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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글 쓰는 여성: 7. 섹스 앤 더 시티의 변신

영화 '조용한 열정'(2016)의 독신 시인 에밀리 디킨슨

1. ‘섹스 앤 더 시티’의 미란다의 변신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전기영화 ’조용한 열정’은 안 봤어도 뉴욕을 배경으로 한 유명 시트콤 ‘섹스 앤 더 시티’를 안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하버드 출신의, 똑똑하면서 허당인 변호사 미란다 홉스로 출연했던 신시아 닉슨은 ‘조용한 열정’에서 고집스러운 은둔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으로 분했는데, 두 배역의 성격이 워낙 달라서 아무런 정보 없이 영화를 마주친 시청자라면 상당히 놀랐을 것 같다 (BBC 미니시리즈 ‘오만과 편견’에서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 역을 했던 제니퍼 엘이 에밀리의 여동생 라비니아(비니)로 나온 것 역시 놀랍다).

     

2. 비타협적인 비순응적인     


‘조용한 열정’은 평생 결혼하지 않고 가족과 함께 집에 칩거하며 시를 쓴 에밀리 디킨슨의 삶과 시에 대한 영화적 기록이다. 이 영화에서 테렌스 데이비스 감독은 그의 시그니쳐 기법인 롱테이크와 정적인 미장센으로, 조용하고도 비타협적인 삶을 살아갔던 한 고독한 여인의 내면과 예술을 그려낸다.


‘조용한 열정’은 약간은 충격적인, 신학교에 다니는 여학생 디킨슨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기독교 구원의 교리도 거부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신학교 교사가 졸업을 앞둔 여학생들을 모아놓고 구원받기를 원하는지 물어보자 디킨슨은 “깨닫지도 못한 죄를 어떻게 회개하죠?”라고 되물으며 “죄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교사는 마치 청교도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의 유명한 설교 ‘진노한 하나님의 손안에 든 죄인들’을 연상시키는 어조로 “거룩하신 하나님께 맞선 죄인은 비난 속에 불타는 지옥에 갈 것이다. 느끼지도 두려워하지도 못하리니 다가올 하나님의 진노도 피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악담을 퍼붓는다.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사랑으로 학생을 품어야 하건만 당대 사회를 지배하던 청교도 관행은 어떠한 일탈도 용서하지 않았던 것이다.     


3. 시인이 된 노처녀     


에밀리는 학교를 떠나서 집으로 돌아오지만 교육받은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가사를 돕거나 정원을 가꾸거나 홀로 시를 쓰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 시 쓰기는 그녀에게 즐거움을 주고 더 나아가 삶에 목적과 이유를 제공하였다. 디킨슨의 시 한 편을 읽어보자.     


The Heart asks Pleasure — first —
And then — Excuse from Pain —
And then — those little Anodynes
That deaden suffering—

And then — to go to sleep —
And then — if it should be
The will of its Inquisitor
The privilege to die —


가슴은 즐거움을 원하네 – 먼저 –
그리고는 – 고통으로부터의 면제를 –
그리고는 – 저 조금의 진통제를
아픔을 마비시키는 –

그리고는 – 잠들기를 –
그리고는 – 심판관(주: 하나님)의
뜻이라면
죽을 수 있는 특권을 –


죽음이 특권이라는, 죽음을 삶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는 이 시에서, 디킨슨은 4줄이 한 연을 이루도록 배치했으며 Heart, Pleasure, Excuse 등 대문자로 시작하는 단어를 시구 중간중간에 집어넣었다. 대쉬() 역시 시구 중간과 끝부분에 불규칙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마침표도 불규칙하게 삽입된 것을 알 수 있다.


극도로 압축적이며, 전통적인 운율과 형식을 벗어난(보통 슬랜트 라임이라고 불린다) 디킨슨 시의 이와 같은 독특함은 20세기 들어서 현대적인 특성으로 재평가되면서 학계와 평단에서 극찬을 받기에 이르렀다. 여성주의 운동가들 역시 디킨슨의 시에서 19세기 보수적인 미국 사회의 가부장적이고 억압적인 도덕 관습에 순응하지 않고 살아갔던 여성 시인의 목소리를 발견하고 환호하였다.

     

4. 고독한 노년의 삶

    

디킨슨은 신문이나 잡지에 소량의 시를 출간하였지만 대부분의 시를 쌓아두기만 해서 사후 1800여 편의 시가 발견되었다. 한편 그녀는 가족이나 지인들이 사망하자 점점 더 집에 은둔하였고 자신까지 병에 걸리자 방에서 거의 나오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그리하여 ‘조용한 열정’에서 나레이션으로 나오는 디킨슨의 시만큼 강력한 인상을 주는 것은, 카메라가 묘사하는 한 고독한 여성의 삶의 모습, 즉 노년의 소외와 병, 죽음 등 인생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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