭇잎 사이로, 나는 평화와 감사를 느낀다. 자연이 나에게 주는 격려와 위로에 빠른 발걸음에도 마음은 차분해진다. '감사하게도 나는 잘 살아 있구나. 잘 살아가고 있구나.'
누군가의 목숨이 흔들리는 곳으로 향하는 출근길은, 쉽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었던 적도 수십번이다. 무섭고 긴장되고 두려워서. 그럼에도 무거운 발걸음을 들어 앞으로 움직이다 보면, 평안이 깃든다. 위로를 받는다. 주변에서 행복하게 웃는 누군가를 살리는 일이구나. 그 누군가의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희망을 주는 일이구나. 쉽게 포기하지는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몫을 하면 되는구나. 지나가는 바람과, 간드러진 새의 지저귐이, 내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어 주는 출근길이다.
같은 풍경의 길목도, 퇴근길의 나에게는 또 다른 위안이 되어준다. 반짝이던 햇살은 고개를 감추며 개천에서 눈물 흘린다. 재잘대던 나뭇잎은 그저 고요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초등학생같던 아침의 생기들은, 수험생활에 지친 고등학생이 된 마냥 서글프지만 성숙해보인다. 소중한 사람들을 향해 돌아가는 퇴근길. 나는 오늘 함께 할 기회가 있었던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하였는가 반추해본다. 누군가의 희망을 지켜내었구나, 절망하고 괴로워하던 내 마음도 어느덧 저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